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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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가 한눈을 팔면 분노가 치밀고 눈이 뒤집힐 거다. 그에 맞먹지야 않겠지만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작가가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한 작품을 내놓아도 그 작품이 어쩐지 끝끝내 낯설기만 한 것일까. 글쎄,  이 작품은 기법(영화적)이나 주제(교훈적) 면에서 외도를 했는데, 어쩐지 신입사원 연수 들어갔을 때 흔히 듣는 사장님 훈화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인 일인지.

가난한 이탈리아 여대생과 결혼한 하버드 법대생이 여자 때문에 아버지와 의절하지만 고생 끝에 변호사로 성공하고, 둘은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해피엔딩으로 영화 <러브스토리>를 본 스토리와 달리 기억하고 있는 다카하시를 긍정적이고 진취적이며 건강한 인물로 보여 주고 있는 걸로 보았을 땐. 그리고 에리와 마리 자매의 상반되는 삶의 모습에서 보여 주려 했던 것도 같은 맥락 같다. 어릴적부터 CF 모델이었고, 출중한 외모덕에 대중의 시선을 한몫에 받았던 만큼 자신의 의사대로 살 수 없었던 언니. 그리고 그런 언니의 그늘에서 주목을 받지도 못하고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도 못했지만, 자신의 판단과 뜻대로 행동하며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동생.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언니처럼 군중의 욕망의 대상이 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욕망의 주체가 되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235쪽

"인간이란 결국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그 기억이 현실적으로 중요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상관이 없지. 단지 연료일 뿐이야. 신문의 광고 전단지나, 철학책이나, 에로틱한 잡지 화보나, 만 엔짜리 지폐 다바이나, 불에 태울 때면 모두 똑같은 종이 조각일 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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