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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를 꿈꾸다
최민자 지음 / 문학사상사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어떤 것이 좋은 소설 일까 생각하면 우선 스토리텔링이 떠오른다. 얼마나 재미있게 썼느냐.
그런데 수필이라고 하면 얼른 떠오르는게 없다. 좋은 수필이란 어떤 수필을 말하는지. 주제 의식이 뛰어난 것? 수사력이 뛰어난 것?
최민자라는 이름이 생소한데도 이 책을 읽어보게 된 것은 좋은 수필에 대한 답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책장을 펼치니 다른 분도 아닌 피천득님의 추천의 글이 나온다. 최민자 개인에 대한 추천글이라기 보다 어떤 수필이 좋은 수필인지 여기서부터 귀뜸으로 듣는다.
말들이 들뜨지 아니하고 결이 서로 잘 맞습니다.
문장이 가볍고 경쾌하여 봄날 시냇물 소리처럼 귀가 맑게 트입니다.
아귀가 잘 맞게 짜인 구성은 어디 한 군데도 삐걱거리는 데가 없습니다.
그릇이 아무리 정교해도 내용물이 보잘것없다면 그저 그럴 것입니다.
재미도 있고 아주 알찹니다.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유연성이 있습니다.
정적이면서도 또한 지적입니다. (피천득님의 추천의 글 중에서)
1955년생이니 나보다 연배가 위이고 1998년에 등단하였다고 하니 그녀의 나이 마흔 넘어서였다.
이 책은 그녀의 두번째 수필집이고 2006년 오십에 들어서면서 나왔기 때문인지 나이 들어감에 대한 잔잔하면서 분명한 그녀의 생각이 여기 저기 드러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비난받지 않는 나이 (79쪽)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비난받는 나이에서 하지 않아도 비난받지 않는 나이로 갈때의 느낌을, 더 젊어서는 짐작이나 했겠는가.
지혜로운 길손은 하늘 한구석에 못 박힌 북극성의 별빛만으로 길을 찾지는 않는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이나 구름의 이동 모습을 살피며 갈 길을 모색하기도 하는 것이다. (150쪽)
이 역시 나이들어가며 깨닫게 되는 삶의 지혜일것이다. 한가지를 가지고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
이 책의 마지막 문장도 일관성있다. 이 나이쯤 되어야 할 수 있을 말.
사람이 한평생 도모하는 일이란 달리는 기차 안의 뜀박질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261쪽)
그렇다고 기차 안의 뜀박질을 우습게 볼 일은 아니다. 다만, 어차피 기차 안에서 뛰고 있으니 내가 아무리 빨리 뛰어도 기차의 속도라는게 있을테고 내가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라는 말 아닐까? 어떤 결과에 대해서 꼭 내가 잘 나서만, 내가 못 나서만은 아니라고.
글이 필요없이 길거나 늘어지지 않는다.
문장 내에서 비유와 상징, 수사력이 일단 어느 수준 이상이 된다.
주제에서 벗어나는 산만함이 없다.
아쉬웠던 점이라면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글을 풀어나가는 것은 좋지만 평범을 그 이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릴만한 통찰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수필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교과서 자격으로는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교과서가 갖는 모범과 한계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 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