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이체르 소나타 (반양장) 펭귄클래식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기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음악 제목이 책 제목인 경우가 앙드레 지드의 전원 교향악 말고 또 있나 잠시 생각해보았는데 당장 떠오르는게 없다. 적어도 톨스토이의 이 책은 제목을 보고 베토벤의 크로이체르 소나타에서 연상되는 서정적인 내용을 예상하면 읽으면서 당황스러울지 모르겠다. 실제 톨스토이의 작품에 <크로이체르 소나타>라는 제목이 붙은 이유는 작품 내용 중 어떤 결정적 순간에 이 곡이 연주되고 있었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작가의 삶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소설의 형식을 하고 있지만 주장에 가까울 정도로 작가가 말하고 싶은게 작품 내내 확실하게 느껴져서, 그의 삶과 작품이 많이 연관되어 있을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1828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톨스토이는 대학을 중퇴하고 술 마시고 창녀촌을 드나들며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병을 얻고 빚까지 진다. 군대에 있던 형의 영향일까, 견습생으로 군대에 들어간 그는 크림 전쟁이 일어나자 참전하기도 한다. 이후, 물려받은 영지에 농민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가르치기 위해 교육에 관한 공부를 하기도 하고 결혼도 한다. 아내와의 사이에 모두 열 세명의 아이가 태어나지만 그중 다섯은 어릴 때 죽는다. 이 책에 실린 <가정의 행복> 및 이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등의 책이 우여곡절 끝에 출판이 되고 그동안 톨스토이는 죽음과 종교의 문제에 빠지기도 하여 경작을 주고 있는 영지에 기근이 들자 좌절하여 자살의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한때 주색잡기와 도박에 빠져 살던 그는 60세에 이르면 정반대로 육류와 알콜, 담배를 거부하는 금욕의 생활을 하기도 한다. 유대인 학살에 항의, 세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신랄한 비판, 사형제도 반대 등에 목소리를 높이며 말년에 이르면서 톨스토이는 아내와 사이가 극도로 나빠지고 결국 집을 나오고, 집을 나오고 열흘 후 철도역에서 사망한다. 이 책에 실린 <악마>, <신부 세르게이>는 그의 사후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교류를 한 작가로는 투르게네프, 체홉 등이 있다.

 

생의 한때를 한쪽 극으로 치닫는 시기를 보낸 사람은 때로 그 정반대쪽 극으로 삶의 방향을 급변시키는 것으로 나머지 삶을 살기도 한다. 톨스토이도 그랬던 것으로 보이며 그의 이런 삶은 이 책에 실린 네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악마>에 나오는 유부녀 농민 애인 스테파니다는 톨스토이가 실제로 결혼 전에 시작하여 결혼할 때까지 4년간 관계를 가져오던 농민 여자 '악시나'의 반영이며 그는 이런 내용이 적힌 자신의 일기장을 당시 어린 신부였던 아내에게 강요해서 읽히기도 했다고 한다. 작품속에도 자신의 그동안 불륜을 배우자에게 고백하는 대목, 또는 배우자로부터 고백을 받고 흥분하는 대목들이 나온다. 이 책의 해설에 보면 톨스토이는 단지 자전적인 내용으로만 작품을 구성할만큼 단순하진 않았다고 하지만 아무튼 자기가 겪은 일들이 작품의 소재로서 여기 저기 이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제목이 아무래도 러시아 대문호의 소설 제목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가정의 행복>이나 화자의 입을 통해 당시 톨스토이가 결혼과 성, 도덕, 관능적 사랑, 정신적 사랑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작품 <크로이체르 소나타>도 마찬가지, 일관되게 흐르는 작가의 생각이 있다. 남자의 관능적 사랑과 욕구는 진정한 사랑과는 다르다는 것인데 그와 동시에 남자의 이런 욕구는 대부분의 경우 통제 불능, 어쩔 수 없이 거치게 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주인공들을 통해 보여준다. 결국은 그것이 파멸로 이르게 한다는 것으로 결말을 맺고 있으니 어찌 보면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욕망은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것이지만 그것을 절제하지 못하는 삶은 결국 파국으로 맺게 된다는 구태의연한 가르침이 결론인가? 이런 가르침을 받고자 이 책을 읽기로 한 것이 아니었기에 읽는 내내 당황스러움과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에세이도 아닌 소설이 지나치게 자기고백적인데다가, 결국은 그가 숱한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을, 아직 깨우치지 못했다고 여겼을까 싶은 독자들에게 가르치는 느낌이라니. 그가 만약 가출하여 철도역에서 사망하지 않고 더 살았더라면 그는 신부가 되었을까? 그래서 이 책 속 작품인 <신부 세르게이>같은 삶을 살았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신부 세르게이는 이 극과 저 극 사이, 넓은 스펙트럼의 인생을 살아온 톨스토이가 궁극에 꿈꾼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네 편중 이 작품을 책의 마지막에 넣은 편집자의 예리함도 짚고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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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12-10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어느 페이퍼에서, 책장이 잘 안넘어간다던 바로 그 책이군요. 이게 장편이 아니고 4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소설이라는 것에 모티브(?)를 얻어 리뷰를 작성하신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책소개도 풍부하고 톨스토이의 생애를 집약적으로 너무 잘 설명해주신 것 같아 아, 역시 hnine님..이다...

hnine 2014-12-10 14:07   좋아요 0 | URL
예! 책장이 잘 안넘어간다던 책들 중 하나랍니다. 드디어 다 읽긴 읽었는데 초반의 인상이 끝까지 일관성있게 가더군요 ㅠㅠ 책이 꽤 두께가 있는 편이어서 네 작품이 들어있긴 하지만 네편 모두 단편이라고 하기엔 분량이 길어요. 방탕의 세월을 보냈던 톨스토이가 다른 남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무척 고뇌를 많이 했고, 생각을 많이 했고, 이렇게 작품에까지 끌어내었다는 점 같아요. 결론까지 작가가 다 내려서 읽는 독자는 할일이 없게 만들었다는게 제일 실망스러운 점이었어요. 유명한 작가의 작품에 대해 감히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요. 방탕의 결말은 톨스토이가 말하듯 타락 아니면 종교인건가,그것은 지금도 생각중이네요.
언젠가 EBS에서 어느 여자 고대 교수님이 톨스토이의 인생과 문학에 대해 며칠에 걸쳐 특강을 하셨는데 그때는 건성으로 봤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때 그 교수님이 열변을 토하시던 것이 토막토막 떠오르곤 했답니다.

아무개 2014-12-10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만년동안 보관함에 잠자고 있는 책인데 왠지 보관함에서 버려질듯한 ^^::::

극과 극은 통한다니 욕망과 금욕. 그 끝어딘가 마주닿은 부분이 톨스토이에게 분명히 있었겠죠?
보통 사람들은 보통의 욕망과 보통의 금욕적인 생활을 하기 때문에
닿을수 없는 뭐 그런 극과 극의 끝...

hnine 2014-12-10 16:58   좋아요 0 | URL
제가 듣기론 이 책에 실린 네편중 세편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 것 같아요. 톨스토이의 인생론을 먼저 읽었는데, 그땐 톨스토이에 대해 잘 몰랐어요. 이렇게 많은 경험 끝에 쓰여진 인생론이라는걸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일대기를 보니 참 평탄한 삶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을 아무개님 덕분에 오랜만에 다시 생각해봐요. 극과 극의 중간쯤 어디에 사는 우리 보통 사람은, 보통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안정 속에 살게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