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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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498~1499년, 대리석, 174cm × 195cm,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어머니. 누구나에게 각별히 다가오는 감성의 낱말이리라. 어머니께서 간직하고 계신 올바른 모성. 그것은 감동이다. 마치, 미켈란젤로가 다듬은 '피에타'처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피에타(Pieta, 자비를 베푸소서)'를 간절히 기도한 성스러운 어머니 마리아. 그 어머니의 거룩함에서 지극한 감동이 느껴진다. 모든 어머니들은 낳은 아이에게 그런 감동을 아낌없이 주시리라. 그런 어머니의 감동을 담은 한 이야기. 나의 어머니와 그림이 겹치며, 나의 눈시울을 적신다. 끊임없이 적신다.


 '이 거리에 동경을 품고 저마다의 고향에서 가슴을 두근거리며 찾아온 사람들.
 이 도시는 그런 사람들의 꿈과 희망, 회한, 슬픔을 잠들게 하는 커다란 묘지인지도 모른다.' -498쪽.


 아들. 고향을 떠나 도쿄에 온다. 미술 공부를 하러. 그런데, 빈둥거리기만 하다가 졸업을 못한다. 그리고 빚은 쌓여만 가고. 그의 고향 규수 치쿠호 지역으로 폐광이 다가오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엄니(어머니)와 다정하게 보냈다. 비록 가난했지만. 머물지 않는 바람 같은 아버지였지만. 그런 그가 대도시에서 하루하루 보내며, 꿈과 희망, 회한, 슬픔을 만났다. 

 엄니. 여전히 올바른 모성을 지니시고 감동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아픔이 찾아온다. 암. 이분의 병이다.


 '모두들, 참 대단하다, 참 애들 쓰고 있구나……. 인간이 어머니로부터 태어나는 한, 이 슬픔을 면할 수 없다. 인간의 목숨에 끝이 있는 한, 이 공포를 마주쳐야 하는 것이다.' -495쪽.


 단장(斷腸)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함.


 단장(斷腸)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유래를 보면, 어머니 원숭이와 아이 원숭이의 이야기다. 빼앗긴 아이 원숭이를 위해 달려오신 어머니 원숭이. 결국에는 삶을 마감하는데, 창자가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깊은 슬픔으로. 애끊는 이 슬픔. 모성에서 나온 이 슬픔. 모성으로 다가가는 이 슬픔도 있으리라. 어머니를 향한 애끊는 슬픔. 어머니를 잃는 단장의 슬픔.

 이제, 나의 어머니도 여기저기 아프시다고 하신다. 언제나 곁에 계시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어머니. 잃을 수도 있다. 어머니의 상실은 큰 슬픔이리라. 아마도 단장의 슬픔이리라. 옛날 내가 멀리서 오래 지내게 되어, 떠나기 전날 밤. 어머니께서 내 손을 꼭 잡아 주시던 기억이 있다. 감동이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같은 감동이 이어졌다. 깊은 감동을 주신 소중한 어머니. 그 어머니를 잃는 애끊는 슬픔을 만나기 전, 효도를 다하고 싶다. 어머니의 손을 잡아 드리고 싶다.


수욕정이풍부지 (樹欲靜而風不止), 자욕양이친부대 (子欲養而親不待)

나무는 고요하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모시고 싶어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한시외전(韓詩外傳)》 9권 중에서.


 잊지 말자. 이 글을.


 '도쿄 타워'는 이렇게 나의 어머니를 그리게 하는 소설이다. 몇 번이고, 감동의 눈물로 그리게 하는 소설. 그렇게 그려진 어머니께 따뜻한 기쁨을 드리고 싶어지는 아름다운 소설.



 덧붙이는 말.

 

 하나. 이 '도쿄 타워'는 지은이인 릴리 프랭키의 자전적인 소설이라 한다. 그의 어머니께서 암으로 세상을 뜨기 직전에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둘. 2006년 제3회 서점대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셋. 소설가 유미리가 주축이 되어 창간한 잡지 [en-taxi]에 4년간 연재되었으며, 단행본 출간 후 ‘우는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다면 전철 안에서 읽는 건 위험하다’라는 입소문을 타고 23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고 한다.

 넷. 배우 ‘키키 키린’과 ‘오다기리 죠’ 주연으로 2007년에 영화화되었으며, ‘하야미 모코미치’ 주연으로 연속 드라마 방영, 무대에서 연극으로도 선보이며 그 열풍을 이어갔다고 한다.

 다섯. '상을 받고 책이 많이 팔린 것보다 한참이나 목소리도 듣지 못했던 부모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다거나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자고 불러냈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더 기쁘다’고 릴리 프랭키는 서점대상 수상 소감에서 말했다.

 여섯. 이 '도쿄 타워'는 개정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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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 - 애플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조용한 천재
린더 카니 지음, 안진환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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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8월 11일 일요일. 스티브 잡스는 팀 쿡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의 후계자로. 애플의 CEO로. 그렇게 애플의 새 선장이 된 그. 사실, 잡스가 없는 애플은 상상이 안 됐다. 혁신의 대명사인 잡스. 그가 없는 애플은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추락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 새 선장이 된 팀 쿡. 안정과 실리를 지키는 조용한 그. 스티브 잡스와 너무나도 다른 그. 그의 항해는 좌초되지 않았다. 지금, 더 힘찬 바람으로 항해를 하고 있다. 그런 그의 모험담이 여기 있다.


 '"그가 나를 선택할 때 내가 자신과 같지 않다는 것을, 내가 자신의 복사본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그렇게 했을까요? (……) "또 그가 과연 애플을 맡길 후임자를 즉흥적으로 골랐을까요? 얼마나 오랜 시간 심사숙고했을지 안 봐도 알 수 있잖아요. 나는 항상 그렇게 선택된 데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가제본 41쪽.


 정말, 잡스도 후임자 선택에 신중을 기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선택이 지금까지는 옳았다. 현재, 애플의 새 선장에 대한 불안은 기우(杞憂)였던 것이다. 잡스와 달리 공급망과 재고 관리의 귀재라는 그. 그의 항해 아래, 애플은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었고, 주가가 올랐으며, 현금 보유고도 늘었다. 그는 잡스의 선택에 완벽하게 호응하며, 자신의 책임을 모범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접근가능성: 애플은 접근가능성이 인간의 기본권이며, 모든 사람이 기술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교육: 애플은 교육이 인간의 기본권이며, 모든 사람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환경: 애플은 환경에 대한 의무감을 바탕으로 제품의 설계와 제조에 임한다.

 포용성과 다양성: 애플은 각기 다른 다양한 팀이 존재해야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프라이버시와 안전: 애플은 프라이버시가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믿는다. 애플의 모든 제품은 처음부터 사람들의 프라이버시와 안전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공급자 책임: 애플은 공급 사슬에 속한 사람들을 교육한 후 그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며 귀중한 환경 자원을 보전하도록 돕는다.' -가제본 11쪽.


 2017년 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한 재무보고서에는 애플을 경영하는 쿡의 여섯 가지 핵심 가치가 조용히 피력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접근가능성, 교육, 환경, 포용성과 다양성, 프라이버시와 안전, 공급자 책임이다. 팀 쿡의 경영 철학인 것이다. 동성애자인 팀 쿡. 그런 소수자이기에 특히, 포용성과 다양성이라는 그의 가치가 더욱더 이해된다. 


 '쿡은 '잘하면서 동시에 선을 행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격언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가제본 403쪽.


 팀 쿡이라는 애플의 새로운 선장이 그동안 모든 것을 잘했다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꽤 항해를 잘했다. 그런데, 그는 선장이 된 지 아직 10년도 되지 않았다. 그를 평가하기에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 또, 격변하는 세상에서 앞으로 어떤 역풍과 큰 파도 또는 무서운 해적이 이 배를 흔들지 모른다. 크게 흔들릴지도 모른다. 애플이라는 배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이 배가 좌초되어 썩은 사과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팀 쿡을 보건대, 멋진 항해를 할 확률이 꽤 높다. 애플 전문 저널리스트라는 저자가 팀 쿡을 무척 호의적으로 이야기했는데, 그 누구도 쿡의 능력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순함의 아름다움을 아는 애플! 그 큰 배를 이끄는 팀 쿡의 항해에 건투를 빈다. 다만, 애플의 고가 정책에는 쓴소리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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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30 08: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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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31 22: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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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이다 - 세스 고딘의
세스 고딘 지음, 김태훈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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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이 "이 펜을 나에게 팔아 보시오(Sell me this pen)."라고 말했다.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The Wolf of Wall Street, 2013)의 대사다. 주가 조작 등으로 부자가 된 한 남자, 조단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扮))의 말이다. 얼핏 들으니, 미국 기업들이 신입 사원을 면접할 때, 자주 던지는 질문이라고 한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쉽게 지갑을 열지 않기에, 어렵다. 무엇을 판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마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을 것이다. 답변자가 적성과 열의를 바탕으로 얼마나 독창성과 논리를 갖추어서 매력적인 설득력을 보여주는가. 그것이 이 질문을 한 사람이 보고자 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마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것처럼, 마케팅의 본질을 말하는 한 사람이 있다. 세스 고딘이다.


 '마케팅은 변화를 일으키는 행위다.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기 전에는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뿐더러 마케팅을 한 것이 아니다. (……)

 바꾸고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은 긴장을 창출하고 해소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 -가제본 13쪽.


 마케팅은 변화를 일으키는 행위라고 말한다. 어떤 마케터들은 더 많이 팔고, 더 많이 알리기 위해 그저 속임수를 생각하고는 한다. 허위 광고, 과장 광고 등으로 속인다. 우리는 무언가를 사고 속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지만, 이제는 잘 속지 않는다. 많은 정보를 만나는 우리들은 더 이상 속지 않게 됐다. 그런데, 긴장을 창출하고 해소함으로써 변화를 일으키는 마케팅을 한다면, 그런 속임수는 쓰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한다. 애써 팔지 않아도 스스로 살 것이므로.


 '당신의 제품은 거절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적지만 당신의 세계관에 동조하고 열광하는 고객(최소유효청중), 애초에 당신이 섬기려고 했던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가제본 63쪽.


 그런데, 마케터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을 것이다. 선택과 집중. 여기에도 필요하다. 마케터가 하는 이야기에, 세계관에 공감하는 이들. 그들에게 확실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 그것이 필요한 것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돈 중독을 이야기했다. 살짝 거리감을 두고 적나라하게. 마케터도 돈에 초점을 두기만 한다면, 그들도 돈에 중독되는 것은 아닐지. 그렇게 속물이 되는 것은 아닐지. 개미의 피를 마시는 늑대처럼.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런 기본적인 질문들을 잊지 않고, 거짓을 버리고 나아가야 할 것. 이것이 세스 고딘이 마케팅에 대한 대답이다. 마케팅에 꼼수를 버리고,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그. 마케팅의 목적은 사람들을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는 그. 마케팅에 대한 총칙(總則) 같은 그의 이야기. 그의 통찰력에 나를 성찰하게 됐다. 그렇게 마케팅에 대한 나만의 대답을 이어가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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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무민 골짜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8
토베 얀손 지음, 최정근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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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민'을 잘 몰랐다. 그저 '무민' 인형이 있다는 것만 알았다. 어쩌다 보니, 그 인형 하나가 침대에 있기는 하다. 인형을 좋아하는 조카 덕분에. 솔직히, '무민' 연작 소설이 있다는 건 이 책을 만나고서야 알았다. 연작 소설의 마지막, 제8권, '늦가을 무민 골짜기'를 만나고서야. 책을 보니, 무민에게는 가족이 있다. 또, 친구로서 찾아오는 이들도 있고.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무민 가족이 어딘가로 떠나 있다. 그 빈자리에 친구들이 찾아오고, 그리워한다.

 

(사진 출처: 작가정신 네이버 블로그)


 '언제나 그래 왔듯이 머무르는 이와 떠나는 이가 있게 마련이었다. 어떻게 할지는 누구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만,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포기할 방법은 없었다.' -12쪽.


 ''어딘가에 숨어 있는 무민 가족을 찾아서 집으로 돌아오게 만들기란 어렵지 않은 일인지도 몰라. 섬은 지도에 다 나와 있으니까. 거룻배는 물이 새지 않게 구멍을 막으면 되고. 하지만 왜? 그냥 내버려두자. 무민 가족들도 외따로 떨어져 있고 싶을지도 모르니까.'' -132쪽.


 찬바람이 부는 늦가을인 11월, 무민 가족은 외딴 등대섬으로 떠났다. 그들이 있던 골짜기에, 집에 손님이 찾아온다. 여섯 명의 친구. 배가 있지만, 항해를 해본 적이 없는 헤물렌. 자신의 이름도 잊게 되는 그럼블 할아버지. 무민 가족에 입양된 동생 미이가 보고 싶은 밈블. 심한 결벽증으로 청소를 하는 필리용크. 무민 가족을 만난 적은 없지만, 무민마마를 이상적인 엄마로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훔퍼 토프트. 비 노래를 만들 노랫가락을 찾기 위해 남쪽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무민 골짜기로 온 스너프킨. 이 여섯 명은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하나하나 찾아온다.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잃거나 잊어서 불안하고 불만인 그들. 무민 가족에게서 위로를 받고자 했다. 그런데, 없다. 비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기다렸다. 그리고 이해하게 된다. 서로를. 무민 가족을.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벗이 멀리서 찾아주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 중에서.


 '세상은 나와 내가 아닌 것으로 이루워져 있다. 나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아닌 것을 향한 끊임없는 나아감. 그것으로 세상을 허물고 이룬다. 결핍은 내가 아닌 것으로 시작되어 나에게로 종결된다. 또한 나는 세상에 지문(指紋)과 족적(足跡)을 남긴다. 또, 내가 아닌 것도 지문과 족적을 남긴다. 내가 아닌 것, 그것은 주로 타인이다. 그들이 환기하는 결핍. 그것이 나의 현존이 된다.'1 그렇게 나와 내가 아닌 것은 서로 이해하고, 기대어 살아가며, 지문과 족적을 남긴다. 여기 무민 골짜기에 지문과 족적을 남긴 이들이 있다. 무민이 아니다. 그리고 무민의 가족은 아니지만, 벗이라 할 수 있다. 결핍이 있는 그들. 무민 가족에게서 채움을 받으려 했다. 그런데, 그들은 무민 가족을 그리워하며, 스스로의 결핍을 감지했고, 채움의 가능성으로 달릴 수 있었다. 존재하는 이와 부존재하는 이. 함께 할 수 있었다. 서로 이해하고, 기대어 살아가며, 지문과 족적을 남길 수 있었다. 부존재하더라도 '벗이 멀리서 찾아주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할 수 있었다. 결핍을 채울 수 있기에.




 덧붙이는 말.

 

 하나. 토베 얀손은 56세에 발표한 이 작품을 끝으로 무민 시리즈를 더는 집필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로부터 7년 뒤인 1977년에는 그림책 '위험한 여행'을, 1980년에는 사진 그림책 '무민 가족의 집에 온 악당'을 출간했고, 지금까지도 무민은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둘. 토베 얀손은 작품이 출간된 1970년에 '늦가을 무민 골짜기'로 아동 청소년 문학상인 헤파클룸프(Heffaklump)상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과 공동 수상했다고 한다.

 셋. 마지막 무민 연작 소설 '늦가을 무민 골짜기'는 작가의 어머니 싱느 하마스텐-얀손(Signe Hammarsten-Jansson)이 세상을 떠난 직후 그 빈자리를 견딜 수 없어 쓴 작품이라고 한다.

 넷. 전작인 '무민파파와 바다'와 병렬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한다.

 다섯. 원제는 ‘무민 골짜기의 11월’이라고 한다.  


 

  1. 김유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 '릿터' 17호, 199쪽. 글의 앞부분을 발췌, 변형하여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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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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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황성(城) 옛터'라는 노래를 들었었다. 폐허가 된 고려의 옛 궁터 만월대(滿月臺). 그곳을 찾았던 사람들의 쓸쓸한 감회(懷)를 그린 노래였다. 1928년에 나왔다는 이 노래. 일제강점기였던 그때, 조선 망국의 한(恨)도 스민 노래였다. 폐허, 슬픔과 아픔이 묻어 있는 곳이다. 나는 개성의 무너진 만월대를 걸은 적은 없지만, 재개발을 앞둔 마을을 걸은 적은 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뛰던 그 골목들. 재개발을 반대하는 절규들이 곳곳에 물들어 있던 곳. 설운 회포들이 담긴 곳. 나는 그런 잔해들을 순례하며, 우울을 만났다. 그리고 여기, 파멸의 잔해를 여행하는 이가 또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한여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던 1992년 8월, 다소 방대한 작업을 끝낸 뒤 나는 내 안에 번져가던 공허감에서 벗어나고자 영국 동부의 써픽주(州)로 도보여행을 떠났다.'-20쪽.


 소설에서 말하는 이는 여행을 떠났다. 공허감에서 벗어나고자. 떠났다. 그런데, 결국 마비된 상태로 입원하게 된다. 노퍽 지방의 주도(州都)인 노리치의 병원에. 일 년 만에. 그리고 글을 쓴다.


 '폐허에 가까이 갈수록 망자들의 신비로운 섬에 와 있다는 생각은 점점 사라졌고, 그 대신 미래의 어떤 대재앙으로 파멸한 우리 자신의 문명의 잔해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본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가 남겨놓은 금속과 기계의 쓰레기더미 사이를 돌아다니는 미래의 이방인처럼 나 또한 도대체 어떤 존재들이 여기서 살고 일했는지 (…) 이해할 수 없었다.' -278쪽.


 여행을 떠났던 그. 정처 없이 다닐다가, 미로에 길을 잃기도 한다. 파멸한 문명의 잔해를 만나는 그. 전쟁과 침략의 광기. 그 욕망의 광기. 그 광기가 그런 상처를 남겼다. 희생자들의 아픔을 뚜렷이 그린 그. 제국주의로 식민지를 경험한 우리는 그 대재앙의 깊은 아픔을 안다.


 '때때로 우리는 이 지구에서 사는 데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들이고, 삶이란 끝없이 진행되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실수라는 생각이 듭니다.'-259쪽.


 우울. 폐허에서 어두운 우울을 만나고 아파한다. 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진다. 그 날카로움으로 난 상처가 아리다. 그래도 그 안에 무딤도 있다. 끝없이 진행되는 실수인 삶. 영원히 이어지는 실수의 삶. 그렇게 실수와 함께 소생하는 삶. 그 안에서 새롭게 탈바꿈하며, 우울을 벗어나야 한다. 파괴는 고통이다. 그리고, 고통을 넘어서 무너진 것을 다시 세워야 하리라. 힌두교의 신 시바가 파괴자인 동시에 변형과 재건까지도 책임지는 복합적인 존재인 것처럼.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모든 강은 하늘에서 내려왔으리라. 하늘에서 내린 빗방울이 모이고 모인 강. 그 강은 유연함으로 길을 이룬다. 강은 파멸하면서도 끝없이 재생한다. 부드러움과 힘참, 감미로운 빛과 은밀한 향. 우렁찬 함성과 소리 없는 노래. 그것이 함께 어우러진 강.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강. 제발트의 소설 '토성의 고리'도 마치 강 같다. 사실과 허구가 모호하게 어울린다. 여러 사진으로 사실성을 부여하지만 결국은 허구인 소설이다. 꿈과 현실이 강처럼 그 경계에 있는 제발트의 낯선 소설이다. 소설에서 말하는 이도 제발트인지 아닌지 모호하기도 하고. 그리고 강처럼 하늘 같이 높은 사유가 모여 흐름이 된다. 그렇게 매우 독특하게 다가온다. 유연하게 의식의 길을 이룬다. 또 어렵게 다가온다. 그래도 설명할 수 없는 큰 위안을 받게 된다. 그저 계절의 바뀜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이는 말.


 하나. 소설 '토성의 고리'는 제발트가 남긴 네 소설 가운데 세 번째 소설이다.

 둘. 제발트 문학에 열광하는 독자들을 제발디언(Sebaldian)이라고 한다고 한다.

 셋. 토성의 고리는 토성의 달이었던 것이 행성에 너무 가까이 위치하여 그 기조력으로 파괴된 결과 남게 된 파편들인 것으로 짐작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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