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우리는 인사를 한다. '잘잤어?' 또는 '잘자~'
라고.
내일도 같은 인사를 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 하는
인사라면?
천번의 굿나잇.
영화 포스터의 '엄마, 아내, 그리고 세계 최고의
종군 기자'라는 카피보다 '마지막일지도 모를 오늘의 인사'라는 작은 글자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영화의 첫장면부터 눈을 떼지 못하게 하더니 오히려 얼마쯤
진행되었을때는 계속 못보고 중단하게 만들었다. 마음이 덜 무른 상태일때 봐야겠다는 보호기제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첫장면. 자살테러를 앞두고 한 여인이 미리 무덤 속에 들어가는 의식을 치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의식을 마친 후 곧
이슬람 기도실로 와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여인의 몸에는 폭탄 조끼가 입혀지고, 기도와 포옹을 마지막으로 차에 태워져 폭발이 예정된 장소로
향한다. 이 모든 과정에 사진기자로 함께하고 있는 또 한사람의 여자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 레베카 (줄리엣 비노쉬)이다. 차량이 폭파하기
직전에 사진기자 레베카는 차에서 내리고 폭탄조끼가 입혀진 여인이 타고 있는, 레베카가 방금 내린 그 차량은 폭파된다. 이 장면을 정신없이
카메라에 담고 있는 레베카. 결국 그녀도 부상을 입고 쓰러지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때는 후송된 병원.
자살테러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많은 사람들도 그들의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겠듯이, 레베카에게도 사랑하는 남편과 딸 둘이 있다. 엄마, 그리고 아내를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싸움터에 보내놓고 마음 졸이며
기다려야 하는 가족. 나중에 그녀의 큰딸은 엄마에게 말한다. 차라리 엄마가 죽으면 덜 힘들겠다고. 그건 그냥 슬퍼하면 되니까. 더
간단하니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 첫장면보다 더 오래 못잊을
장면이었다.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는 주제 속에, 인간의 심리와 가족문제까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영화이다.
속사포같은 대사, 없다.
재치있고 웃음을 자아내는 대사, 없다.
뛰어난 상상력, 없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니 가슴
먹먹하다.
바다의 물결마저도 천천히 치는 것 같고, 폭탄이 터지는 현장 마저도
슬로우 모션 느낌을 주게 만든건 아마 의도적이었겠지.
이 영화는 대사 외에도 바다로, 밤 하늘로, 연기로, 무표정의
표정으로, 길고양이로, 모르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로, 바람에 날리는 덤불로, 대사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중 최고라면 역시 배우 줄리엣 비노쉬의 그 모든 것, 즉 그녀의 눈, 얼굴의 주름, 옷차림, 무심한 듯한 동작 하나, 머리카락, 호흡들이라고 하겠다. 이 모든 것이
또 하나의 대사였고 영화 자체였다. 영화의 어느 한 컷을 보아서는 알 수 없다. 한 순간의 정지된 모습만 보자면 그녀 표정의 대부분은 무표정으로 보일테니까. 그 무표정처럼 보이는 표정들이 서서히 어떤 대사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려면 일정 시간동안 그 무표정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아야 한다. 수학적으로 말하자면 스칼라가 아닌 벡터의 개념이랄까. 참으로 감탄할만한 배우이다.
이 영화를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이 영화를 기억할때마다 눈물이 날지 모른다는 따위의
문장은 얼마나 시시한가.
11월 어느 하루 어느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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