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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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5 01:52



 

 

조르바 왈, “새끼 손가락 하나가 왜 없느냐고요? 질그릇을 만들자면 물레를 돌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왼손 새끼손가락이 자꾸 걸리적거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도끼로 내려쳐 잘라 버렸어요”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뭐 하나를 잘라야만 했다. 조르바의 말과 행동에 온전히 빠져 보려 하는데... ‘ 모든 여자는 화냥것들이다 ! 여자는 그저 보호해 주어야 할 약한 존재 지나지 않는다! ’는 조르바의 언사를 진지하게 듣고 있노라면 조르바가 목을 ‘조르’는 느낌이 드는 ‘바’라서 말이다. 여성주의적인 잣대의 렌즈를 저만치 던져 두고 읽어야 속에서 덜 걸리적 거렸던 것.

여자에게 뿐일까, 조르바는 말한다.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 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조르바는 그토록 인간을 경멸하면서도 그들과 함께 살고 일하려는 사람이다. 조르바가 애초부터 이렇게 조국을 불신했던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터키로부터의 독립 운동을 위해 비정규 전투 요원 활동을 하다가, 불가리아 비정규군 신부를 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몇일 후, 조르바는 거리에서 맨발에 검은 옷을 입고, 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다섯 명의 아이들을 만났는데, 이 아이들이 얼마 전 자신이 죽인 신부의 자식들이었던 것이다.

작중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 했던 것을, 조르바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고스란히 살아왔던 것.


“그래요, 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것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웃기지 말란다. 펜대 운전수(작중 ‘나’) 뜨끔할 소리다. 그래서 작중 ‘나’는 조르바를 더 존경어린 눈으로 보는 것이다. 두 사람은 상반된 사람이다. ‘나’가 문자와 지식으로 이루어진 현실 세계에 갖혀 있는 백면서생 의 위치에 점하고 착찹해하는 존재였다면, 조르바가 있는 지점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저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자각하는 상태였다.


포도가 포도즙이 되는 물리적 변화, 포도즙이 마침내 포도주가 되는 화학적 변화를 넘어서, 포도주가 인체에 들어가서 사랑을 하게 하고, 성체(聖體)가 되는 것.

 

먹고 있는 음식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이 무엇으로 변하는지가 더 중요한, 육체와 영혼의 이분법을 뛰어 넘으려는 존재로 그려진 조르바였기에, 펜대 운전수 ‘나’도 독자인 이 아줌씨도 조르바에 대해 경의를 느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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