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로마니아 - 온다 리쿠 라틴아메리카 여행기
온다 리쿠 지음, 송수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고소 공포증에다가 여행을 즐겨하지 않는 취향의 온다 리쿠에게 재미있는 남미 여행기를 기대한다며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온다 리쿠 특유의 단백함 소박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강조- 박진감 넘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64~65

집이 멋지고 클수록 당연히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기발한 건축물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 도대체 이런 집은 얼마야? 뭘 해서 얼마를 벌면 이런 집을 지을 수 있지?

즉 사회적 지위는 오직 어떻게 뭇사람의 시선을 모으고, 동시에 그시선을 물리치면서 그로부터 잘 숨는가 하는 것과도 일치한다.

비밀에 싸인 저택, 창이 없는 탑, 절벽 위에 세워진 성, 경비가 삼엄한 사무실, 펜타곤, 황궁... 모두가 그 존재를 알고 있지만 정작 그 속은 신비의 베일에 둘러싸여 있다. 훌륭하게 우리들의 시선으로부터 '감춰져' 있는 것이다.

터키의 부적 중에 안구를 모방한 나자르 본주 라는 것이 있다. 이는 질투나 시샘으로 가득찬 사악한 눈으로부터 몸을 보호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로부터 타인의 시선이야말로 강렬한 저주인 동시에 에너지였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이를 극복하기만 한다면 반대로 저주에서 벗어나 성장해 강한 신성을 얻게 된다. 가까운 예로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자란 여자아이는 예쁘게 성장한다. 인기를 끌기 시작한 탤런트는 보다 많은 카메라 앞에서 경험을 쌓음으로써 빛을 발한다. 눈에 띄지 않던 인물이 사장 자리에 오르면 타인의 주목을 받으면서 관록이 생긴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보다 훌륭한 건축물을 원한다. 보다 많은 저주를 모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독특한 건축물을. 그 결과 탑은 더욱 높아지고, 피라미드는 보다 거대해진다.

 

90~91

 

마야 문명의 정의

소위 4대 문명은 모두 커다란 강 부근의 비옥한 토지에서 발생했다. 나일,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인더스, 황하. 이들 문명은 연속하는선 또는 일정 지역을 차지하는 면의 형태로 오늘까지 이어져 인류의 근간을 형성했지만, 4대 문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중남미 지역에서는 점을 찍듯 띄엄띄엄 발달한 문명이 존재했다. 올메카, 마야, 아스테카, 잉카 등으로 불리는 문명이 그것이다. 이들은 신비의 고대문명!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의 후예인가?' 유의 소년잡지 화보나 sf 영화의 단골 주제였지만, 오늘날에는 2만 내지 1만 5천 년 전에 베링 해협을 건너온 인류가 각기 갈라져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융성과 흥망을 반복한 문명이었음이 밝혀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을 신비의 문명으로 만든 것은 '신과 대화를 한다'는 가통릭교도이자 스페인 식민지 개척자들일 것이다. 고대부터 대대로 융합과 분열을 거쳐 쌓아올린 전통문화도 그들에겐 단순히 '신세계'일 뿐이었고, 선주민은 계몽과 지배가 필요한 야만인들이었다. 포교와 착취를 목적으로 철저히 약탈을 감행했으며, 천연두와 티푸스를 비롯해 당시 '신세계' 사람들이 면역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다양한 질병을 옮기면서 인구 감소를 초래했다.

그러므로 마야가 밀림 속에 갑자기 고도의 문명을 세웠다가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설은 올바르지 않다. 그리고 원래 마야라는 특정 민족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야는 거대 치브차 어족과 마야어족에 속하는 약 서른 종의 언어를 사용하던 선주민을 총칭하는 말로, 하나의 큰 국가를 형성한 것이 아니라 각기 도시를 구축하고 느슨하게 교류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도시 문화가 남아 있던 공통의 것들을 모두 묶어 마야 문명이라 부르고 있다.

현재까지 통용되는 설은 위와 같지만 최신 연구에서는 각각의 도시가 상상 이상으로 긴말한 넽워크를 형성했었고, 왕래도 빈번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후기에는 부양할 수없을 정도로 인구가 늘어나 도시 기능이 마비될 지경에 이르러 멸망으로까지 이어졌단느 설이 지지를 얻고 있다.

또한 BBC 다큐멘터리에서는 기상천문과 지층을 연구한 결과, 9세기에서 10세기 사이에 7천 년 만의 유례없는 대가뭄이 일어나 우기에 저장해 둔 물을 사용하는 마야인들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바람에 마야 문명이 쇠퇴하게 되었다는 설도 소개했다.  

 

93

다른 고대사에는 전혀 흥미가 없으면서 영적인 것을 찾아 마야 문명에만 빠져든느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이런 현상이 마야 연구에 대한 편견을 만들고, 연구 현장을 혼란스럽게 했음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 때문에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언어학자의 참여가 현저하게 늦어져 해독이 지연된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천재라는 존재는 인류의 도약판 같다. 그중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인물 로제타석에서 이집트 상형문자를 거의 혼자서 해독해 낸 프랑스인 샹폴리옹.

"중남미 국가들은 모두 태양신을 숭배하고 있어. 태양은 생명과 재생의 상징이기도 하지. 마야 역시 마찬가지야. 태양의 힘이 가장 약해지는 동지 무렵을 신년으로 삼는데, 새해와 함께 태양이 점점 부활하면서 그 힘을 키워가는 것이지.

마야의 수는 이십진법이야. 놀랍게도 그들은 숫자 0의 개념도 가지고 있었어. 그러니까 달력도 20일이 1개월이고, 18개월 즉 360일에 5일을 더해 1년이었던 셈이야. 마야력에는 올내 기간을 기록하기 위한 단위가 이었는데, 이것 역시 모두 이십진법으로 돼 있었어. 360일은 1툰, 20툰은 1카툰.

마야 건축은 세대를 거치면서 그 위에 계속 짓는 것이 특징이야. 건물의 소유주나 도시의 지배자가 죽으면 옛 건물을 덮어서 감추기라도 하듯 새로운 부분을 끊임없이 더했지. 그래서 건물 옆으로 돌출된 것도 많아. 하나의 건축물 안에 몇 세대의 건축물이 복합적으로 들어 있기도 해. 도시 아래에 옛 거리가 고스란히 묻혀 있는 경우도 부지기수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지하도시도 분명 있을 거야.   

 

 

134~135

지금의 일본인과 과거의 일본인이 느끼는 세계는 전혀 중첩되지 않는다. 삶의 터전이 같고, 절이나 정원 같은 옛 공간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 시대의 의식과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의 의식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으며, 각각 서로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

 

175

사람들이 호텔방에 있는 거울을 얼마나 보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꽤 자주 보는 편이다. 거울 속 내 얼굴을 보면서 지금 이곳에 있는 의미를 잠시나마 생각하는 것이다. 직업상 혼자 갇혀 있는 시간이 많은 탓일게다. 친구나 가족과의 여행이라면 다르겠지만, 호텔방 책상 앞에 거울이 있는 경우가 많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무심코 거울에 비찬 짜증난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190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나는 항상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우울과 불안에 사로잡힌다. 언젠가 우리도 이렇게 내팽개쳐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 인류가 생명으로부터, 진화로부터, 아닌 그와는 다른 무언가로부터 소외되는 것은 아닐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고를 받은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201

잉카제국의 흥망

 

면도날 하나 들어가지 않을 듯한 석조 기술, 약용식물을 마취약으로사용한 뇌외과 수술. 키푸라는 결승 문자

그러나 왕족 사이의 권력 투쟁이 심해지고 내란으로 혼란이 가중된 와중에 스페인 사람 피사로가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온다. 납치된 왕을 귀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몸값을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허망하게도 왕이 살해되자, 16세기에 맥없이 멸망하고 만다.

잉카사람들은 사후에도 미라가 되어 계속 생활했다. 이집트처럼 시신을 천으로 싸서 관에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옷을 입히고 머리를 빗기고 식사도 내어주면서 산 자와 함께 생활했던 것. 역대 황제들도 생전과 다름없이 장식을 치장을 했고, 가마를 타고 마을을 돌며 수발을 받았다. 계속 늘어나는 미라와 가신이 권력투쟁의 불씨가 되었음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음.스페인인들은 토착종교를 철저하게 탄압하고 신전을 파괴했으며 그 토대 위에 스페인 교회를 세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의 역사를 문자로 남기지 못했던 잉카 제국에 대해 알 수 있는 한 가닥 실마리는 당시 스페인 선교사들이 남긴 약간의 기록뿐이다.

 

 

214

내가 소심한 인간이라는 것은 진즉부터 자각하고 있었지만, 몸뚱아리만 엄청난 기세로 여기까지 왔을 뿐, 의식은 아직 쿠스코 호텔 언저리에서 깜박 졸고 있는지 아직 여행의 하이라이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아서 마음이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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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4-08-21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자이든, 기업가이든 요리사든 어떤 한 분야의 탁월한 사람이 쓴 기행문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