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메리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
헨리 제임스 지음, 최경도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헨리 제임스. 1843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요즘도 그러기 어려운데 그 시절에 10대의 한때를 파리, 제네바, 런던 등에서 보냈고, 하버드 법대를 거쳐 또 다시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을 여행하며 20대를 보냈다. 이 책 <아메리칸>은 그의 나이 겨우 34세 발표한 장편이며 그의 또다른 소설 <데이지 밀러>는 한해 뒤인 35세때 발표한 작품이다. 그외에도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였고 70세가 넘은 나이에 영국으로 귀화, 영국 국왕으로부터 명예훈장까지 받았다.
재산도 많고 지적으로도 풍요로운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배경,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가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사업을 하여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는 것은 이 책에서 주인공 뉴만의 자수성가 스토리와 연관지어진다. 제도권 내 교육보다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요즘 말하는 글로벌 차원의 교육을 받게 했다는 것에서 그만한 재산의 뒷받침 외에도 자식을 또는 손자를 교육시키는 부모와 조부모의 가치관이 어떠했는지 엿볼 수 있다. 그의 아버지 역시 프린스턴에서 공부한 지식인으로서 당대 유명 지식인 에머슨, 소로우, 카알라일 등과 친교를 맺었고 자유 교육을 지향했으며 자식들에게 토론을 통한 자유분방한 사고를 심어주었다고 한다. 후에 헨리 제임스 역시 파리로 건너가 투르게네프, 플로베르, 모파상, 에밀 졸라, 알퐁스 도데 등과 친분을 맺으며 4,50대를 태어난 미국보다는 런던과 파리에서 주로 보낸다. 자연히 유럽과 미국을, 유럽 사람들과 미국인들을, 여러가지 면에서 비교해보는 눈이 작동했을 것이다. 그 결과들이 그의 수많은 작품으로 탄생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총 22편의 소설과 113편의 단편, 그리고 그 외에도 수많은 비평, 여행기, 희곡, 자서전, 전기 등.
흔히 헨리 제임스의 소설은 읽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 것에 비해 이 소설 <아메리칸>은 비교적 내용이 분명하기 때문에 제임스 소설의 입문서가 되기도 한다는데, 그래서인지 내용 자체로만 보면 기승전결, 원인과 결과가 분명히 드러난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그가 배경으로 삼은 파리, 등장인물들의 배경과 특성, 이것들을 꼼꼼히 따져가며 읽으면 이 소설 역시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읽힐 것이다.
사업으로 상당한 재산을 모아 돈 걱정 필요 없는 젊은 사업가 뉴만 (이름에도 의미를 담은 듯, Newman). 돈은 충분히 벌어놓았으나 그것으로 충족되지 않는 무엇이 있어 새로운 환경을 경험 (그리고 소유)하고 자신의 삶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방편으로 그는 미국과 다른 세계, 유럽, 파리로 향한다. 미국에는 없는 신분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그곳에서 뉴만은 미망인 백작 부인 클레어를 만나 결혼까지 약속하지만 급변한 상황으로 결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백작부인의 집안에서 갑자기 반대를 한것이다. 귀족 사회로의 진입은 실패로 돌아가고 이로써 물질적 성공과 용기, 의욕은 신분과 계급, 전통보다 하위에 있음을 얘기하는 것 같지만 작가는 이 귀족 사회의 "숨겨진" 탐욕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노력으로 이룩한 물질적 성공보다 나을 게 없음을 보여주었다. 결말에서 결혼에 실패한 클레어가 선택한 길은 귀족 사회의 결말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암시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두 세계, 물질적 성공을 상징하는 미국 그리고 귀족과 신분의 벽이 존재하는 유럽은 끝내 융화되지 못했고, 백작 부인과의 결혼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좌절의 과정에서 미국인 뉴만은 한단계 더 정신적 성장을 한 셈이다.
이보다 두께는 얇았지만 헨리 제임스의 <데이지 밀러>는 헤매면서, 느린 진도로 읽었던 반면 이 책은 위에도 말했지만 비교적 분명한 기승전결 구성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복잡하지 않아서인지 쉽게 읽혔다.
생전에 그의 코스모폴리탄적 삶의 궤적과 어울리는, 그래서 쓸 수 있었을 작품이다. 뉴만이 벨가드 집안의 비밀을 폭로하고 마음을 정리하는 결말에서 작가는 유럽이 아닌, 미국쪽의 손을 들어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