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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과 왕필의 주 ㅣ 동양고전 슬기바다 13
노자 지음, 김학목 옮김 / 홍익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고전에 무지한 나에게 논어, 맹자, 채근담, 명심보감, 법구경, 소학 등은 그저 다 묶어서 '고전'의 카테고리일 뿐이었다. 자발적으로 읽을 확률이 아주 낮을 카테고리이기도 하고.
언젠가 <채근담>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이해하기 어렵지 않고 잘 읽혀졌다. 그리고서 <법구경>을 읽었는데 이것 역시 그리 어렵지 않고 가르침이 되는 내용들이 많았다. 그래서 고전이라고 모두 다가가기 어려운 것은 아닌가보다 했다.
며칠 전, ㅊ대명사가 나와 두권의 책을 추천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고 있었는데 그 중 한권으로 이 책, <노자의 도덕경>을 추천하는 것이다. 도덕경이란 제목으로 나와있는 책 중 이 책, 즉 왕필의 주가 제일 잘 해석되었다면서. '노자의 도덕경'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검색을 해보니 정말 많은 저자의 <도덕경>이 나와 있었다. 누가 번역을 하느냐, 누가 해석을 했느냐에 따라 수십권의 책들이 있었다. 그중 이 책은 중국의 천재학자라고 알려진 '왕필'이라는 사람이 해석을 해놓은 것을,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말로 번역을 해놓은 책이다. 같은 내용을 원본으로 했다면 누가 해석을 해놓은 것이 그리 큰 차이가 있으랴 했던 나의 생각 역시 잘 모르고 한 것이라는건 책을 읽으며 알 수 있었다. 이 부분은 다른 책에 보면 이렇게 해석되어 있다는 예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노자는 중국 춘추시대의 철학자인데, 춘추시대 하면 제자백가도 함께 떠올려지듯이 여러 사상들이 제각기 나름의 덕목을 내세우면서 번성하던 때이기도 하다. 이중 '도가'의 시조를 이룬 노자의 사상은 다른 사상들과 조금 다른 것이, 덕목을 내세우지 않을 것을 권한다는게 덕목이랄까. '무위 (無爲:없을 무, 할 위)'라는 한마디 말로 요약되는 그의 사상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나오는 '버리라, 비우라'는 말에서도 나타난있다. '무엇을 행하라'는 가르침이 담겨있기 보다는 무엇을 행하려하지 말라니, 종교 서적을 읽고 있는 착각이 들때도 있었다. '도교'라는 것이 생겨났을 만 했다.
노자의 도덕경이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이 조선시대인데, 조선시대의 정치철학이었던 유학과는 근본 이념부터 많이 차이가 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위에 말했듯이 노자의 도덕경 원본을 누가 해석했느냐에 따라 유학, 혹은 성리학에 대해 비판적으로 써놓은 것도 있고 (이충익), 유학의 근본 사상을 부정하지 않은 것도 있다. 아마 조선시대에 노자의 도덕경이 이단으로 찍히지 않고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시대의 대부분의 도덕경 주석이 유학의 근본 사상을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노자의 도덕경은 왜 '무위'를 주장하는가? 무위를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모든 '있음 (有)'은 모두 '없음 (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있음과 없음은 절대적으로 대립되어 있는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고, 하나의 이면이 다른 하나라는 것이다. 즉, 나온 곳은 같은데 이름을 다르게 붙였을 뿐이라고 한다. 사물의 존재 방식에 있어서도 대상화된 유는 무에 의해 성립하는 것이 필연적인 존재 방식이라서 어느 한쪽만 추구하는 것은 그것의 본성을 보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한다.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비어 있음에서 생기고 움직임은 모두 고요함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만물이 다 함께 움직일지라도 끝내는 비어 있음과 고요함으로 돌아가니, 그것이 바로 사물의 궁극이다.
잘은 모르지만 어떤 종교적인 철학이 느껴진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이치도 같은 맥락일 것 같다는 것, 그리고 불교 사상과도 어딘가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우면 반드시 넘친다'라는 말에서 나아가 '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말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 의미를 새겨야 할 것이다.
도덕경 상편의 22장 내용은 짧은 댓구 형식으로 노자의 사상을 그나마 쉽게 전달해준다.
"굽히면 온전해지고, 스스로 그 밝음을 드러내지 않으면 온전해진다.
우묵하면 채워지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면 그 공을 소유한다.
낡으면 새로와지며, 스스로 자만하지 않으면 그 덕이 오래간다.
적게 되면 (근본을) 얻고, 많게 되면 미혹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기만성'에 대한 글이 나오는데, '큰 그릇은 반드시 늦게 완성된다' 라고 풀이가 되어 있다. '반드시'? 큰 그릇이 늦게 완성되는 이유는 분별을 고집하지 않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분별하기 보다는 수용하는데까지는 연륜이 필요할테니까.
379쪽에, '허무 (虛無)'를 '마음비움'이라고 한 것도 인상적이다.
이 책의 뒤에는 노자의 도덕경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쓰여진 <숭유론>, 그리고 도덕경과 관련된 논문들도 함께 실려 있으며 책의 시작은 '왕필'에 대한 소개글로 하고 있다. 24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 짧은 생을 살면서도 천재 소리를 들었다는 왕필. 하지만 우리말로 번역을 한 번역자는 이 왕필의 주석본보다는 조선시대 이충익의 주석이 훨씬 더 뛰어나다면서 꼭 읽어볼 것을 권하고 있다.
집중이 요구되었던 책. '다 옳은 말이야'라면서 술술 읽어넘어가지질 않았다. 소위 '생각'을 해가며 읽어야하는 책이었기에 다른 주석으로 또 읽어봐야겠다고 안그래도 생각하던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