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문학나무 수필선 10
김제숙 지음 / 문학나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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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지 꽤 되었지만 섣불리 리뷰를 못올리고 이리 미루고 저리 미루고 있었다. 중간에 읽기를 멈추지 않은 이상, 완독한 책에 대해서는 리뷰를 올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에 오늘은 더 미루지 않고 간단하게라도 느낌을 적기로 하였다.

섣불리 리뷰를 못올리고 있던 이유는 하찮은 느낌글 몇줄이라 할지라도 혹시 저자분에게 누가 될까 해서이다.

수필이란 형식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 그에 앞서 사람 자체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음악을 들으면서는 음악도 음악이지만 그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있다. 글을 읽으며 글도 글이지만 그 뒤에 숨겨진 글쓴이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있다. 그림을 보면서도, 건축물을 보면서도.

수필만큼 글쓴이의 성격이 글 속에 그대로 드러나는 형식의 글이 있을까 싶다.

평소 이분의 서재를 자주 들락거리며 이분의 글과 사진 모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서재에 올린 글 말고 책으로 나온 이분의 글은 이 책이 두번째인데 처음 읽은 책은 이분의 글인지 모르고 읽었고 이 책은 알고 읽었다.

 

그러다가 공깃돌을 밀쳐놓고 하염없이 울었다. 내가 도망하듯 피하여 온 것은 바로 내 삶을 지탱해 주는 것들이었다. 가족을 위해 끼니를 준비하는 것,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사는 것, 무엇보다도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무겁게 지고 있어야 하는 이 아니라 인생의 강을 건너게 하는 작은 징검다리였다. (73쪽 -공깃돌- 중에서)

 

나보다 몇년 연배가 위이신 것 같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정작 징검다리였다는 것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정신없이 살아온 3,40대 동안엔 오히려 힘이 들어도 힘들다 말할 여유 조차 없다. 그 시기를 약간 넘겼다 싶을 때 정신이 들면서 이게 뭔가,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찾아온다. 그리고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고 자식에 대해서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서도 그렇다.

 

몽골초원을 여행하다 보면 강을 자주 만난다고 한다. 초원을 흐르는 강은 많은 굴곡을 만들며 굽이굽이 흐른다고 한다. 그만큼 더디 흐르고 멀리 돌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 영향으로 강 주변에는 더 많은 초원이 형성된다고 한다. (145쪽-커피를 시작하다- 중에서)

 

천천히 가는 강물을 비웃지 말것. 천천히 움직이는 달팽이를 얕보지 말것.

빨리 앞서 가는 것이 곧 성공적이라고 여길 때가 있었다. 내가 좀 처지고 돌아가고 있는 중엔 그게 그리 불안하고 서럽고 절망스러울 수 없었다. 그렇게 더디 가는 동안 주변에 더 많은 초원이 형성되고 있다는 걸 그때 짐작이나 했었나.

 

직접 뵌적은 없는 분이지만 마주 앉아 이분이 조근조근 들려주시는 말씀을 귀 쫑긋하고 듣느라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는 느낌으로 마지막 장을 덮었다. 제일 좋았던 글은 맨 앞의 글 <조각보>. 문장도 잘 다듬어져 있고 비유도 뛰어나다.

 

글만큼 이분의 사진도 좋아하는데, 아마 이번 책에서는 사진보다 글 위주로 하고 싶으셨던 듯 사진이 많이 들어가있지는 않다. 사진들은 아마 또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선보일 때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짐작하고 기대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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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09-21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처럼 수필은 바로 그 사람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hnine 2015-09-22 07:09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읽는 재미가 있는데 쓰는 사람 입장이 된다면 두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차피 글은 그 사람 인성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만요.

2015-09-24 0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09-24 06:12   좋아요 1 | URL
어제 다 못하고 잔 일이있어서 아침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참이랍니다. 저에게는 특별히 이른 시간도 아니고 매일 같은 일상이지요.
걱정거리가 있으시다면, 막돼먹은 영애씨에 나오는 라미란 과장 어투로 ˝넣어둬~ 넣어둬~˝ ㅋㅋ
오늘 하루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자, 일어나서 약 3초 동안 저도 그런 생각 했습니다.

프레이야 2015-09-27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책 소개 받았네요, 추석아침에.
나인님의 수필사랑이 느껴집니다

hnine 2015-09-28 12:47   좋아요 1 | URL
예,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수필을 좋아해요. 수필, 소설, 시의 순서로 재미를 들이지 않았나 싶네요.
어제 산소 다녀오는데 고속도로가 그야말로 장난 아니게 막히더군요 ㅠㅠ 오늘은 아주 홀가분하게 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