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문학동네 화첩기행 5
김병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구판절판


때로 사랑은 이데올로기보다 사람을 더 허기지게 하는가.-22쪽

이 거리의 바깥으로, 삶의 표면으로 걸어나갈 수 있긴 할까. 이제 돌아가면 어떤 것이 영화의 한 장면이었고, 어떤 것이 내가 실제로 걸어본 아바나의 거리인지 구별할 수 없을 것 같다. -41쪽

약한 곳, 눌린 자를 바라보는 그의 따스한 시선 때문이었다. 의대생에서 게릴라 대장이 된 이 얼음과 불의 사내에 대해서 잘 폴 사르트르는 "우리 세기에 가장 성숙한 인간"이라고 평했다던가.-89쪽

이파리를 가시로 바꾸며 저 선인장들이 뜨거운 태양을 견뎌내듯, 산다는 건 어차피 무언가를 견뎌내는 것이 아니던가.....-128쪽

생의 한가운데 지점에서 시력을 잃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기억과 추억만으로 나머지 생을 살아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163쪽

실수로 스텝이 엉기면 그게 바로 탱고라오.
실수로 넘어지면, 그게 바로 삶이라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눈먼 퇴역장교 알 파치노가 실수를 두려워하는 젊은 여성과 탱고를 추면서 들려주는 대사다.-169쪽

여행이란 제 마음속의 환상을 찾아가는 것. 환상의 속성이 그러하듯 대개 여행지에서 우리는 짐작과는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209쪽

사람들은 늘 자신의 삶을 프리즘으로 하여 하나님을 해석한다. -218쪽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나는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니야, 그건 목소리는 아니었어.
말도,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느 거리에선가 날 부르고 있었어.
밤의 가지에서,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격렬한 불길 속에서……
-파블로 네루다 「시(詩)」중에서-252쪽

마흔일곱이란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알아버린 나이이며, 고매한 명분이든 여자든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나이라고 스스로 냉소하며 생을 환멸하던 이 사내는 그러나 다시 희망에의 유혹에 빠져든다. -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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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문학 - 어울림의 무늬, 혹은 어긋남의 흔적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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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릇과 버릇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낯선 자아를 '아주 특별한 손님'으로 공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노릇이라는 사회적자아persona의 변덕스러운 교체가 아니라 버릇이라는 완악한 몸의 체계를 바꿔 얻는 생활의 새로운 벡터와 그 정향을 통해서 체계의 욕망들을 넘어선 희망을 일굴 수 있을 것이다. -35쪽

인문人文은 인문人紋인데, 말 그대로 '사람의 무늬'를 뜻한다. 그래서 인문학은 인간의 무늬를 살피고 헤아리는 공부인 셈이고, 마찬가지로 인문학의 진리란 인간의 무늬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42쪽

자신의 존재가 딛고 선 자리를 살피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살피는 일의 극적인 전형이 공부라면,(하이데거나 김우창 등의 말처럼) 공부란 결국 바닥없음 Bodenlosigkeit을 살피고 견디는 버릇이다. -77쪽

변덕은 허영의 가장 가까운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허영은 결국 자기 자신을 속이는 분열의 일종이므로 그 분열 속에서 변덕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허영의 주체는 그 주체의 허약성을 가리기 위한 전술로서 변덕에 호소할 수밖에 없고, 간혹 그 변덕이 먹히지 않을 경우에는 냉소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허영과 변덕과 냉소는 삼위일체를 이룬다. -90쪽

자신에 대한, 자신을 위한, 그리고 자신을 향한 거짓말이 어느덧 진지해지면서 내면화되면, 그것은 '허영'이 되고 그는 속물이 된다.-98쪽

진실은 인식의 문제이기 이전에 인정의 문제, 혹은 용기의 문제가 된다.-151쪽

내 삶으로부터 영영 사라져버린 대상의 의미를 새삼스레, 애달프게 깨치는 일도 그것대로 중요하지만, 그 상실의 사건을 통해 내 자신이 변화한 것을 체득하는 일은 몹시 어려운 만큼 더 소중한 체험이 된다.-210쪽

자네Pierre Janet의 지적처럼, "외상적 상황이 만족스럽게 청산되려면 행동의 외적 반응 뿐 아니라 내적 반응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결정한 어휘로써 그 사건을 상세히 설명할 수 있고 이 설명이 개인사의 한 장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232쪽

"사랑은 반복되는 나날과 삶으로부터 우리를 일탈시켜주거나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복을 온 마음으로 기다리게 하는 것으로 우리를 구원한다."(장정일, [보트 하우스])-256쪽

상처받은 자들의 사랑은 그 상처를 보듬고 어루만져나가면서 더불어 이루는 호혜의 합작合作이 아니라 그 상처를 덧나게 하고 강박적으로 반복하고 그에 대한 턱없는 비용과 대가를 요구하는 어리석음의 고독인 것이다. -300쪽

사람무늬人紋의 섬세함과 그 무늬들의 이치인 일리一理의 복잡성, 더 나아가 수많은 일리들이 생태이치적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섭동攝動의 미묘함을 글, 말, 생활 그리고 희망 속에서 부지런히 톺아보며 부사 같은 대화, 부사 같은 글쓰기, 부사 같은 걷기를 실천하는 '부사적 지식인'은 부사라는 메타적 틈새를 응용하여 사람무늬가 지닌 총체적 가능성을 조형해나갈 수 있다.-3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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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와 책 -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정혜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품절


자의식이란 건 우리가 그 무게에 짓눌러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해석해야 할 대상이고 만들어나가야 할 대상일 뿐이니, 지금의 우울로 둔갑한 자의식 역시 우리를 지배하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날은 제대로 술 한잔 마신 날인 것이다.-27쪽

발작적이기만 한 사랑의 고통에서 헤어나고 하트 에이스보다 더한 고독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을 구석구석 탐색하고 질문을 해대는 방법밖에 없다. 몸과 마음 함께 말이다. -47쪽

모든 대상은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에 따라 좋거나 나쁜 것으로 인식될 뿐이라는 것도 여행덕에 알게 되었다. -58쪽

내가 무언가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을 때면 당시에 겪었던 마음의 상처들이 떠오르고, 내가 죄책감을 느낄 때면 당시의 죄책감이 다시 돌아온다. 내가 오늘날 무언가를 그리워하거나 향수를 느낄 때면 당시의 그리움과 향수가 되살아나곤 한다. 우리 인생의 층위들은 서로 밀집되어 차곡차곡 쌓여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중의 것에서 늘 이전의 것을 만나게 된다. 이전의 것은 이미 떨어져 나가거나 제쳐둔 것이 아니며 늘 현재적인 것으로 생동감있게 다가온다.-66쪽

얼굴과 손과 입과 몸은 사랑을 만나기 전에는 꿈과 같은, 혹은 단순한 잠재적 가능성의 상태일 뿐이다.-116쪽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122쪽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언젠가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라!' 사랑을 잃는다는 것은 그런 일을 할 기회가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129쪽

'가장 중요한 일은 가장 말하기 어려운 법이다!'-171쪽

나는 왜 개츠비를 읽는가? 세상의 모든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행복했던 과거의 어느 시점을 떠올려주기 때문에 개츠비를 읽는다. 초록 불빛은 있어도 그 불빛에 이르는 방법을 알 수 없는 날, 개츠비를 읽는다. 모든 순간은 상처를 주고 마지막 순간은 목숨을 앗는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에 개츠비를 읽는다. 나의 절망 때문에 우는 날은 개츠비를 위해서도 울 수 있다. 뒤라스식으로 말하면, 눈물 흘리는 것이 쓸모없다 할지라도 눈물은 흘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절망은 만져지는 것이 아니므로. -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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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별 -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11월
구판절판


2004년 로셸 알메이다는 [애도의 정치학]에서 특별히 여성의 애도 작업 4단계를 제시한다. 상실의 현실 수용하기, 고통과 슬픔 통과하기, 망자 없는 환경에 적응하기, 죽은 자에 대한 감정을 재조직하고 삶과 함께 나아가기. 의존 대상이던 배우자를 잃었을 때 여성에게는 특히 자립과 생존의 문제가 더 무거운 현실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28쪽

울음을 잘 참는 사람을 강한 사람이라 여기는 인식은 언제쯤 생겨난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두려움이나 불안감에서 비롯된 편견이아닐까 싶다. 슬픔을 참는 이들은 대체로 한번 울음을 터뜨리면 자기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 일단 울기 시작하면 절대로 그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 지배당하기도 한다. 잘 갈무리된 사회적 얼굴을 헝클어뜨리는 순간 자신이 해체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우리는 불안 때문에 슬픔을 감추면서 날마다 더 많은 불안감을 쌓아가고 있는 셈이다. -211쪽

상실한 대상, 과거의 자기를 떠나보낼 때 마음 깊은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일은 내면의 부모 이미지, 내면의 아기도 떠나보내는 일이다. 우리는 오래도록 부모나 교사가 성장기 내내 만들어준 바로 그 모습으로 살아왔다. 우리의 꿈 역시 부모의 꿈이 그대로 주입된 경우가 많다. 우리는 여전히 내면의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간직한 채 부모에게서 배운 생존법을 구사한다.-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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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 -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기행- 유럽편
권삼윤 지음 / 효형출판 / 1999년 6월
품절


육체는 나름의 감각을 갖고 있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체감'이 바로 그것이다. 체감온도, 체감물가란 말에서 보듯이 그것은 상대성에 기반을 두고 있어 이론적으로 증명되는 절대온도나 통계상의 물가와는 다르다. 내가 느끼는 것이 당신이 느끼는 것과 다를 수 있듯이 '육체'를 자랑하고 '체감'을 존중하는 그리스를 비롯한 지중해 문화권은 바로 이같은 상대성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했다. 그 바탕 위에 자유와 평등의 개념이 싹텄다.-18-19쪽

유일(唯一)과 전능(全能)을 뜻하는 열쇠, 그것은 한편으로는 배제와 부정을 담고 있다. 오직 그것만이어야 하고 그래서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하니까. 메마르고 척박한, 그래서 생명체가 잘 자라지 않고 변화가 없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태어난 기독교란 종교의 핵심이다. 이와 같은 땅에서 태어난 유일신 종교인 유태교나 이슬람교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69쪽

아우슈비츠(Auschwitz)와 오수비엥침(Oswiecim). 똑같은 곳을 다르게 부르고 있는 사실에서 이중적인 역사의 실체를 발견한다. -176-177쪽

역사는 창조해 나가며 새로이 써가는 것이긴 해도 기억이란 레일 위를 달리는 것일 뿐 결코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기억은 하나의 유전인자가 되어 대대로 이어져 내려가며 역사의 레일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요즘 입에 오르내리는 '정체성(identity)'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기억을 공유하는 것에 다름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식민지배자는 기억의 도구인 피지배자의 말과 글, 그리고 그 내용인 역사를 가르치는 것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려 하는 것이 아니던가. -179쪽

자신의 문제를, 그리고 삶을 스스로의 역사적 경험과 뼈를 깎는 듯한 고민과 진지한 성찰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이미 이룩한 성과만을 좇아 손쉽게 해결하려고 하는 서구화 또는 위로부터의 혁명은 겉으로는 그럴 듯한 성과를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속으로는 곪게 마련이다. 그렇게 곪고 터지는 부분은 혁명을 통해 이득을 보는 소수가 아니라 늘 가난하고, 못배우고, 힘없고, 수모당하고, 박해받는 다수의 약한 자의 몫이 된다. 러시아가 그랬고 또 많은 나라에서도 그랬다. 그것이 어찌 그들만의 일로 끝나겠는가.-194쪽

개혁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하는 고육지책이다. 위기는 항상 사회 모두가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할 때 나타나므로 개혁은 원래의 기능을 회복하도록 새로운 방법으로 대응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200쪽

유럽의 기독교 세계에선 왜 까마득히 높은 탑이 세워졌는지에 의문을 갖고 오랫동안 연구한 마그다 알렉산더는 [탑의 사상]이란 저서에서 탑은 실용적 기능은 없고 오직 형이상학적 기능만 있다는 전제하에, 그 형이상학적 기능이란 '생(生)에의 의지'와 권력에의 의지'의 표현이라고 풀이했다. -208쪽

여느 도시 같으면 이들을 모두 수용하기 위해 길도 넓히고 호텔이나 레스토랑을 비롯한 편의시설들을 짓겠지만 베르겐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의 수용능력과 정화능력의 범위 내에서만 관광객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관광객들이 뿌리는 돈에 현혹되어 삶의 공간이 망가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은 잠시 이곳을 지나갈 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자손들은 오래도록 이곳에서 살 것이다. 오늘 이 순간을 위해 미래를 희생할 수 없다는 생각과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믿음으로 그들은 산다. -236쪽

그러나 오늘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알기 위해 하늘을 쳐다보지는 않는다. 대신 시계를 본다. 내일의 날씨가 궁금할 때는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일기예보를 듣거나 읽는다. 자연의 변화를 감지하는 일들을 모두 기계에 맡겨 버린 현대인들은 오직 자기 주위의 사소한 일들에만 관심을 갖는다. 하늘, 영원, 근본, 전체... 이런 것들은 관심사에서 멀어진 지 이미 오래다.-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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