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문학 - 어울림의 무늬, 혹은 어긋남의 흔적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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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릇과 버릇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낯선 자아를 '아주 특별한 손님'으로 공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노릇이라는 사회적자아persona의 변덕스러운 교체가 아니라 버릇이라는 완악한 몸의 체계를 바꿔 얻는 생활의 새로운 벡터와 그 정향을 통해서 체계의 욕망들을 넘어선 희망을 일굴 수 있을 것이다. -35쪽

인문人文은 인문人紋인데, 말 그대로 '사람의 무늬'를 뜻한다. 그래서 인문학은 인간의 무늬를 살피고 헤아리는 공부인 셈이고, 마찬가지로 인문학의 진리란 인간의 무늬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42쪽

자신의 존재가 딛고 선 자리를 살피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살피는 일의 극적인 전형이 공부라면,(하이데거나 김우창 등의 말처럼) 공부란 결국 바닥없음 Bodenlosigkeit을 살피고 견디는 버릇이다. -77쪽

변덕은 허영의 가장 가까운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허영은 결국 자기 자신을 속이는 분열의 일종이므로 그 분열 속에서 변덕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허영의 주체는 그 주체의 허약성을 가리기 위한 전술로서 변덕에 호소할 수밖에 없고, 간혹 그 변덕이 먹히지 않을 경우에는 냉소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허영과 변덕과 냉소는 삼위일체를 이룬다. -90쪽

자신에 대한, 자신을 위한, 그리고 자신을 향한 거짓말이 어느덧 진지해지면서 내면화되면, 그것은 '허영'이 되고 그는 속물이 된다.-98쪽

진실은 인식의 문제이기 이전에 인정의 문제, 혹은 용기의 문제가 된다.-151쪽

내 삶으로부터 영영 사라져버린 대상의 의미를 새삼스레, 애달프게 깨치는 일도 그것대로 중요하지만, 그 상실의 사건을 통해 내 자신이 변화한 것을 체득하는 일은 몹시 어려운 만큼 더 소중한 체험이 된다.-210쪽

자네Pierre Janet의 지적처럼, "외상적 상황이 만족스럽게 청산되려면 행동의 외적 반응 뿐 아니라 내적 반응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결정한 어휘로써 그 사건을 상세히 설명할 수 있고 이 설명이 개인사의 한 장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232쪽

"사랑은 반복되는 나날과 삶으로부터 우리를 일탈시켜주거나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복을 온 마음으로 기다리게 하는 것으로 우리를 구원한다."(장정일, [보트 하우스])-256쪽

상처받은 자들의 사랑은 그 상처를 보듬고 어루만져나가면서 더불어 이루는 호혜의 합작合作이 아니라 그 상처를 덧나게 하고 강박적으로 반복하고 그에 대한 턱없는 비용과 대가를 요구하는 어리석음의 고독인 것이다. -300쪽

사람무늬人紋의 섬세함과 그 무늬들의 이치인 일리一理의 복잡성, 더 나아가 수많은 일리들이 생태이치적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섭동攝動의 미묘함을 글, 말, 생활 그리고 희망 속에서 부지런히 톺아보며 부사 같은 대화, 부사 같은 글쓰기, 부사 같은 걷기를 실천하는 '부사적 지식인'은 부사라는 메타적 틈새를 응용하여 사람무늬가 지닌 총체적 가능성을 조형해나갈 수 있다.-3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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