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10월
구판절판


사람은 태어날 때 비슷하게 벌거벗고 순진무구하게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천태만상 제각기 다르게 죽는다. 착하게 살았다고 편하게 죽는 것도 아니고, 남한테 못할 노릇만 하며 살았다고 험하게 죽는 것도 아니다. 남한테 욕먹을 짓만 한 악명 높은 정치가가 편안하고 우아하게 죽기도 하고, 고매한 인격으로 추앙받던 종교인이 돼지처럼 꽥꽥거리며 죽기도 한다. 아무리 깔끔을 떨고 살아봤댔자 자식들한테 똥을 떡 주무르듯하게 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 (중략) 이렇게 사람은 각각 제나름으로 죽는다. 이 세상에 안 죽을 사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죽을 때는 자기만 죽는 것처럼 억울해하는 건 이런 불공평 때문일까. 무(無)도 없는 무, 호기심조차 거부하는 미지(未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육신의 사멸은 의학이 예측할 수 있는 경과를 밟지만 정신의 사멸은 전혀 아니다.
-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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