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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소여의 모험 ㅣ 펭귄클래식 35
마크 트웨인 지음, 존 실라이 작품 해설, 이화연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5월
평점 :
대학에 입학하여 내가 호기심을 보인 것은 엉뚱한데 있었던 것 같다. 그때 학생들은 대개 두툼한 학과 교재 한두권쯤은 손에 들거나 품에 안고 다니곤 했기 때문에 지나가는 다른 학생들이 들고있는 책을 보고 무슨 과일지 짐작해보는 일. 그게 내 혼자 즐기는 취미가 된 것이다. 그러던 중, 영문학과 학생들이 톰소여의 모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보물섬, 걸리버 여행기 등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으로 알고 있는 책들을 가지고 공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의아했었다. 그 책들은 아마도 영문학사에 있어서 어린이책 이상의 의미가 있나보다 짐작할 뿐이었다.
여기 저기 출판사에서 전집류 출판이 이어지고 있다. 각 출판사별 특징을 정리해놓은 기사를 본적도 있는데 펭귄 클래식 시리즈 중에선 아마 안톤 체홉 단편집 <사랑에 관하여>를 읽은 후 이 책이 두번째가 아닌가 싶다. 로버트 슐츠가 그린 표지 그림도 맘에 들었고 몇장 들춰보니 트루 윌리엄스가 그렸다는 1876년 미국 초판본에 실렸던 삽화가 그대로 들어있는 것도 맘에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터넷으로 구입하면 많이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것을, 첫눈에 들었다는 이유로 서점에서 제 값 다 주고 바로 구입해버린 것이다.
톰소여의 모험. 아마 어릴 때 책으로도 읽었고 TV에서 만화로도 여러 번 봐서 내용은 거의 다 알고 있음에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진 건 단지 책의 표지와 그림이 맘에 들어서는 아니다. 어려서 읽을때는 이 엉뚱하고 막 돼먹은 것 같은 아이, 그리고 이 아이가 벌이는 일들이 재미있기만 했다. 그 재미때문에, 읽을 당시의 나이때문에 혹시 이 작품에서 놓치고 지나간게 혹시 없을까, 지금 읽으면 어떤 달라진 눈으로 읽게 될까, 그 동안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동안 나는 얼마나 변해있을까. 그런게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니 결국 나는 이 작품을 통해 "내가" 궁금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선 어린이를 대상으로 했다고 하기에 이 책은 거의 400쪽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제목은 '모험'이라고 되어 있지만 지금처럼 SF나 환타지 소설도 아니면서, 아무리 작가 자신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긴 분량을 머리속으로 지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읽으면서 전혀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게 말이다. 일단 작가의 능력을 인정하고.
분량도 분량이지만 이 소설은 과연 어린이만을 염두에 두고 썼을까 싶은 부분도 있다. 톰소여가 친구들과 어울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것이 그 예이다. 담배와 술은 미국에서 지금까지도 나이 제한에 무척 엄격한 대표적인 품목인데 1870년대의 이 아이가 또래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는 대목이 꽤 여러번 나오고 있다.
인종차별과 관련하여 문제가 될만한 대목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건 검둥이들한테나 어울린다느니, 검둥이들이나 하는 짓이라느니, 시대적 배경이 그렇다 할지라도 작가가 서슴치 않게 쓸 수 있는 대사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다음의 구절은 분명 톰소여가 아닌 작가의 목소리로서, 어른 독자들에게 펴는 주장에 가깝게 읽혔다.
이들 작문에는 공통적으로 우울증을 미화하고 지나치게 떠받드는 경향이 있었다. 또 '미사여구'를 무분별하게 남발하고 특별히 아끼는 단어나 어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했다. 글을 망치는 요소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모두가 하나같이 온전하지도 못한 말미에 가서 고질적으로 참기 힘든 교훈을 덧붙인다는 사실이었다. 주제가 무엇이든 관계없이 머리를 쥐어짜고 글을 비틀어서라도 어떻게든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심성으로 교화를 되새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교훈이 제 아무리 위선적이고 속이 들여다보인다 할지라도 학교에서 이 유행을 내쫓기에는 불충분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고 세계가 존속하는 한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32쪽)
톰소여 학교 학예회 행사로서 사랑받는 연설문 암송, 작문 발표 등이 있었는데 톰소여는 여기서 연설문 <나에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를 암송하게 되어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외우다가 중간에 딱 막혀버리고 만다. 학예회장은 순간 공포스런 침묵에 빠지게 되고 결국 톰소여는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풀이 죽어 무대에서 내려오는 대목이다. 이런데서 발표한답시고 읽혀지고 쓰여지는 글들이 다 저 모양이라는 작가의 개탄인 셈이다.
작가 자신이 학교 교육을 정식으로 받아보지 못했고, 어릴 때부터 생계를 위한 돈벌이를 위해 사회에 뛰어들어야 했다. 글을 본격적으로 쓰게 된 계기도 광산에 투자했다가 실패하고나서였다는데, 비평적인 눈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머넘치고 모험적인 내용의 작품을 발표했던 마크 트웨인. 본명이 아닌 이 이름은 뱃사람의 용어로 '깊이가 얕아 가까스로 항해할 수 있는 강'을 뜻한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 무슨 심오한 깊이가 있다고 볼 수는 없으나, 엄연히 지금까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읽혀지는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구태의연한 교훈을 담아서 쓰지 않았다는 것, 그 당시 사회상이 잘 드러나고 있다는 것, 독특한 인물이 작품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다.
내 경우 한번 읽은 작품을 다시 읽게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아니, 거의 없다. 예전에, 그것도 오래 전에 읽었던 소설을 다시 읽는 감회란 그 작품을 다시 보는 재미에, 그 동안 지나쳐온 시간과 달라진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라는 것이 더해져 괜찮은 책읽기 방법인 것 같다.
톰소여는 과연 커서 무엇이 되었을까.
이건 지금 내가 자식을 키우는 부모이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