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안에 고인 침묵 바깥바람 9
최윤정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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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청소년 책을 주로 내는 출판사 "바람의 아이들' 대표 최윤정. 그녀의 두번째 산문집이다.

이보다 먼저 나온 산문집 <양파이야기> (이후 "우호적 무관심"으로 제목 바꾸어 재출간됨)를 읽었었는데, 불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날 때까지도 어린이, 청소년 문학, 더구나 출판사 운영은 생각지도 않던 그녀가 한국에 돌아와 뜻하지 않았던 일을 시작하기 까지 과정, 그리고 그녀의 속내를 읽어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 궁금증은 첫 산문집에서 다소 해소를 했기 때문일까. 이번 산문집에은 재미가 덜했다. 산문집을 재미로 읽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탁! 치고 지나가는, 산문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구절이나 페이지를 찾지 못하며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었다.

 

프랑스 작가 프루스트는 '작가에게 상상이란 없다. 단지 기억만으로 글을 쓴다'고 얘기했다. 개인적인 체험에 대한 기억뿐 아니라 책이나 영화, 문화 전반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글을 쓴다는 것이다. 프루스트의 말이 상당히 맞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해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요즘엔 더더욱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작가란 집단적인 기억을 조금 더 어루만져서 작품을 쓰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43쪽,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르 클로지오가 한국에 왔을 때 모 신문에 실린 기사 중-

 

동화 써서 먹고살수 있냐는 질문부터 던지며 머뭇머뭇 다가오는 신인 작가들에게 저자가 해주고 싶었던 말은 '돈을 벌려면 돈을 벌 수 있는일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세상에는 동화를 쓰는 일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라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을 당당하게 하지 못한단다. 출판사를 경영한 이래로 출판이 불황이 아니라는 말을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고, 출판계 사정은 앞으로도 계속 나아질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은, 사람들 마음 속에 또렷이 빛나야 할 것은 여러개의 별이 아니라 딱 하나의 별이기 때문이란다. 자기 안에 또렷이 빛나는 별을 가진 작가를 기다리며, 쉽게 흐릿해지는 어린이문학 판의 별들을 애석해했다. '저 하늘의 수많은 별들'이란 소제목의 이글 (44-46쪽)을 이 책에 실린 글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글로 꼽고서 보니 책머리글 제목도 '가슴엔 별 하나', 일맥상통하는 내용이었다.

 

저자와 각별한 친분이 있는 프랑스의 작가이며 나도 좋아하는 작가인 수지 모건스턴에 대해 말하기를 수지 모건스턴은 항상 독자들을 웃으면서 깨닫게 해준다고. 어른을 대상으로 한 소설과 어린이, 청소년 문학의 차이점이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시가 밥 먹여 주지는 않지만 배고픔을 잊게 해 준다. 그림은 외로움을 달래 준다. 음악은 적막함을 덜어 준다. 그것들은 직업이 아닌 경우에 특별히 더 그렇다. 아마추어리즘이 그래서 귀하다. 다만 스노비즘과 아마추어리즘의 경계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166쪽)

 

시, 그림, 음악의 비유보다 뒤 문장의 스노비즘과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언급은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던 점을 짚었기에 옮겨둔다. 그리고 새삼 깨닫는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스노비즘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요즘 여기서 저기서 팽배해가고 있음을.

260쪽에는 '워커 홀릭'과 '딜레땅띠즘'에 대해서 잠깐 언급을 해놓았다. 그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녀가 썼듯이 인간의 삶이란 95%가 습관으로 유지된다는 것이 그 답이 될까? 거의 습관의 경지까지 올랐을때 워커 홀릭이라고 할 수 있지만, 즐거움과 보람은 딜레땅띠즘이 더 많이 느낀다는 것?

 

파리 시내를 돌아다녀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성난 인간들이 있는데 술에 취한 것도 아니면서 혼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거나 찻길 한복판으로 걸어 가거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대답 없다고 화를 낸다고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너무 외로워 보인다는 것. 그렇게 외로운 인간들이 파리에 널렸단다. 외로움에 지쳐서 병든 영혼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런 외로움이 안으로 안으로 파고드는 병이 되는게 아니라 공격적이 된다는 점이다. 나를 이렇게 외롭게 만든 세상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이 뱉어 내는 적의에 찬 말들......그리고 더 신기한 것은 공격적인 것은 오로지 말, 그 말을 하는 눈빛과 제스처일 뿐 실제로 그들 중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들을 해치거나 위협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말들이 유창하다는 점이다. (265쪽)

 

아, 나는 왜 이 구절에 밑줄을 그었을까.

 

비록 밋밋한 문장이 될지언정 과장하고 필여없는 미사여구를 사용은 자제하겠다는 저자의 생각이, 책을 다 읽을 무렵 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전반적으로 심심한 내용의 책이라는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 갔다.

 

리뷰 제목 '고지식한 원칙주의자'는 저자가 본문 중에서 자기 자신을 일컬은 말이다. 이때 원칙은 남이 정한 원칙이 아니라 저자 자신이 정한 원칙일 것이고, 가슴 속에 또렷이 빛나는 별로 간직하고 있는 그것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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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9-09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째산문집 나왔군요. 좋아하는분입니다. 물론 글과 그녀가 번역해 내는 그림책들만으로도요. 265쪽 인용문이 무척 와닿네요.

hnine 2015-09-09 09:10   좋아요 0 | URL
허겁지겁 오자 고치고 있던 중에 다녀가 주셨네요 ^^
이분 글을 읽어보면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금방 파악이 되질 않아요. 강단있고 대범해보이는데 소심하고 세심해보이기도 하고요.
265쪽 인용한 글을 읽으며 인간의 외로움이라는 것이 인간의 행동과 삶의 방식을 조종하는 커다란 포텐셜이 된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어요.
(헤세 전시회 다녀오신 글 읽으며 참 좋았습니다. 가고 싶었는데 못가고 지나겠구나 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요즘 서재에 잘 못들어오고 글도 잘 못남기고 있어요 ㅠㅠ)

다락방 2015-09-09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지 모건스턴 이라는 작가에 대해 알게 되네요. 웃으면서 깨닫게 해준다니, 몹시 궁금해지는 작갑니다. 검색해서 저도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hnine 2015-09-09 13:51   좋아요 0 | URL
강추입니다!
웃으면서 깨닫게 하려면 일단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야 하고, 머리가 좋아야 할테고요, 대상을 꼭 깨우치게 하리라는 욕심이 없어야 할 것 같아요. 자식을 키우다 보면 이것이 얼마나 고단수인지 하루에도 몇번씩 절감하지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