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1 - 부자들이 들려주는 '돈'과 '투자'의 비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로버트 기요사키, 샤론 레흐트 지음 | 형선호 옮김 / 민음인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직장에서 하는 일은 정확히 말하면, 고등학생들이 보는 학습지를 만드는 일이다. 문제를 출제하는 필자 선생님들은 따로 계시고, 나는 선생님들의 원고를 검토하여 하나의 책으로 엮어내는 일은 하고 있다. 그 책들 중에, 교과서 만드는 작업 같은 것을 할라치면, 근 반년 가량 정기적으로 필자 선생님들과 편집 회의를 거치게 된다. 내가 그 작업을 할 당시, 필자 선생님들 중에 한 분이 상당히 괴짜이셨다. 회의를 하다보면 교재 내용과 무관한 세간에 회자되는 이야기도 나오고, 책 이야기들도 하게 되는데, 무엇보다 이 선생님의 독서량이 장난이 아닌 듯 보였다.

선생님 본인도 항상 자신의 다독 취미에 대해 열변을 늘어놓곤 하셨었다. 이 선생님 말씀 중에 지금도 인상 깊었던 것이 하나 있는데, 현재의 사모님과 결혼을 하기 전, 연애 시절에도 한쪽 팔은 애인(현재 부인)이 끼고 다른 한쪽 손엔 항상 책이 들려져 있었다고까지 했다. 한번은 이런 선생님께 최근 읽는 책들 중에서 권해 주고 싶은 책이 없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러자 이 선생님 한술 더 떠 하시는 말씀이, 요즘 젊은 여성들 경제 관념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주식투자 입문에 대한 책들을 나열하신다. 그리고는 끝에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이야기하셨다.

우리 나라는 사농공상이라는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근대화되지 못한 탓에 학력 자본이 집중적인 투자 대상이 되었고, 여기에다 20세기 내내 일제 침략기와 6.25라는 전시 속의 현대사 학력 자본은 부와 권력을 가져다주는 열쇠와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의사, 변호사와 같은 '사'자 들어간 직업에 껌뻑 죽는 시늉을 하고, 못 먹고 못 입은 부모 세대의 피같은 돈이, 자식 세대의 일류대 진학을 위한 학자금으로 쓰이곤 하였다.

세계 다른 나라, 멀리 갈 것 없이 이 책에 나오는 미국도 과거지사에는 '사'자 들어가는 직업이 돈을 가져다주는 직업을 선망하기는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러한 가치 체계를 대대적으로 전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가난한 아빠로 대표되는 정통 노선의 학력 자본 집단이, 부자 아빠라는 비정통 노선에 의해 도전을 받고 있는 사회 및 세계 전반적인 최근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정통 노선이란 무엇인가? 이는 우리가 어릴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것으로, 오로지 열심히 공부하면 부와 권력을 거머쥘 수 있다는 것이며, 가장 적은 시간과 돈을 들여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으로 학력 자본을 생산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정통 노선이 더 이상 정통성을 가질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부모님들의“놀지 말고 공부하라”라는 말은 더 이상 상징적 가치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 변호사가 되었지만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즉 이제까지의 자본 투자가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도 있는 노선은 더 이상 정통성을 갖지 못하며, 오히려 이러한 노선이 바로 잘못된 한마디로 자본을 쫓아내는 구습이 되는 것이다. 자본의 투자는 고도로 집중성을 요하는 총력전의 성격을 띤다. 그리고 이 총력전에 발빠르게 대처하고, 자본에 대해 선입견과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것이 곧 신흥 부자가 되는 길인 것이다. 나는 이 책이 학력 자본 집단이 권력 자본 집단과 등가라는 공식을 깨고 있다는 데에선 반가운 징후로 읽었다. 비록 흐르는 자본을 거머쥐는 구체적인 방법론 측면에서 보았을 때, 우리 실정에 적용하기 곤란한 부분 많이 보여 약간 아쉽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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