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옷을 도대체 누가 살까?'

생각하는 그 순간 같이 쇼핑을 하던 남편이 말한다.

"저 옷 괜찮다!"

나는 차마 방금 하던 내 생각을 그대로 얘긴 못하고 대답을 얼버무린다.

 

"풀밭이 좀 이래야 멋이 있지."

사람의 인공적인 손길이 안가서 자연스러워 보인다며, 내가 보기엔 돌보지 않아 내팽겨쳐진 것 같은 풀밭을 지나며 남편은 말한다.

 

도대체 어떻게 부부가 되었는지, 도대체 공통점이란게 있긴 있는지, 처음 만났던 때 기억을 더듬어 보기도 하지만 20년도 더 지난 일이 기억이 잘 날리 만무이다. 기억이 나면 또 어쩔거냐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살고 있다.

 

근래 어떤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젊은 남녀 둘이 이제 막 커플이 될랑말랑 하는 타이밍. 첫 데이트를 한다고 만나긴 만났는데 정작 함께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맞는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계속 의견 불일치.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맞는게 한개도 없다고 서로 툴툴거리며 결국 점심도 푸드코트에 가서 각자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나서 우리는 아무래도 커플은 안되려나보다 실망하며 돌아가던 중, 남자가 갑자기 인형뽑기를 해야겠다고 한다. 그 캐릭터인형을 모으고 있는 중이라며 인형뽑기기계에 동전을 넣었는데 동전만 먹고 작동이 안된다. 남자는 가게 주인에게 얘기하지만 가게주인은 지금까지 그런 일이 없었다며 남자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그냥 포기하려는 남자를 보다못해 여자가 대신 가게 주인에게 따박따박 따진다. 자기가 못가진 면을 여자에게서 발견하는 남자는 여자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이번엔 바람이 불어 여자가 목에 매고 있던 스카프가 풀어져 날라가더니 옆의 개천 같은 곳에 떨어졌다. 아끼는 스카프라며 안타까워하는 여자를 보더니 남자는 망설일것도 없이 신발을 적셔가며 개천에 풍덩풍덩 들어가더니 스카프를 주워다가 여자에게 건네준다. 아무렇지도 않게 몸사리지 않고 자기를 위해주는 남자를 보고 조금전까지만 해도 유치하고 어린애 같다고 여기던 여자의 마음도 움직인다.

서로 공통점이 한개도 없다고 투덜거리던 커플은 곧 나는 이렇게 밤 바람 느끼며 걷는게 좋다고 여자가 말하자 남자가 자기도 좋아한다고 맞장구 치며 드디어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다고 좋아한다. 한여름 40도 가까이 푹푹 찌는 날씨 너무 싫다고 한 사람이 말하자 다른 사람도 자기도 그렇다고 맞장구, 그렇다고 해서 영하 30도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것은 너무 싫다고 그러니 다른 쪽도 나도 그렇다며 맞장구. 누구나 그럴 것 같은 것들을 하나씩 대며 공통점을 하나씩 더해 간다.

결국 이들은 우린 연인 되긴 틀렸나보다 생각했던 걸 취소하고 좀 더 사귀어 보기로 한다.

 

남녀 사이, 꼭 부부나 연인 아니라 친구 사이에도, 공통점이 있으면 좋겠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아홉가지 공통점과 한가지 다른 점이 있는데 다른 점 한가지를 크게 보며 우리 관계는 이래서 안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을 때 비슷한 점들을 떠올리며 그 덕에 이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 같다.

하나의 사람 자체가 하나의 우주라는데, 어떻게 공통점이 다른 점보다 더 많을 수 있겠는가.

서로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것 자체가 무리이지.

네가 나에게 맞춰라 요구하는게 무리이지.

 

 

 

 

 

 

 

 

 

 

 

 

 

 

 

 

토끼풀

 

 

 

 

 

 

 

 

이팝나무

 

 

 

 

 

 

 

벚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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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발 (不發)"이라는 글자가 화면에 나타날 때 혹시 영화 속 저 인생, 불발인가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저는 오히려 이 세상에 불발인 인생은 없다는 것을, 이 영화를 보면서 확인하게 되었답니다.

 

 

 

추천해드립니다.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2017)

 

 

 

감독, 각본: 임대형

주연: 기주봉, 오정환, 고원희, 전여빈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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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빛에 한나절 한눈을 팔다가

깜빡 졸았던가? 한평생이 그새 또 지나갔던가?

할머니들은 가끔 눈을 비빈다

 

 

 

- 김기택 시 <봄날> 일부 -

 

 

 

 

 

 

 

 

 

 

 

 

 

 

 

 

 

 

 

 

 

 

 

 

 

 

 

 

 

 

 

 

 

 

 

 

 

 

 

 

 

 

 

 

 

지난 주말

아버지 산소에 갔더니 

철쭉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나비는 얼마나 바쁜지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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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8 - 5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8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8권에 이르고 보니 이제 이야기가 관성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런 관성 형성 자체가 쉽게 이루어질 일은 아니고 그만한 누적된 분량 덕을 보는 것이라지만 18권에서는  특별한 큰 사건이랄 것 없이, 강물이 하류를 향해 천천히, 넓고 얕게 흘러가는 느낌으로 진행된다.

앞권에서 도솔암에 관음탱화를 그린 길상은 다시 체포되어 감옥에 가있느라 이 권에서는 한번도 등장을 하지 않고, 봉순과 이상현의 딸이자 서희가 양딸을 삼은 양현의 애정문제와 혼사 문제로 갈등을 빚는다. 서희는 둘째 아들 윤국과 양현을 부부로 맺어주고 싶어하고 윤국도 양현을 마음에 두고 있지만 양현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윤국을 오빠로만 생각하며 자라왔다는 것과 양현의 마음 속에 있는 다른 사람이 너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뜻을 굽히지 않는 서희의 마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서희 자신도 그 마음의 정체를 발견해가며 고민한다.

임이네와 이용의 아들인 이홍. 이홍의 딸 상의. 진주에서 여고를 다니는 상의의 이야기를 통해 일제 하 조선의 고등교육 현장이 어떠했는지, 어떻게 친일 교육이 이루어졌고 학생들의 생활은 어떠했는지 꽤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어 흥미로왔다.

상현을 좋아했으나 거절당하고 조용하와 결혼했던 임명희는 앞권에서 조용하와 이혼, 자살 시도 등 어려운 시절을 보내다가 친구 여옥의 도움으로 재기하고 유치원을 경영하기도 한다. 좋아하던 상현의 딸인 양현을 피붙이처럼 여기고 도와주고자 한다.

임명희의 오라버니 임명빈은 건강이 좋지 않아 심각한 지경까지 가는데 몸과 더불어 어지러운 마음과 자책의 무게를 힘겨워 하다가 임명희의 권유로 요양차 해도사와 소지감이 있는 지리산 도솔암으로 가서 머문다.

도솔암에서 이범호와 해도사, 임명빈의 대화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한다.

"사람들 뽑아서 맨드는 대통령, 그런 제도를 민주주의라 하는 모양인데." (448쪽)

해도사는 민주주의는 서양 것이 아니라 요순시대에서 나왔다고 이범호에게 주장하기도 한다.

"산골 늙은네들도 요순시대를 알고 있는데 자네가 모를 까닭이 없지. 바로 그게 민주주의인게야. 황하를 다스리는 사람이 만백성에게 뽑히어 제왕이 되었으니, 국토를 바르게 관리하고 백성들을 재난에서 지켜주며 일하여 먹고 살게 했으면 그게 바로 태평성세요 민주주의 아닌가. 각별하게, 어렵게 이러고 저러고 꿰어맞출 필요 어디 있누. 하하핫..." (448쪽)

한편 토지에서 계속 끊이지 않고 이어져가는 사상은 동학이 아닐까 한다.

이범호가 해도사에게 과거 동학을 했느냐고 묻자 해도사는 그냥 구경했노라며 대답한다. 여지껏 동학에 대해 한참 설을 풀던 것과는 다른 대답에 반문을 하는 이범호에게 해도사는 한마디 덧붙인다.

"밖에서 보았으니까 잘 보였던 게지." (452쪽)

참, 모순 아닌가. 어떤 생각이나 사건의 중심에 있을땐 안 보이는 것이 정작 거기서 나와야 잘 보인다는 것 말이다.

사랑도 끝나봐야 그 실체를 더 잘 알고 사람도 헤어진 후 그 관계가 더 잘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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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니콘 스토어 (Unicorn store), 2017

 

 

 

 

 

 

현재 상영중인 엔드 게임 여주인공 브리 라슨이 주연, 제작, 감독까지 한 영화이다.

2017년 영화인데 최근 네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유니콘 스토어. 말 그대로 유니콘을 파는 가게라는 뜻.

화가가 되고 싶어 미대에 진학하지만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자 좀 더 현실적인 삶을 살기로 하고 학교를 중퇴, 회사에 취직한 여주인공 키트. 하지만 거기서도 만족을 못느끼던중 유니콘을 파는 가게에서 초대장을 받는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주제를 환상적인 색채와 디즈니 영화 같은 플롯에 담아 내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

뻔한 줄거리와 뻔한 결말.

개인적 평점은 ★★☆☆☆

 

 

 

 

 

 

2. 보살핌의 정석 (The fundamentals of caring), 2016

 

 

 

 

 

이 영화 역시 뻔할 수 있는 얘기임에도 전혀 다른 느낌으로 보았다. 감동도 있고 재미도 있는.

큰 주제는 뻔할지 몰라도 디테일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일까.

근위축증을 앓고 있어 혼자서 화장실도 못가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트레버.

아버지는 세살때 엄마와 이혼하고 집을 떠났고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트레버는 낮에 엄마가 직장에 가있는 동안 보살펴줄 간병인이 필요했다. 어린 아들을 사고로 잃고 부인으로부터는 이혼을 요구 받고 있는 벤이 트레버의 간병인으로 오게 되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트레버도, 벤도, 그 밖에 출연하는 피치, 도트, 모두 개인적인 아픔이 있는 사람들.

자기의 아픔을 혼자의 힘으로 극복하는건 어렵지만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보는건 가능하다는것이 새삼 눈에 들어오는 영화이다. 그렇게 서로 상처를 인정하고 돌보며 어떻게 어떻게 삶을 끌고 나가는 모습에서 보는 사람은 말없는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

개인적인 평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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