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란 언어에 대한 감각이 아닌 삶에 대한 인식이며, 문학을 매개로 삶의 비의를 엿보기 위한, 선이 굵고 교양이 있는 어엿한 주체적인 인간으로 스스로를 형성해가기 위한, 도구이자 장치이자 수단인 것이다. -39쪽
'오가며 그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오히려 눈에 뛸까 다시 걸어도/ 되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 오늘도 비 내리는 가을 저녁을/ 외로이 이집 앞을 지나는 마음/ 잊으려 옛날일을 잊어버리려/ 불빛에 빗줄기를 세며 갑니다' 발이 머물고, 발이 머물고..... 그러나 오늘은 이다지 황망히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밍기적거리는 아이를 이끌며. 선생님을 향한 기다림으로 이어졌던 나날들 속에서 이 노래는 황지우가 쓴 또 한 편의 연시(戀詩)와 나란히 제 마음속을 휘돌고 있었습니다. 결국 가닿지 못한 채. 이제서야 이미 희미해진 그 마음의 한 자락 이렇게 펼쳐보입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154-155쪽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뼈아픈 후회'. 문학사상사-155쪽
삶의 진실이 없어져버린 것이 아니라, 다만 도저한 자본의 힘에 억눌린 채 은폐되어 있을 뿐임을 절실하게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세월의 변화에도 아랑곳 없이 자잘한 삶의 자락들에서 놓칠 수 없는 진실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그런 견고한 진실은 언제나 튼튼하게 우리 앞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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