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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날은 전부 휴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어떤 힘든 일을 넘기고 나면 그 이후의 삶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말을 한다. 매일이 휴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하지 않았을 이 말 "남은 날은 전부 휴가", 이 제목에 끌려서 담박에 구입해서 읽게 된 책이다. 일본 소설과 그닥 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사카 코다로는 국내에도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작가인가본데 나는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모두 다섯 편의 이야기가 묶여 있는데 각 이야기 속의 등장 인물은 서로 겹친다. 한 이야기에는 A와 B가 주인공이라면 그 다음 이야기에서는 B와 C가 주인공, 다음 이야기에서는 A와 C가 주인공, 이런 식이다. 이런 식의 구성이 이제 낯설지 않다. 국내 작가 중 윤영수의 소설이 아마 그 복잡성에서 한 수 위 않았나 싶다.
<남은 날은 전부 휴가>는 이 책의 제목이자 첫 이야기의 제목이다. 이혼날짜를 하루 앞두고 엄마, 아빠, 딸이 둘러 앉아 마무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앞으로의 생활에 기대와 각오가 서있는 듯한 엄마와 대조적으로 아빠는 앞으로 닥칠 외로움을 걱정하는 눈치이며 딸은 시니컬하다. 이때 아빠의 전화기로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뜬금없는 문자가 오는데 '우리 친구해요. 드라이브도 하고 밥도 먹고'. 스팸 메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엄마와 딸과 달리 아빠는 친구가 필요하다고 하고 결국 온 가족이 합세하여 문자를 보낸 이 사람과 만나 실제로 밥도 먹고 드라이브도 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하는 60여쪽의 첫번째 이야기 속에 실은 이 책 전체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잠깐씩이라도 다 등장한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를 읽으면서 종종 앞 이야기를 들춰서 어떻게 도입이 되었던가 확인하면서 읽게 된다.
문제의 "남은 날은 전부 휴가"라는 말은 어느 대목에서 처음 나오는가 하면,
위의 가족중 딸이 오카다라는 젋은 남자에게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 오카다는 오늘 막 일을 관둔 참이라고 대답하자 딸은 그럼 백수라는 얘기냐, 그럼 못쓴다고 하자 오카다가 말하기를,
"못쓰지 않아. 내일부터 이제 내 인생의 남은 날은 전부 휴가 같은 거니까. 일종의 바캉스지."
이렇게 별로 대수롭지 않은 대화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오카다의 이 말에 딸이 막상 "나도 그렇게 할까. 남은 날은 전부 휴가."라고 하자 오카다의 짧은 대답, "꿈 깨."
그래, 꿈이지. 보통 사람들에게 그건 꿈 같은 생활일 뿐이다.
인물도 사건도, 도입되고 마무리 됨에 있어 개연성 없이 마구 등장, 마구 퇴장 한다 싶은가 하면 또 그렇지 않기도 하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맞물려 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작가은 우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으며 한 인물에 복잡한 심리와 성격을 실어주기 보다는 심중이야 어떠하든 말과 행동을 가볍게 드러내려고 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장난스럽게, 마치 인생을 장난처럼 사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때도 있지만 그 누구의 생도 장난은 아니니까.
정말 남은 날이 전부 휴가라고 한다면 좋을까? 휴가 이전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답은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