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주의한 사랑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배수아의 소설을 읽고 나면 꼭 드는 생각이 하나가 있다. 사람들은 왜 소설을 읽을까. 대학 시절에 서로가 갖고 있던 소설책을 바꿔 가며 읽던 나의 친구 하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다고. 우울함을 우울한 이야기로 극복해 보려던 나의 얄팍한 마음이 나에게 이 소설을 집어 들게 했듯이.....

아무개가 쓴 문학 개론을 보니 문학의 효용성에는 쾌락과 교훈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배수아의 소설은 한마디로 각성이나 깨달음 갖은 걸 주지 못한다. 어떤 교화의 목적으로 이 소설을 권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배수아의 어느 작품을 읽어 보아도 쉽사리 발견되는 주인공들의 특징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낮에는 백화점이나 호프집 혹은 주유소에서 일하고, 밤이면 검은 늑대의 무리처럼 떼를 지어 도시의 어둠을 배회하거나, 카페에서 밀러를 마시면서 한없이 길고 우울한 심포니의 마지막 쯤을 듣는다. 또한 아무런 자의식 없이 사랑을 나누며, 목적도 없이 한데 어울려 갑작스럽게 바다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조금, 아주 조금 다르다. 일단은 배경 부터가 6.25 직후이며, 주인공들은 가난하고 황량한 삶을 꾸려간다.

어린아이이기도 하도 어른이기도 한 '나'는 주문진의 초라한 병원에서 긴 머리칼을 가진 미숙한 아이로 태어난다. 그런데 '나'는 병들고 늙은 친어머니 맡에서 아버지가 누군지 밝힐수도 없는 부도덕의 상징으로 태어난 아이였기에 이모의 집으로 보내진다. 그래서 '나'는 모유가 아닌 우유만 먹고 자라게 된다. 이모이면서 어머니가 된 사람의 집에는 이미 '나'의 친언니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사촌인 되는 연연이 살고 있다. 그리고 연연은 이모부이자 아버지인 사람과 연인 사이이다. 이모이자 어머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고 낭만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불만과 불행만을 경험하게 된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만, 이른 결혼으로 학교 선생이 된 이모부이자 아버지 또한 상실과 불안의 세월을 보낸다. 그러나 이모는 이모부보다 여섯살이나 연상이고, 그들 부부사이의 꿈과 현실의 괴리가 불행을 낳는다. 그러던 어느날 이모이자 어머니가 병에 걸려 죽게 되고 언니이자 사촌인 연연도 숲에서 도끼에 찔려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심지어 이모부이자 아버지가 그 범인으로 지목되고 ,무기징역을 선고 받곤 감옥에서 미쳐버린다. 그래서 나는 그들 형제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나'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부유한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그 집에서 성장하게 된다.

커 가면서 나는 대학에서 만난 욱이라는 남자아이를 사귀다가 그의 사촌인 유부남 택이와도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나'가 이런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 양어머니는 양아버지와 이혼한 후 암으로 유료 양로원에서 쓸쓸하게 죽는다. 그리고 사촌은 자신의 세번째 아이가 태어나자 '나'의 곁을 떠나고 '나'는 나의 남자친구의 자살을 통해 사촌과의 이별을 실감하면서 허무함을 느낀다.

그러나 참 이상하다. 이 소설 전면에 흐르는 부도덕함이 하나도 부도덕하다고 느껴지지 않고, 위험하고 처절한 이미지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평론가의 말처럼 모든 아름다움은 위험을 동반하기 때문일까? 결락과 허무를 실현되지 않을 꿈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이 독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일까? 삶이 우연에 지배되는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그저 '부주의'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사실 이 모든 우연에 지배되는 농담 같은 삶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재미로 배수아의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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