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8 - 5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8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8권에 이르고 보니 이제 이야기가 관성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런 관성 형성 자체가 쉽게 이루어질 일은 아니고 그만한 누적된 분량 덕을 보는 것이라지만 18권에서는  특별한 큰 사건이랄 것 없이, 강물이 하류를 향해 천천히, 넓고 얕게 흘러가는 느낌으로 진행된다.

앞권에서 도솔암에 관음탱화를 그린 길상은 다시 체포되어 감옥에 가있느라 이 권에서는 한번도 등장을 하지 않고, 봉순과 이상현의 딸이자 서희가 양딸을 삼은 양현의 애정문제와 혼사 문제로 갈등을 빚는다. 서희는 둘째 아들 윤국과 양현을 부부로 맺어주고 싶어하고 윤국도 양현을 마음에 두고 있지만 양현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윤국을 오빠로만 생각하며 자라왔다는 것과 양현의 마음 속에 있는 다른 사람이 너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뜻을 굽히지 않는 서희의 마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서희 자신도 그 마음의 정체를 발견해가며 고민한다.

임이네와 이용의 아들인 이홍. 이홍의 딸 상의. 진주에서 여고를 다니는 상의의 이야기를 통해 일제 하 조선의 고등교육 현장이 어떠했는지, 어떻게 친일 교육이 이루어졌고 학생들의 생활은 어떠했는지 꽤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어 흥미로왔다.

상현을 좋아했으나 거절당하고 조용하와 결혼했던 임명희는 앞권에서 조용하와 이혼, 자살 시도 등 어려운 시절을 보내다가 친구 여옥의 도움으로 재기하고 유치원을 경영하기도 한다. 좋아하던 상현의 딸인 양현을 피붙이처럼 여기고 도와주고자 한다.

임명희의 오라버니 임명빈은 건강이 좋지 않아 심각한 지경까지 가는데 몸과 더불어 어지러운 마음과 자책의 무게를 힘겨워 하다가 임명희의 권유로 요양차 해도사와 소지감이 있는 지리산 도솔암으로 가서 머문다.

도솔암에서 이범호와 해도사, 임명빈의 대화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한다.

"사람들 뽑아서 맨드는 대통령, 그런 제도를 민주주의라 하는 모양인데." (448쪽)

해도사는 민주주의는 서양 것이 아니라 요순시대에서 나왔다고 이범호에게 주장하기도 한다.

"산골 늙은네들도 요순시대를 알고 있는데 자네가 모를 까닭이 없지. 바로 그게 민주주의인게야. 황하를 다스리는 사람이 만백성에게 뽑히어 제왕이 되었으니, 국토를 바르게 관리하고 백성들을 재난에서 지켜주며 일하여 먹고 살게 했으면 그게 바로 태평성세요 민주주의 아닌가. 각별하게, 어렵게 이러고 저러고 꿰어맞출 필요 어디 있누. 하하핫..." (448쪽)

한편 토지에서 계속 끊이지 않고 이어져가는 사상은 동학이 아닐까 한다.

이범호가 해도사에게 과거 동학을 했느냐고 묻자 해도사는 그냥 구경했노라며 대답한다. 여지껏 동학에 대해 한참 설을 풀던 것과는 다른 대답에 반문을 하는 이범호에게 해도사는 한마디 덧붙인다.

"밖에서 보았으니까 잘 보였던 게지." (452쪽)

참, 모순 아닌가. 어떤 생각이나 사건의 중심에 있을땐 안 보이는 것이 정작 거기서 나와야 잘 보인다는 것 말이다.

사랑도 끝나봐야 그 실체를 더 잘 알고 사람도 헤어진 후 그 관계가 더 잘 보이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