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학번인 내가 대학생일때도 내가 다니던 대학에 평생교육원이라는데가 있었다. 대학에 처음 입학해서는 입구에 세워진 신식 건물을 보며 저기가 뭐하는데인가 했었다. 학생 나이는 훨씬 지난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가방을 들고 교정 내를 다니는 것 보면 학교 교수님도 아니고, 마치 나들이 온 양 곱게 차려 입으신 분들이 그 건물로 드나드는 것을 보고서 평생교육원으로 강의 들으러 오신, 학생 아닌 학생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땐 저렇게 한가하게 한두 과목 강의 들으러, 저렴하지도 않은 수강료 내고 학교 나들이 하는, 대부분 졸업생 출신 아주머니들 보면 딴 세상 사람들 같았고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공부가 하고 싶어서 오는 거 맞아? 이런 심통 맞은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평생교육원이라는데 다니기 시작한지 벌써 3학기째이다. 그것도 같은 제목의 강의를, 한 교수님으로부터 계속 듣고 있다. 내 원래 전공도 아니고 2시간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가는데도 이 강의를 듣고 오는 날은 마음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각오로, 내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따위의 평소 고민을 다시 흔들어 재 정리할 수 있게 해준다.
교수님은 영문과 교수님이신데 정년퇴직하신지 3년 되셨다고 하고, 정년퇴직과 함께 서울을 떠나 지방에 집을 지으시고 텃밭을 가꾸고 책 읽으시고 쓰시면서 지내시는데 일주일에 딱 하루 이 강의하러 서울의 옛 근무처로 오시는거다.
이번주 강의에선 세익스피어의 비극에 대한 것이 수업 내용이었는데, A C Bradley 란 사람이 <Shakespearean Tragedy> 란 책에서 비극이 예술로 되기 위해선 다음 세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단다. 첫째, pity (연민의 감정): 작품 속 주인공을 보며 저런 일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 참 불쌍하구나 하는 느낌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fear (두려움의 감정): 나에게도 저런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과 공포감이 일어나야 한다. 세째, catharsis (정화): 극중 비극을 경험함으로써 정신을 정화하는 효과를 주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한가지를 더 제시하셨다. 윌리엄 예이츠의 시 "Lapis Lazuli (청옥 부조)"에서 인용한 대목으로 배우가 우느라 대사를 망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세상이라는 무대에 선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비극을 연출하고는 무대뒤로 사라진다. 그러나 그의 비극적인 삶이 예술적으로도 아름다운 비극이 되기 위해서는 무대 위에 선 배우는 흐느끼느라 자신의 대사를 망쳐서는 안된다.
앞의 세가지 조건으로는 그냥 수업 내용이었다. 그런데 네번째 조건을 첨가하신 노교수님의 안목과 경험과 살아온 지혜때문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바라보는 세상은 갈때와 같지 않다.
학생들에게 강의할때보다 평생교육원의 지긋한 학생들에게 강의할때 더 보람을 느끼신다고 교수님께서 언젠가 그러셨다. 요즘 학생들은 시험을 안보면 공부를 안한다고. 그런데 평생교육원 학생들은 시험도 안보는데도 수업 시간에 보면 지난 시간에 강의한 내용을 다 알고 앉아있다고 하셨다. 같은 내용을 강의해도 학생들은 아직 세상 산 경험이 적어서 그런제 잘 이해하는 눈빛이 아닌데 평생교육원에서 강의하면 인생 경험이 꽤 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느껴지신다고.
교수님은 언제까지 강의를 하실 수 있으실지 모르지만, 나 역시 언제까지 강의를 들으러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되도록 오래 오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