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프헤드 - 익숙해 보이지만 결코 알지 못했던 미국, 그 반대편의 이야기 알마 인코그니타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지음, 고영범 옮김 / 알마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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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펄프헤드라는 제목부터 설명을 해야겠다.

'펄프픽션 (Pulp fiction)' 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퀜틴 타란티노 감독이 만든 미국 영화인데 영화제목 펄프픽션이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저렴한 종이 (펄프지)에 인쇄된 소설이라는 뜻이다. 주로 값싼 대중소설 잡지에 실리는 범죄, 공포, 탐정 이야기 등, 자극적이고 저속한 내용을 다뤘고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문학적 가치는 낮다고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펄프헤드 (Pulp head)'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의미를 지니지 않지만 펄프픽션에서 유래된 단어로 해석될 수 있다. , 저급하고 자극적인 대중문화나 소설을 즐기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비공식적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head”는 특정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펄프헤드는 이러한 장르에 대한 애호가를 뜻할 수 있다.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존 제레미아 설리번이 2011년에 출간한 이 책 <펄프헤드>는 일종의 에세이 모음집으로서 미국의 대중문화와 사회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하며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과 유머로 독특한 서술 방식을 보여주는 책이다. 각각 독립적인 열 네 편의 이야기f를 통해 미국사회의 특이성과 모순을 한데 모아 보여준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의 구석에서 끌어올린 소재를 직접 체험하거나 답사하여 내용을 모으고, 자기만의 스타일로 정리하여 써내려 간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소설 같기도 하다. 어떠한 주제라도 유머 감각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진지함과 깊이를 함께 겸비한 이 책은 뉴욕 타임즈와 타임 매거진에서 2011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여기에 수록된 이야기는 모두 미국 사회 + 대중문화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반석 위에서는 설리번이 크리스천 록 (rock) 페스티벌에 참석한 경험을 다룬다. 제목의 반석 rock을 우리말로 이렇게 번역한 듯. 독특한 음악 장르와 신앙이 관계를 분석하며 미국의 종교적 풍경과 음악이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미스터 라이틀: 에세이는 설리번이 남부의 문학가 Andrew Nelson Lytle (1902-1995)과 함께 살았던 경험을 회상하며 쓴 글로,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라일리는 노년에 접어든 작가로 설리번은 그와의 시간을 통해 남부 문화와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게 된다.

마지막 웨일러는 전설적인 레게 뮤지션 버니 웨일러와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자메이카의 레게 음악과 그 문화적 뿌리를 조명한다.

액슬 로즈의 마지막 컴백은 건즈 앤 로지스의 보컬 액슬 로즈에 대한 글로 그의 복잡한 인격과 록 음악계에서의 부침을 기록했다.

마이클 잭슨의 삶과 음악, 그리고 그의 문화적 유산을 분석하여 그가 어떻게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는지에 대해 쓴 마이클’, 미국 남동부 원주민들의 알려지지 않은 동굴 유적과 그것을 발굴하는 사람들을 따라 가서 취재한 이름 붙여지지 않은 동굴들’, 자기 집을 페이튼스 플레이스라는 제목의 TV 시리즈 촬영지로 빌려준 이야기 페이튼스 플레이스등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직접 경험하거나 참여하여 쓴 기록이다. 가장 나의 관심을 끌었던 글은 지구 환경과 생태계를 마구 훼손, 손상시키고 있는 인간에 대한 동물의 반격을 취재한 양들의 폭력이라는 글이었다. 지구가 마치 인간의 소유물인양, 인간은 다른 어떤 생물이라도 마구 이용하고 함부로 다뤄도 되는 권리가 있는 양 행세해온 오랜 시간들은 생각하지 않고 동물들의 반격을 의외라고 여기는 이기적인 면을 보여주었다. 인간에 대한 방어 차원의 공격 수준에서 나아가 언젠가는 동물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가정이 과연 가정일까?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성찰하게 하였고 지금의 지구 온난화와 이상기온이 그에 대한 경고장임을 상기시켰다.

논픽션이라는 기본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글쓴이의 생각과 감정이 자유롭게 가미되어 생동감 있는 글이 될 뿐 아니라 직접 본인이 보고 겪은 일을 썼다는 점에서 더 신뢰가 가기도 하는 점은 이런 형식의 글의 이점이라고 생각한다. 객관성은 좀 떨어질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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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4분 33초 - 제6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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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보다 작가를 먼저 알게 되었다. 문학라디오에 초대 작가로 나온 이서수는 하고 싶은 말 많고 쓰고 싶은 것 많은 듯 질문자의 질문마다 솔직하게 얘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2014년 신춘문예에 당당히 당선되고도 아무데서도 책을 내자는 청탁이 들어오지 않는 동안 생계를 위해 택배, 북카페 까지 하면서 버틴 6년의 시간이 있었다. 작가는 그 시기를 '암흑기'라고 표현했다.

이 소설에는 작가의 경험이 많이 녹아들었을 인물 '이기동'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어려서부터 너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엄마의 기대와 다르게 외모도, 성적도, 능력도 어느 것 하나 뛰어난 것 없이 평범하기 그지 없는 학생으로 학교를 졸업한 이기동은 작가가 되어보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공모전마다 떨어져 소설가로서의 능력도 의심스럽던 차에 아버지 유품 속에서 아버지가 써놓았던 소설 초고를 발견하고 그것을 응모하여 드디어 등단의 꿈을 이룬다. 하지만 이서수가 그랬듯이 이기동도 얼결에 등단은 했으나 아무데서도 청탁이 들어오지 않아 백수로 시간을 보내면서 대필 작가에 지원하기도 하고 엄마가 하는 김밥집 일을 도와드리는 등 글 쓰는 작가와 무관한 일을 하며 절망도 낙담도 하지 않은 채 세월을 보낸다. 

학생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던 이기동은 알바 틈틈이 도서관에 가서 아무 책이나 뽑아서 읽는게 낙이다. 그러다가 비록 청탁 들어오는데는 없어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내 맘대로 쓰는 일은 언제나 할 수 있겠다' 생각한다. 그 무렵 도서관에서 우연히 알게 된 미국의 작곡가 존 케이지와 그의 음악은 이기동에게 일종의 아이오프너였다.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는 소리들도 존 케이지에게는 음악이 될 수 있었고, 악기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는 침묵 조차 음악이었다. (이서수 작가가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된 책이 1961년 출판된 John Cage의 <Silence>이다.)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라고,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은 것도 음악이라고, 당당히 주장하는 존 케이지가 있듯이 이기동에게도 남들이 아닌 나의 글을 써나간다는 소신을 가지게 하였다. 이 소설은 이렇게 존 케이지의 일대기와 이기동의 이야기가 병렬로 이어져 나간다. 존 케이지라는 레전드 격의 인물은 이기동과는 전혀 극과 극의 인물인 듯 하지만 이 둘을 작가는 독특하게 묶어놓는데 성공하였다. 

이기동은 자기의 원고를 포함하여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소설들, 낙선자들의 책을 전시해놓는서점의 주인이 된다. 이기동은 그렇게 자기만의 4분 33초를 연주하는 셈이다. 


이서수 자신이 말한 인생의 '암흑기'가 있었기에 존 케이지라는 인물과 그의 전위적 작품 '4분 33초'가 특별하게 다가왔을 것이고, 자기의 소설의 세계로 다시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들리지 않더라도 계속되는 삶의 연주라는 메시지로, 작가 자신과 독자들에게 위로를 준다. 그런 위로를 발견하고 거기서 힘을 얻으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냐고.


외모나 능력이 아주 뛰어나거나 아주 모자란 극적인 인물 대신, 아무것도 특이사항이 없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살려간 것도 작가의 개성일 것이다. 우리 대부분이 그러하므로.

특별히 행운도 비극도 일어나지 않는 가운데, 희망도 절망도 과장되게 그리지 않으며 자기의 살 길을 나름대로 찾아나가고 있는 이기동이란 인물을 만들어낸 작가의 마음이 따뜻하게 전해진다.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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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4-09-27 1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이서수 라는 작가, 저도 관심을 두고 찾아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hnine 2024-09-27 16:53   좋아요 1 | URL
추천합니다. 예전에 비해 요즘 한국 작가들 책을 자주 읽지 못하고 있는데 이 작가의 책은 다 찾아 읽고 싶어요.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 확실히 알고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만의 색깔이 느껴지고요.
 
치즈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9
빌렘 엘스호트 지음, 금경숙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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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작품을 썼는데 십사 일이라는 기록적인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몇 차례 시도했지만 잘되지 않았지요. 이 책은 당신 덕분입니다.


이 책은 다른 책들보다 훨씬 더, 내 삶의 단면이고 광고와 상업에 대한 나의 혐오감을 표현한 것입니다. 광고라는 주제는 모사하기엔 넘 추상적이어서 치즈를 택했습니다.


저자인 엘스호트가 얀 흐레스호프에게 보낸 편지글과 인터뷰 내용을 통해 이 작품을 쓰게 된 경위를 엿볼 수 있다. 

얀 흐레스호프는 네덜란드의 시인으로, 당시 광고업계에서 일하고 있던 엘스호트에게 작품 활동을 계속할것을 권유했던 사람이다. 얀 흐레스호프의 독려가 자극이 되어 엘스호트는 2주만에 이 작품 <치즈>를 완성한다. 이 작품 이전에도 첫소설 <장미 빌라>를 비롯하여, 광고업계에 환멸을 느껴 쓴 <설득> 등을 출간한 바 있지만, 주로 생업에 집중하느라 작품을 계속 쓰지 못하고 있던 중이었다. <설득>을 발표한 이후로 10년 만에, 그동안의 한을 푼 것일까. 2주만에 써내려간 <치즈>는 성공적이었고, 지금까지 엘스호트의 가장 잘 알려진 소설이 되었으며 작가 자신도 제일 아끼는 작품으로 꼽는다. 


30년이란 시간을 한 직장에서 일해온 삶에 대해 무엇을 짐작할 수 있겠는가. 종합 해양 조선 회사에서 대단한 위치에 오른 것도 아니고 사무원으로서 묵묵히 드러나지 않게 자기 자리를 지켜온 삶을 살아가던 프란스 라르만스에게 형님의 친구인 판스혼베커라는 신사의 제안은 획기적이었다. 네덜란드의 치즈 공급업자와 연결시켜줄테니 치즈를 유통하는 사업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종합 해양 조선 회사에서의 존재감 없는 일에 신물을 느끼던 라르만스는 자신이 성공적인 사업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사로잡혀 회사에는 거짓 병가를 내고 치즈 도매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치즈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데 있다.


그는 냉장 시설도 없고 치즈 유통의 기본적인 절차조차 알지 못한 채 10톤에 달하는 치즈를 집에 쌓아놓고 판매하려고 한다. 집에 따로 사무실을 마련하는 등 회사원이 아닌 사업가로 변신하는 꿈에 부풀어 초반에는 자신감에 차 있었지만 점차 치즈가 팔리지 않으면서 상황은 점점 나빠진다. 라르만스는 고객을 확보하는데 실패하고 치즈는 점점 썩아가며 그의 사업은 실패의 길로 접어든다.


<치즈>는 막연한 성공 욕망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적 고뇌를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라르만스는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무리하여 시도하면서 좌절감을 경험하며 이는 자본주의적 야망의 부질없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볼수 있다.

오래전에 본 찰리 채플린 주연, 감독한 영화 <모던 타임스>가 떠오른다. 세상의 톱니바퀴로 부속품처럼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소시민의 삶을 보여준 영화이다. 

간결한 문체와 유머를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불안감을 일상 생활의 간단한 플롯 속에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기에 발표한 열한 권의 소설 중 이 작품에 가장 애착을 가진다고 했을 것이다.


며칠 전에 읽은 <메마른 삶>과 함께, 이 출판사의 세계문학 시리즈에 호감이 커져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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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삶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3
그라실리아누 하무스 지음, 임소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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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생소한 작가와 책 이전에 위의 그림을 알고 있었다. 프란시스 고야의 <개>(the dog: el perro). 

전체 화면에 개 한마리가 전부인 그림이다. 그것도 개의 머리 부분만 그려서 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개의눈이 멀리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고독과 불안, 고립, 무력감을 나타낸 이 그림은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처음 본 이후로 머리 속에 박혀서 잊혀지지 않고 있던 차에, 이 그림을 표지 그림으로 하고 있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용과 무관한 표지 그림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우선 호기심이 생겨 읽어보게 되었다.

그라실리아누 하무스. 1892년 브라질 북동부의 내륙 오지에서 16명 형제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열일곱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여 이십대에는 기자로 활동했고, 문단에 등단하여 작품을 발표하는 것 외에도 시장으로 일하기도 하고 공산주의에 협조했다는 죄목으로 감옥 생활을 하는 등 정치가로서의 이력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1953년 세상을 뜨기까지 그가 발표한 작품들은 브라질 문학의 큰 줄기를 형성하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로서 인정받고 있다.

그 중 <메마른 삶 (vidas secas)>은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작품들은 사실주의적 스타일로서 브라질 북동부의 가난, 불평등, 사회적 문제들을 깊이 탐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심리적 통찰과 현실적인 묘사가 두드러지며 복잡한 심리묘사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소몰이꾼이었던 파비아누의 가족이 가뭄때문에 살 곳을 찾아 찾아 이주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파비아누의 아내 비토리아는 작은 아이를 들쳐 업고 머리에는 트렁크를 이고 있다. 파비아누와  비토리아의 뒤에는 큰 아이와 강아지 발레이아가 따르고 있다.

걷다 지친 큰 아이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한다.

"일어나, 망할 놈의 마귀 같은 자식!" 아버지가 아이에게 소리쳤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자 그는 칼집 끝으로 아이를 때렸다.

아이는 몸을 웅크린 채 발을 구르며 떼를 썼다.

...

"일어나라니까, 빌어먹을 놈."

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파비아누는 아이를 죽이고 싶었다. 무심한 그는 자신의 불행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고 싶었다. 가뭄은 그에게 필요악처럼 보였고, 고집을 부리는 아이탓에 짜증이 났다. 분명 아이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노정을 방해했고, 소몰이꾼은 목적지를 향해 계속 가야 했다. 하지만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8쪽)

아들을 황량한 곳에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상황. 메마른 대지에서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이동하는 이들의 고통스러운 여정은 소설의 주요 배경이다.

파비아누는 잠시 머물만한 장소를 발견하고 자신의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지역 지주 아래에서 일하게 되는데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항상 착취당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억압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무기력하고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전형적인 농민의 모습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가족의 유일한 위안이자 충실한 동반자였던 애완견 발레이아가 열악한 환경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병에 걸려 고통 속에 가망이 없어보이자 파비아누는 아이들과 아내의 처절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발레이아에게 총을 겨눠 죽인다. 가뭄이라는 자연의 가혹함 앞에서 인간은 더이상 만물의 영장이 아니며 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고통속에 죽어간 발레이아의 모습이나 불확실하고 절망적인 삶을 이어가는 인간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가뭄은 언젠가 끝나리라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가뭄에 더해 억압적인 사회 구조로 인한 착취는 언제 끝날 것인가. 인간의 생존 본능, 그 본능으로 버티며 덜 메마른 곳을 향해 떠도는 삶은 계속된다.


행동과 심리의 사실적인 묘사가 극한 상황을 표현하는데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대로 대본으로 사용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한 문장 한 문장이 극사실적이고 구체적이다. 파비아누가 가족과 다름없던 개 발레이아에게 총을 겨눈 것은 그만 끝내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발레이아가 죽은 후에도 파비아누는 자주 발레이아를 떠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오늘도 길을 떠나며 앞으로 도착할 알 수 없는 곳에 희망을 가지는 파비아누 가족은 여전히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그들의 희망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희망이다.


파비아누가 자신의 모습과 동일시 하여 굳이 총을 겨눠 고통스런 상황을 끝내게 했던 발레이아.

고야의 <개>를 표지 그림으로 선택한데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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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모모 2024-09-12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겠습니다. 불행과 희망. 희망은 있는지 ... 아이를 깨우는 아버지의 말도 날키롭네요. 글 감사합니다. ^^

hnine 2024-09-13 04:2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구름모모님,
저도 처음부터 아이를 향한 아버지의 말이 너무 섬뜩하게 들렸어요. 인간은 상황의 지배를 받는게 맞나봅니다.
책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아 금방 읽으실거예요.
오래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볼 수 있는 방법을 못찾았네요. 우리 나라에서는 이 작품이 좀 늦게 알려진 감이 있지요. 우리나라 근대 사실주의 작가들 소설을 읽는 느낌도 잠시 들었답니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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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시절, 실험실에서 거의 12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머리보다 몸이 더 지쳐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터덜터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기대하는 것은 오늘 누군가 내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편지 주고 받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책 속의 대령처럼 특별히 편지 기다리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기대를 하곤 했다. 하루 중 마지막 기대를 갖는 시간, 그것을 기대하며 하루를 버텼나 싶게 매일 매일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기다림 만큼 사람을 서서히 지쳐가게 하는 것이 있을까. 동시에 그 기다림의 힘으로 어려운 시간대를 통과해나가기도 한다.


대령은 커피 통 뚜껑을 열고 커피가 한 숟가락밖에 남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7쪽, 이 책의 첫 문장)


하나 밖에 없는 아들도 몇달 전 살해당하고, 아픈 아내와 둘이 외롭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퇴역 군인 대령이 오로지 기다리는 것은 군인 연금 자격 통지서이다. 참전했던 내전이 끝나고 56년째 그는 연금을 기다리는 일을 하고 있다 ('기다린다' 라는 말 대신 '기다리는 일을 하고 있다'라고 썼다). 그에게 남은 것은 죽기 전까지 아들이 키우던 수탉 한마리. 아내는 그것이라도 팔아서 식량을 사는데 쓰자고 하지만 대령은 끝까지 거부한채 때로 사람 먹을 것 없을 때 조차 수탉을 먹여가며 지키려고 한다. 

짧은 스토리이다. 

1927년생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그의 나이 31세때 이 책을 발표하였다. <백년의 고독>이 나오기 거의 십년 전이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소재로 한 편의 소설을 쓸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사실 이 소설이 주목을 받은 것은 <백년의 고독>이 나와서 라틴 아메리카의 훌륭한 소설로 인정받은 후이다. 이를테면 재조명을 받은 셈. 하지만 <백년의 고독>을 먼저 읽고 난 후 읽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백년의 고독>이 복잡한 구성, 여러 인물이 쉴 새 없이 등장하고 있는 반면 이 소설은 간단한 구성, 소수의 인물만 등장시키면서도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싸움닭, 배고픔, 병듦, 외로움. 

희망이 없는 시간을 버텨나가게 하는 것은 부질없어보이는 기대와 점점 가치가 떨어져가는 수탉이다. 효용으로 보자면 수탉을 집에서 아무 쓸모없이 끼고 있는 것 보다는 아내가 주장하는대로 팔아서 당장 먹을 것 살 돈을 마련하거나 투계 시합에 내보내 우승을 기대해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끝까지 거부하는 대령에게 수탉은 그런 용도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연금 통지서를 기다리는 일을 결코 그만 두지 않는 것과 같다. 그것으로 남은 삶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세한 정치적 상황 설명없이 당시 사회상이 잘 나타나고 있고, 인간적인 면을 잃지 않고 살면서도 자존심과 주관을 지키고 사는 대령, 현실적인 잔소리를 해대면서도 대령을 생각해주고 보살펴주는 진심을 행동으로 보이는 아내는 민중이 살아가는 모습을 대변하기도 한다. 죽은 아들 대신 부여잡고 있으려는 수탉은 그것을 팔아 얻을 수 있는 몇푼의 돈보다, 당장 떨어진 식량을 구하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절실하며 그런 것 이외 달리 희망이 없는, 그렇게 삶을 이어나가는 목숨들이 있다.

삶에 무슨 특별한 목표가 있을까. 그저 이어가는 것. 버텨가는 것.

<백년의 고독> 못지않게 탁월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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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9-13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이 멋지네요. 이 작가의 백년 동안의 고독, 은 지루하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제 취향이 아니었어요. 제 수준이 못 따라가서 그런 것일 수도 있어요. 그다음부턴 마르케스의 작품을 보지 않았죠.
글에 쓰신 대로 간단한 구성, 소수의 인물만 나오면서 작가의 의도가 뭔지 짐작이 갈 때 최고죠. 요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야금야금 아껴 가며 읽고 있어요. 고양이가 본 인간들의 모습을 쓴 것인데 주인이 이런 일기를 썼다면서 그의 일기장을 그대로 옮겨 놓기도 해요. 재밌어요. 무엇보다 간단한 구성이 맘에 들고 주인의 캐릭터가 흥미를 느끼게 해요.

hnine 2024-09-14 04:56   좋아요 0 | URL
첫 문장 하나로도 이 소설 전체의 분위기가 확 드러나지요.
이 책은 쉽게 읽으실거예요. 제가 남편에게도 읽어보라고 권했더니 금방 읽더라고요. <백년의 고독>은 저에게도 수월하지 않은 작품이었답니다 ^^

pek님, 드디어 추석 연휴 시작이네요. 너무 힘들지 않게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