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남자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9월
절판


이 순간, 노리코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운다. 마치 수문이 열린 것처럼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 마구 운다. 오랫동안 침묵 속에서 고통을 견디어 온 이 젊은 여자, 자신이 선량하다고 믿지 않는 이 젊은 여자. 오로지 선량한 사람만이 자신의 선량함을 의심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선량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쁜 사람은 자신이 선량하다고 생각하지만, 선량한 사람은 자신이 선량함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남들을 용서하면서 삶을 살아 나가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107쪽

30세 생일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지만 브릭은 평생에 단 한번도 자살을 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그의 유일한 관심사가 되었다. 그 후 이틀 동안 아파트에 혼자 앉아서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고통 없이 가장 효율적으로 떠날 수 있는지 그것만 궁리했다.
- 147쪽

인생의 이런저런 순간에, 모든 가족은 아주 기이한 사건을 겪게 된다. 가령 끔찍한 범죄, 홍수와 지진, 기괴한 사건, 기적적인 행운 등이 그런 것이다. 비밀이나 감추고 싶은 약점이 없는 가족은 아무도 없다. 여기자는 그의 얘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많은 가족 혹은 대부분의 가족은 그럴지 모르지만, 모든 가족이 그렇다고 볼 수 없다. 그녀는 자기 가족의 사례를 들면서 단 한번도 기이한 사건, 혹은 예외적 사건이 벌어진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무슨 소리, 알렉이 말했다. 한번 집중해서 잘 생각해 봐. 그러면 뭔가 나오게 되어 있어. 그러자 여기자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래 한 가지 있기는 한데, 라고 대꾸했다.
-167쪽

그녀가 자신의 내부에 많은 고통을 감추고 있다는 걸 알았어. 평상시에 소니아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어. 부드럽고, 상냥하고, 충실하고, 남을 잘 용서하고, 생기발랄하고, 정말 엄청난 사랑의 바탕을 갖고 있었지. 하지만 그녀는 때때로 정신이 딴 데로 팔려 있었어. 심지어 대화 중에도 그러곤 했지. (중략)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녀의 본능이나 충동은 아주 깊었어. 오싹할 정도로 말이야. 그런데 자기 자신과의 관계는 기이할 정도로 천박했어. 그녀는 착한 마음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잘 교육을 받지는 못했어.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고, 그 어떤 것이든 아주 오래 집중하지 못했어.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을 빼고 말이야.
-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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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9-01-12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 오스터도 많이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