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문학에세이
김상욱 지음 / 우리교육 / 1998년 9월
구판절판


문학이란 언어에 대한 감각이 아닌 삶에 대한 인식이며, 문학을 매개로 삶의 비의를 엿보기 위한, 선이 굵고 교양이 있는 어엿한 주체적인 인간으로 스스로를 형성해가기 위한, 도구이자 장치이자 수단인 것이다. -39쪽

'오가며 그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오히려 눈에 뛸까 다시 걸어도/ 되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 오늘도 비 내리는 가을 저녁을/ 외로이 이집 앞을 지나는 마음/ 잊으려 옛날일을 잊어버리려/ 불빛에 빗줄기를 세며 갑니다'
발이 머물고, 발이 머물고..... 그러나 오늘은 이다지 황망히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밍기적거리는 아이를 이끌며.
선생님을 향한 기다림으로 이어졌던 나날들 속에서 이 노래는 황지우가 쓴 또 한 편의 연시(戀詩)와 나란히 제 마음속을 휘돌고 있었습니다. 결국 가닿지 못한 채. 이제서야 이미 희미해진 그 마음의 한 자락 이렇게 펼쳐보입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154-155쪽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뼈아픈 후회'. 문학사상사-155쪽

삶의 진실이 없어져버린 것이 아니라, 다만 도저한 자본의 힘에 억눌린 채 은폐되어 있을 뿐임을 절실하게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세월의 변화에도 아랑곳 없이 자잘한 삶의 자락들에서 놓칠 수 없는 진실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그런 견고한 진실은 언제나 튼튼하게 우리 앞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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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물고기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품절


삶이 고통스러운 것을 우리는 피할 수 없어.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고통에 대한 태도가 바뀌고 삶에 대한 대처 능력이 생기는 거래. 고통을 통해서 결국 고통을 줄이게 되지. -131쪽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자기 자신을 상대에게 몰입하는 것, 그 모습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147쪽

기억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이라고. 모든 인간에겐 자신의 인생이야 말로 가장 탐구할 만한 텍스트다. 사실이란, 기억을 통해서 재구성하는 각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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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읽는 정신분석 - 김서영의 치유하는 영화읽기 정신분석과 미학총서 5
김서영 지음 / 은행나무 / 2007년 8월
구판절판


우리가 자주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남들도 다"이다. "다른 엄마들은 다 하니까 나도." 아이를 생각하지 않는 어머니의 변명이다. 어머니는 그 말을 되풀이하며 아이의 반복되는 호소를 듣지 않는다. 상황이 심각해졌을 때 그녀는 다시 말한다. "미안하다.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 다른 엄마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그냥 그랬던 건데..." 전체 속에서 한 사람이 사라지는 경우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 그 혹은 그녀가 말하는 것을 듣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주 "다들"이라는 말 속에서 내가 지금 듣고 있는 말을 흘러버린다. -18쪽

상상계적인 영화들은 우리의 일상이 초라해 보이도록 만든다. 힘겹게 견디고 있던 하루가 더욱 남루하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처럼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너무나 왜소하고 구차하게 느껴진다. 그 영상들이 제시하는 허상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꾸미고 바꾸어 특정한 모습이 되도록 부추긴다. 반면 상징계적인 영화들은 개인 속의 아름다움을 포착해 낸다. 한 사람이 특별해지며 그/그녀가 포함된 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인물들의 모습에 배인 걱정과 고통과 불안을 따라가며 우리는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50쪽

그림자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안의 모습을 뜻하며 그것은 항상 바깥세상에서 유사한 특성을 가진 타인에게 투사된다. 그러면 나와 전혀 다른 모습인 듯 보이는 그 사람이 왠지 모르게 싫어진다. -80쪽

몸과 마음이 괴로울 때는 잠시 멈추어 생각해야 한다. 무엇이 나를 괴롭게 만드는가? 내 몸과 마음을 괴롭게 만드는 상황을 억지로 견디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괴로운 반복을 멈추어야 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괴로운 느낌을 설명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할 수 있어야한다. 특히 어떤 가족들의 경우 막연히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사랑이라는 말로 모든 것이 무마되는 듯하기에 따지거나 묻지 않는다. 그런데 서로를 보지 않고 서로에게 귀 기울이지 않으면 오히려 제삼자에게는 분명해 보이는 것들이 정작 가족이라는 테두리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장 큰 문제는 괴로운 느낌을 말하지 않는 데 있다. -97쪽

내 앞의 있는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그 속에 나타나는 말의 틈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일상적인 말들 속에는 분노와 미움이 서려있을 수도 있고 사랑과 그리움이 배어있을 수도 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단어 속에 원망이 들어 있을 수도 있고 미워한다고 말하지만 그 안에 사랑하는 마음이 녹아있을 수도 있다. 한 사람의 말을 들으며 그 말을 토대로 또 다른 이야기를 읽어내는 것이 바로 정신분석이다. -134쪽

부족한 2퍼센트의 공간을 읽어내고 그것을 분석하는 것, 또는 그 공간을 의미로 채우는 것은 정답을 아는 다수가 아니라 다른 누구와도 구별되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202쪽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것, 언제나 비어있을 수밖에 없는 것, 바로 그 빈 공간 때문에 우리는 욕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대상을 부여잡아도 신기루와 같이 사라지며 결코 만족할 수 없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바로 사랑에 빠질 때이지요. 사랑이라는 것은 욕망의 특성을 뛰어넘는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실재적인 것으로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209쪽

여러 경험을 통해 제가 내린 결론은 나 자신을 믿고 '내 마음대로 하면 된다'입니다. 마음껏 해석하고 부수고 고치고 재조립하며 가슴 속에서 들리는 가장 자연스러운 목소리를 최선을 다해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그림이 그려질 것입니다. -222쪽

자, 이제 변하세요. 내가 누군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내 모습을 바라보세요. 당신의 당당해진 눈빛 자체가 당신을 정의해 줄 것입니다. 내가 누군지 남에게 묻지 마세요. 정신분석을 통해 나를 분석하고 내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세요. 내가 누군가를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내가 왜 그랬는지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며 쓰다듬고 안아주고 보살피세요.-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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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최재천 지음 / 궁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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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실리언스Consilience'라는 말은 새로 만들어진 어려운 말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지식의 대통일' 정도로 옮길 수 있을겁니다. 그래서 저는 '통섭(統攝)'이라고 번역했습니다.-19쪽

하지만 다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 따로따로 숨 쉬는 개체, 그리고 개체의 번식을 통한 형질의 계승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변이를 통해 변화가 일어나며, 이것은 다시 각각의 개체를 이전의 개체들과 다르게 만듭니다. 이렇게 각기 다른 것이 우리의 본질이며, 그 다양성이야말로 아름다운 것이라고 다윈은 주장했습니다.-64쪽

교육은 가르치는 쪽이 주도권을 쥐어야만 교육이 됩니다. 이 세상에 나와서 우리가 행동할 수 있게끔 만들어가는 것이기 교육이기에 대분분 일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91쪽

우연히 꽃잎과 비슷하게 닮은 것들이 생존에 유리해 번식을 더 많이 하게 되고, 그런 과정이 오랜 세월 반복되면서 지금은 우리로 하여금 머리를 긁적이게 할 정도로 정교해진 것입니다. -198쪽

동물 사회의 협동은 경제 활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모여 살아야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모여 살게 되면 그 집단 구성원간의 경쟁이 또 다른 문제가 됩니다. 누구는 너무 많이 갖고 누구는 너무 적게 갖게 되는 이른바 분배의 문제가 풀어야 할 숙제가 됩니다. -244쪽

왜 우리가 서로 도와야 하는지 이야기하려 합니다. 사실 이기적 유전자를 운운하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남을 돕고 삽니다. 더 도울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하면서 때로는 그렇게 못하는 걸 자책하며 삽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을 인간이게 한 가장 위대한 힘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유전자가 하는 일이죠.-348-349쪽

법이란 내가 누군가를 도운 만큼 그도 나를 도와야 한다는 것을 서로 조율하기 위해 생겨난 제도이지요.-358쪽

즉 유전적으로는 관계가 없더라도 내가 도움을 주고 그 도움이 나한테 돌아올 확률만 높으면 서로 돕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전적으로 관련이 없는 동물들 간에도 서로 돕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죠. 트리버즈의 이론 덕택에 우리 조상들도 서로 돕고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설명이 가능해졌습니다. 서로 돕는 것이 바로 유전자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3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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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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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들러붙어 있던 이 모든 것들, 그러니까 물건, 약정, 계약, 자동이체, 그리고 이런저런 의무사항들을 털어내면서 나는 이제는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나는 쓸데없는 것들을 정말이지 너무도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들로부터 도움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그것들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읽지 않는 책들, 보지 않은 DVD들, 듣지 않는 CD들이 너무 많았다. 인터넷 서점에서 습관적으로 사들인 책들이 왜 자기를 읽어주지 않느냐고 일제히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런 비난이 두려워 우리는 후회의 순간을 미래로 이월해 버린다. 나중에는 보겠지. 언젠가 들을 날이 있을 거야. 그러나 그런 날은 여간해서 오지 않는다. 새로운 물건들이 계속 도착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순간의 만족을 위해 사들인, '너무 오래 존재하는 것들'과 결별해야겠다고 결심했다.-33쪽

사서 축척하는 삶이 아니라 모든 게 왔다가 그대로 가도록 하는 삶, 시냇물이 그러하듯 잠시 머물다 다시 제 길을 찾아 흘러가는 삶. 음악이, 영화가, 소설이, 내게로 와서 잠시 머물다 다시 떠나 가는 삶. 어차피 모든 것을 기억하고 간직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33쪽

그들에게 비너스란, 즉 아름다움이란 무엇이었을까? 나는 미美란 하나의 거대한 오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미란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음란한 매혹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란 다다를 수 없는 천상의 특질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란 정복함으로써만 소유 가능한 일종의 재산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는 끝내 이해 불가능한 난해한 개념이며 또 누군가에게 미는 즉각 제거해야 할 불길한 미혹인 것이다. 미는 끝내 정의되지 않은 채 천상의 도시 깊은 곳에서 풍문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183-184쪽

시칠리아는 삼각형의 섬이다. 삼각형의 세 변은 각각 유럽과 그리스와 아프리카를 바라보고 있다. 등을 돌린 세 사람이 각각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섬, 그것이 시칠리아다. 유럽을 바라보고 있는 쪽에 파레르모가 있다. 그리스를 바라보고 있는 쪽은 메시나에서 시라쿠사까지이고 아그리젠토나 젤라는 아프리카를 향하고 있다.-222쪽

그러나 그 신전들은 이제 무너져 기둥 몇 개만 남아 있다. 호텔의 발코니에 앉아 그중 가장 온전하게 남아 있는 콩코르디아 신전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저런 유적들은 왜 우리의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는가? 왜 우리는 저런, 반쯤 무너져버린 불완전한 건물들에서마저 미적 쾌감을 얻는 것일까? 왜 유네스크와 이탈리아 정부는 엄청난 세금을 들여 이 유적들을 복원 혹은 보존하려는 것일까? 그리고 왜 아무도 그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 것일까? 왜 우리는 어떤 건물들은 거금을 들여서라도 보존하고, 거듭하여 그것을 감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반면, 다른 어떤 건물들은 무가치하다고 여겨 당장 무너뜨려 한줌의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게 마땅하다고 믿게 되는 것일까? 아그리젠토의 신전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들을 불러일으킨다. -276쪽

"맞아.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거야."
"가이드북 보니까 이탈리아에 이런 속담이 있대. 사랑은 무엇이나 가능하게 한다. 돈은 모든 것을 이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죽음이 모든 것을 끝장낸댜."
"갑자기 뜬금없이 웬 속담?"
아내가 짐짓 딴지를 걸어왔다.
"그러니까 여행을 해야 된다는 거야."
"결론이 왜 그래?"
"결론이 어때서?"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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