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추리 소설, 이야기 전개 및 사건과 복선 모두, 이렇게 군더더기 없고 깔끔하면 정말 훌륭한 거라고 본다. 비단 작품의 완결성이랄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태 비판까지 더불어 하고 있는데, 소위 말하는 ‘명문 학교 입시’ 문제다.

여기서 잠깐 딴소리하자면, 이 책도 그랬지만, 갑자기 부모 노릇 한다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이냐 하는 생각이 엄습하는 일이 있었다. 퇴근길에 차를 얻어타곤 했던 차장님이 계시다. 50대 중반의 아줌마 차장님이시다. 차장님에 대해서 회사 사람들은 보통 ‘재력가’, 혹은 ‘재산가’라고 표현한다.

강남 도곡동에 타워팰리스 준하는 그런 아파트에 사신다. 훗날 우리집이 차장님의 퇴근하는 길목에 있다는 - 남부 순환로를 타고 가다가 낙성대 역에서 내려 주시고, 강남 방면으로 주욱 가시면 되니까, - 게 계기가 되어 차를 얻어 타고 퇴근을 하게 되면서 차장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재산가’라 명명되는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차장님의 요지는 그런 거였다. 결혼을 하고 신혼집을 그 쪽에 마련했던 게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지금이야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재개발 재건축이 큰 시세 차익을 가져다주었고. 동네를 중심으로 사람들과 교제하다 보니, 펀드라던지 주식으로 수익을 볼 수 있는 정보도 얻게 되었고, 본인의 노력이라기보다는 주변에서 물어다 줬다는 거였다.

또, 돈이라는 게 모으고자 알뜰살뜰 저축해서 되는 게 아니고, 우연찮은 기회에 복이 굴러온다는 그런 이야기가 되겠다. 종자돈 있는 상태에서 큰돈 번 사람들이 으레 하는 얘기라며 귓등으로 들을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올초에 차장님에게 불운한 일이 생겼다. 부군님께서 갑자기 쓰러지신 것이다. 심근경색인가 뇌졸중인가 고혈압?? 아무튼 이런 질환으로 급하게 입원을 하셔야 했다. 차장님은 회사일 때문에 간병인을 두어야 했고 차장님 여동생이 번갈아 환자를 돌보고 있다. 

차장님은 슬하에 딸 하나를 두었는데, 그 아이가 올 수능시험을 본 고3이었다.

차장님은 그 전에도 항상 딸에 대한 걱정이 많으셨다. 나이 마흔을 코앞에 두고, 얻은 딸. 결혼이 워낙 늦으셨고, 아이도 가질까 말까 하셨다고. 딸을 낳기 전에 한번 유산이 된터라, 아이를 꼭 낳아야겠다는 간절함도 없으셨단다. 아무튼 그렇게 생긴 외동딸이 이제 대학 가야 하는데, 공부를 안 해서(못해서가 아니고) 큰 걱정이라고 했다. 영어나 국어 같은 언어 계통은 곧잘 하는 것 같은데, 수학이 형편없어서 고액 과외를 시킨다고 했었다. 그렇다고 다른 과목은 안 시키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언어 영역 과외도 중학교 때부터 동네 아이들과 팀을 짜서 하고 있는 거 계속 하고 있고, 영어도 물론이고 말이다.

대학이나 갈 수 있을까 걱정이라고 늘 말씀하시고, 부군 님께서 쓰러지셨던 최근에는 아이가 어른들 경황이 없어 공부하라는 사람 없으니까, 아주 살판났다며 푸념하셨었다.

차장님이 딸의 진학 때문에 걱정하실 때마다 나는 “그래도 문과 계통을 잘 한다니, 수시나 특별 전형엔 유리하지 않을까요?”라며 늘 좋은 쪽으로 말했었는데, 넋두리하시는 차장님에게 딱 잘라 “아이의 실력을 인정하시고, 부담 주지 마시고, 현실을 받아들이셔야죠!”라고 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런데 정말 이렇게 얘기했더라면 큰일날 뻔했지 뭔가.

수시 1차 합격했다는 ( 수능에서 2과목만 2등급이상이라 최종합격 ) 결과가 나왔단다. 수시 합격? 이대 국어교육과 8명 뽑았다는데.

그 소식을 전해 준 친구에게 “ 차장님 딸 맞아?” 하고 확인했었다. 분명 대학을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이라고 하셨었는데, 그 대학이란 어디를 기준으로 해서 말씀하셨던 걸까?

아, 자식의 성적... 이 민감한 사항에 대해 남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이렇게 한 자락 깐 다음에 말해야 하는 것이 통상적인 것일까?

본 책 내용하고 관련이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쓸데없는 소리이긴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부모 노릇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하는 것만 절감절감이다. 


286쪽 

“누가 범인인지 우리는 몰라. 우리 스스로가 해온 짓을 생각하면 당연히 아이들이 나쁜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해. 에리코 씨가 우리 비밀을 눈치 채고 증거까지 모아두고 있었던 건 우리에게 치명적이었지. 만약 그녀가 살해되기 전에 그 사실을 알았다면 나도 그녀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 주길 바랐을 거야. 그래서 나는 쇼타가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자신이 없는 거지. 우리 스스로가 자신이 없어서 아이들을 믿을 수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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