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사람들의 특징을 한마디로 어떻다고 말하는건 무리이고 어쩌면 아무 의미없는 일일수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30년 가까이 살다가 영국이란 곳에서 살아보니 확실히 차이점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눈에 띄었다. 평소에도 같은 점, 차이점 찾아내는것을 재미있어하는 편이었는데 나라가 바뀌었으니 오죽하랴. 한국으로 돌아온지 오래이고 벌써 20년 전 이야기이니 거의 잊고 살고 있었는데 얼마전 우연히 youtube 에서 Hetty Wainthropp 이라는 아줌마 탐정 드라마를 보고나선 그때 기억이 모락모락 되살아났다. 더 잊기 전에 조만간 그때 이야기를 정리겸 하나씩 풀어놓아볼까도 생각중.
이 드라마는 BBC 에서 TV 드라마로 방영되었었나본데 막상 내가 영국에 있을 땐 본 기억이 없다.
에피소드 순서대로도 아니고 제목 보고 무작위로 골라서 보고 있었는데 어제 마침내 첫회분과 만나게 되었다.
영국. 도시가 아닌 평범한 마을 (사람들 억양으로 보면 영국 북부 지방이 아닐까 추정됨)에서 남편과 함께 평범하게 살던 이 아주머니가 60세 생일을 맞은 아침. 언제나처럼 침대에서 남편이 가져다 주는 아침상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60세 생일을 축하한다고 여기 저기서 온 카드를 펼쳐보는 이 아주머니 표정이 전혀 기쁘지 않다. 오히려 60세가 되어 연금을 받게 되었고 노년 클럽에 가입할 자격이 되었다며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적힌 카드를 보고 분노하고 울적해한다. 이대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노인 대열에 들어서고 싶지 않고 그러지도 않을 거라고 남편에게 결연하게 선포하고는 자긴 이제부터 일자리를 알아보겠노라고 당당히 말하여 남편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말로만 큰소리친게 아닌 것이 그날로 일자리를 찾아다닌 결과 동네 우체국 한 구석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무척 자랑스러워하면서 맡은 일에 열심인 이 아주머니 이름이 Hetty Wainthropp (헤티 웨인쓰롭).
작은 시골 마을에서 우체국은 거의 마을의 소식통이고 참새방앗간 같은 곳이다. 어느 날 남루한 차림의 젊은 커플 둘이 어느 연금 수령자의 연금을 대신 타러 오는데 이 일을 맡아 처리하던 이 아주머니는 의심과 호기심이 발동. 확실하게 해결하기 위해 이것 저것 조사하다가 이 아주머니가 깨닫게 된 것은 아무래도 자기에겐 탐정의 소질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탐정이 되어야겠다고 말하는 아주머니 말에 남편은 어이없어하지만 그러던지 말던지 아주머니는 생각한 일을 하기로 한다.
이 날부터 아주머니는 Hetty Wainthropp detective 가 되고 신문에 조그맣게 광고도 내고 명함도 만든다. 우체국에서 슬쩍 물건 좀도둑질 하다가 붙잡힌, 이혼한 부모집에서 뛰쳐나왔다는 남자 청소년 아이를 자기 탐정 업무의 assistance 로 채용까지.
뚱뚱하지만 굼뜨지 않다. 또박또박 자기 의사를 분명히 말한다. 여자라서 못하고 다른 사람이 어찌 볼지 민망해서 못하고 그런거 없다. 적극적이고 거침없이 자기 일을 해나가는 모습. 수수한 옷차림. 내가 아는 대부분의 영국 여성들의 모습을 이 아주머니도 여지없이 보여준다.
이 드라마에서 Hetty 역을 맡은 배우 Patricia Routledge는 여든이 넘은 나이로 지금도 생존해있는데 일찍부터 배우가 되었으나 결혼 한 적 없다고 한다.
대개 이 아주머니가 맡아서 해결하는 일들이 동네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이라서 무슨 대단한 재미를 기대하라고는 못하겠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고 훈훈하다고 하면 말이 되려나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국의 평범한 가정생활,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궁금하다면 이 드라마가 제대로 보여줄 것이라는 건 장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