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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ㅣ 펭귄클래식 15
프란츠 카프카 지음,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카프카. 대학에서 법을 공부했고 법학박사 학위까지 있던 카프카 그가 법에 얽힌 부조리를 외치는 이런 소설을 썼다. 아마 법에 얽힌 부조리라기 보다는 소송이라는 사건을 소재로 하여 이 세상의 부조리를 외치고 싶었을 것이다.
잘 자고 일어난 아침, 느닷없는 외부인의 방문을 받고 당신은 체포되었다고 통고를 받는다. 무슨 죄목인지도 모르고 소송에 휘말려 그것을 밝히려 이리 저리 헤매고 뛰어다닌지 일년이 되는 날로 이 소설은 결말을 맺는다. 그리고, 그 결말은 섬뜩하다.
1883년에 태어나 1924년에 건강이 악화되어 죽기까지 40여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카프카는 유태인이었지만 독일어로 교육받고 독일 문화권에서 자라, 언어나 문화면에서 독일인에 가까웠다고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보다 아버지의 기대에 맞춰 살아야했던 그는 글쓰기를 도피처 삼아 몰두하였지만 자기가 쓴 글을 스스로 없애거나 죽은 후에도 찬구 브로트를 시켜 자기의 작품을 모두 없애줄 것을 부탁했을 정도로 내향적이고 스스로 고립된 세계에서 살았던 것 같다. 다행이 그 말을 듣지 않은 친구 덕분에 그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이 읽히는 작품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워낙 짧은 생애를 살다가기도 했지만 그는 제대로 자기만의 가정을 꾸려보지 못했고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개인적으로 고립되고 외로운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 댓가였을까. 그렇게 사는 동안 남달리 깊어진 그의 사유 세계는 독특하고 독보적이어서 성, 소송, 변신 등, 이전의 누구도 발표한 적이 없던 내용의 소설들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무고한 사람이 체포되고, 판결 받고, 판결 받기까지 소송이라는 과정에 싫든 좋든 들어가야한다. 이 순간부터 개인의 의지와 생각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진행되는 과정이란 그것이 소송이든 칭송이든 처형이든 체벌이든, 그 얼마나 무의미한가. 또, 그런 과정을 거쳐 단정지어지고 결론지어지는 사람의 일생에서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카프카가 동양의 노장사상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것은 무관하지 않다. 탐욕스런 부르조아에 대한 반대의 표명이었다고 보는 그의 채식주의까지도.
후세의 많은 철학자들이 카프카의 이 소설을 분석하고 해석했으며 1962년엔 오손 웰즈에 의해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비교적 원작에 충실했으나 결말은 소설과 다르게 맺고 있다.
주인공처럼 어느 날 갑자기 소송에 휘말린 것은 아니어도, 우리는 불확실하고 불안한 운명에 내맡겨진 오늘을 살고 있다. 불확실한 생을 살고 있다는 그것만이 확실할 뿐. 부정할 사람은 부정하시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