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몰입의 기쁨도 소중하지만 춤추는 글자들 사이사이를 거니는 것 또한 즐겁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제목도, 주인공도, 줄거리도 거억 못하게 될지언정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 냄새, 내 기억의 편린 한 조각만 남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내가 책을 통해 얻으려는 것은 어떤 지식도 지혜도 경험도 아닌 나 자신과의 소통, 내 과거와의 만남이다. 그로 인해 다시 내 미래와 이어지는 통로를 발견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어떤 책을 읽고 있다. 내가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죽더라도 그 책은 남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책을 읽을 것이므로. 내가 굳이 그 책의 모든 것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내가 죽을 때 가져갈 책도 아니다. 내가 가져갈 것이라고는 죽으면 끊어질 내 기억뿐이다. -46~47쪽
울 엄마는 나를 낳고 무지 허약해져서 돌아가실 뻔 했다고 한다. 간신히 살아나시긴 했는데, 사람들이 뱀탕을 먹으면 몸에 좋다고 했단다. 그 시절 무지 가난했던 터라 뱀탕을 사먹을 형편이 안 됐던 부모님은 발달한 JQ(잔머리 지수)로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냈는데, 그건 바로 뱀을 키워 잡아먹는 것이었다. 주인집 몰래 뱀을 사다가 독 안에 넣고 키우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뱀이 독에서 달아날 줄 꿈에도 몰랐던 부모님은 뱀이 탈출하는 바람에 주인집에 들켜 2월 엄동설한에 거리로....-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