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무민 골짜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8
토베 얀손 지음, 최정근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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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민'을 잘 몰랐다. 그저 '무민' 인형이 있다는 것만 알았다. 어쩌다 보니, 그 인형 하나가 침대에 있기는 하다. 인형을 좋아하는 조카 덕분에. 솔직히, '무민' 연작 소설이 있다는 건 이 책을 만나고서야 알았다. 연작 소설의 마지막, 제8권, '늦가을 무민 골짜기'를 만나고서야. 책을 보니, 무민에게는 가족이 있다. 또, 친구로서 찾아오는 이들도 있고.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무민 가족이 어딘가로 떠나 있다. 그 빈자리에 친구들이 찾아오고, 그리워한다.

 

(사진 출처: 작가정신 네이버 블로그)


 '언제나 그래 왔듯이 머무르는 이와 떠나는 이가 있게 마련이었다. 어떻게 할지는 누구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만,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포기할 방법은 없었다.' -12쪽.


 ''어딘가에 숨어 있는 무민 가족을 찾아서 집으로 돌아오게 만들기란 어렵지 않은 일인지도 몰라. 섬은 지도에 다 나와 있으니까. 거룻배는 물이 새지 않게 구멍을 막으면 되고. 하지만 왜? 그냥 내버려두자. 무민 가족들도 외따로 떨어져 있고 싶을지도 모르니까.'' -132쪽.


 찬바람이 부는 늦가을인 11월, 무민 가족은 외딴 등대섬으로 떠났다. 그들이 있던 골짜기에, 집에 손님이 찾아온다. 여섯 명의 친구. 배가 있지만, 항해를 해본 적이 없는 헤물렌. 자신의 이름도 잊게 되는 그럼블 할아버지. 무민 가족에 입양된 동생 미이가 보고 싶은 밈블. 심한 결벽증으로 청소를 하는 필리용크. 무민 가족을 만난 적은 없지만, 무민마마를 이상적인 엄마로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훔퍼 토프트. 비 노래를 만들 노랫가락을 찾기 위해 남쪽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무민 골짜기로 온 스너프킨. 이 여섯 명은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하나하나 찾아온다.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잃거나 잊어서 불안하고 불만인 그들. 무민 가족에게서 위로를 받고자 했다. 그런데, 없다. 비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기다렸다. 그리고 이해하게 된다. 서로를. 무민 가족을.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벗이 멀리서 찾아주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 중에서.


 '세상은 나와 내가 아닌 것으로 이루워져 있다. 나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아닌 것을 향한 끊임없는 나아감. 그것으로 세상을 허물고 이룬다. 결핍은 내가 아닌 것으로 시작되어 나에게로 종결된다. 또한 나는 세상에 지문(指紋)과 족적(足跡)을 남긴다. 또, 내가 아닌 것도 지문과 족적을 남긴다. 내가 아닌 것, 그것은 주로 타인이다. 그들이 환기하는 결핍. 그것이 나의 현존이 된다.'1 그렇게 나와 내가 아닌 것은 서로 이해하고, 기대어 살아가며, 지문과 족적을 남긴다. 여기 무민 골짜기에 지문과 족적을 남긴 이들이 있다. 무민이 아니다. 그리고 무민의 가족은 아니지만, 벗이라 할 수 있다. 결핍이 있는 그들. 무민 가족에게서 채움을 받으려 했다. 그런데, 그들은 무민 가족을 그리워하며, 스스로의 결핍을 감지했고, 채움의 가능성으로 달릴 수 있었다. 존재하는 이와 부존재하는 이. 함께 할 수 있었다. 서로 이해하고, 기대어 살아가며, 지문과 족적을 남길 수 있었다. 부존재하더라도 '벗이 멀리서 찾아주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할 수 있었다. 결핍을 채울 수 있기에.




 덧붙이는 말.

 

 하나. 토베 얀손은 56세에 발표한 이 작품을 끝으로 무민 시리즈를 더는 집필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로부터 7년 뒤인 1977년에는 그림책 '위험한 여행'을, 1980년에는 사진 그림책 '무민 가족의 집에 온 악당'을 출간했고, 지금까지도 무민은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둘. 토베 얀손은 작품이 출간된 1970년에 '늦가을 무민 골짜기'로 아동 청소년 문학상인 헤파클룸프(Heffaklump)상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과 공동 수상했다고 한다.

 셋. 마지막 무민 연작 소설 '늦가을 무민 골짜기'는 작가의 어머니 싱느 하마스텐-얀손(Signe Hammarsten-Jansson)이 세상을 떠난 직후 그 빈자리를 견딜 수 없어 쓴 작품이라고 한다.

 넷. 전작인 '무민파파와 바다'와 병렬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한다.

 다섯. 원제는 ‘무민 골짜기의 11월’이라고 한다.  


 

  1. 김유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 '릿터' 17호, 199쪽. 글의 앞부분을 발췌, 변형하여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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