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서른하나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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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앉은 친구가 올해로 삽십대가 되었다. 동료이고, 후배인 이 친구와 어떤 갭이 느껴질 때마다 ‘역시 20대와는 친구가 될 수 없어!’했던 게 바로 엊그제인데.

삼십대를 맞는 이 친구의 신산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나보다. 미래를 약속한 남자 친구가 없어서 더욱 초조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하며, 내 서른 시작의 감회는 어떠했냐고 묻는데, 30세가 어떤 터닝포인트가 되었었다는 기억은 없다. 당시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하네마네 혹은, 감정적으로 틀어지고, 신경전을 벌이면서 연애 감정이란 참 소모적이구나 했던 기억은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쓰다보니 드는 생각은 인생을 하나의 긴 여정이라고 놓고 보았을 때, 그 중 어느 부분이 소모적이었다, 낭비했다. 그런 표현이 과연 성립할까 싶기도 하다.

일찍 결혼을 했고 아이도 어느 정도 키웠다면, 이제 막 결혼을 해서 2세를 가지려는 사람의 막막함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안정감을 구가하고 부모로서 노련미를 발휘하겠지만, 자기만의 일의 세계를 구축하지 않아 허전할 수 있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점점 초조해 질 수도 있겠지만 다른 부분에서 충분히 상쇄시킬 꺼리가 있을 수 있고, 아니 그보다 인생이란 것 자체가 대차대조표를 짜서 이해득실을 따지면서 살아지지도 않고 살 수도 없는 것일테니까.

책을 보면, 정말 다양한 나이 서른하나를 맞는 여자들의 혀를 내두를 만큼 저마다 다양한 삶의 군상들을 하고 살아간다. 몇몇 이들에게는 얼핏 내 모습을 보기도 하고, 그래 짠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또 몇몇 이들에겐 이해가 안 되는 구석도 있어서 충고가 하고 싶기도 한 그런 다양한 서른하나의 여자들.

작중 인물이 스스로에게 묻듯 나 또한 생각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143쪽 

조금 전 그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어제는 방해꾼이 있었으니까 오늘 다시 만나자고. 다정하고 따뜻하며, 내가 늦게까지 일하거나 술을 먹어도 싫은 표정을 짓지 않는 남편. 이 사람을 선택한 것도 그(내연남)를 위해서였다. 그가 독신인 나를 경계하는 것 같아서 서둘러 결혼한 것이다. 내가 결혼한다고 하자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안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남편을 좋아하지 않지만 죄책감은 전혀 없다. 남편은 무섭지 않다. 무섭지 않은 것은 사랑이 아니다.




206~207쪽

결혼은 지긋지긋하다는 마음과 전업주부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어느 잡지 인터뷰에서는 “나 혼자 살아갈 수 있는 힘과 각오가 생기면, 재혼은 그 다음에 생각해보겠다고 말씀하셨지요. 저처럼 자립하지 못한 사람은 몇 번을 결혼해도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뿐일까요? (중략)

결혼한 예전의 친구들을 만나면 매번 아이나 가정에 관한 이야기뿐입니다. 말로는 다들 나를 불쌍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정한 말투의 이면에서 그녀들의 우월감을 발견하는 것은 제 성격이 일그러졌기 때문일까요?




218~219쪽

어릴 때부터 아무런 대책없이 오기로 똘똘 뭉쳐 있던 나는 10대 후반과 20대 전부를 계급올리는 것에 투자했다. 불안해하거나 주저앉아 있을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서른한 살의 내가 있다. 아니, 있어야 했다. (중략)

나는 몇 년 전부터 여관과 호텔, 음식점을 경영하는 기업의 본사에서 일하고 있다. 현장에서 일하던 내가 본사의 기획부로 전격 발탁된 것이다. 중졸이란 학력으로 음식점 심부름부터 시작해 열일곱 살부터는 고급 클럽의 바니걸로 일했다. 그리고 스물다섯 살에 토끼옷을 벗고 카운터에서 계산대를 맡았다. (중략) 매출을 관리하는 입장에 서자 바니걸로 일할 대는 몰랐던 클럽의 소홀한 부분이 보여서, 웨이터에게 한마디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주장은 놀랄 만큼 순수하게 받아들여져서, 불과 2년 만에 다른 지점과 한 자릿수 차이가 날 만큼 매출이 올랐다. 이를 본사에서 주목했고, 나는 결국 정장을 입고 회사에 다니는 지위에 오른 것이다.

아무리 정장을 입고 회사에 다녀도 출신이 출신인만큼 역시 사람들로부터 멸시당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올라온 사람과 천 미터짜리 산을 자기 발로 몇 번씩 올라온 사람은 근성이 다르기 때문에, 약간의 심술과 비아냥거림은 내게 스트레스조차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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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4 22: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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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6 09: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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