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프랑스식 서재 - 김남주 번역 에세이
김남주 지음 / 이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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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게되기까지: 결국은 책의 홍보가 목적이었겠지만, 책 소개와 함께 이 책을 보내주고 싶다는 메일을 출판사측으로부터 받았다. 이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본 적 있고, 사람들 눈길을 모으기에 제목을 잘 지었구나 생각했던 책이었다. 누구의 권유에 의해 책을 읽는다는 것이 내키지않아, 한동안 재미있게 하던 서평단 신청도 더 이상 하지 않고 있는 중인데, 책을 보내줄테니 책 소개글을 블로그에 캡쳐해서 올려주세요 라든지, 다 읽고 리뷰를 올려주세요, 라는 부탁의 말이 없기에 주소를 알려주었다. 며칠 후 감사하다는 답신과 함께 책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무채색 표지의 아담한 책이.

 

저자: 이름이 비슷해서 일어번역가 김난주와 혼동하기 쉽겠다. 이분은 프랑스어번역가인 김남주. 1960년생이니 지금 50대이고 대학 졸업후인 1988년에 번역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25년간 주로 프랑스 '문학작품'들을 번역해왔다.

 

책의 구성: '김남주의 번역에세이'라고 다소 애매한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은, 그녀가 번역한 책들에 실린 '옮긴이의 말', 또는 그 책에 대한 해설로 구성되어 있는데, 거기엔 우리가 잘 아는 생텍쥐베리, 아멜리 노통브, 로맹 가리, 실비아 플라스, 간디 등의 책도 있고, 내게는 생소한 에드워드 베르, 마샤 스크리푸치, 가즈오 이시구로 같은 사람들의 책도 있었다. 또한 그녀가 번역한 책이 모두 프랑스어는 아니고 일부는 영어로 된 책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느낌글: 저자가 쓴 느낌글에 대한 나의 느낌글이라고 해야겠다. 여기 인용된 책들을 모두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저자의 느낌글 자체도 상당히 문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저자의 책을 번역자만큼 자세히, 고민하고, 의미를 곱씹어가며 읽는 사람이 있을까? 이십년 넘게 주로 문학작품을 번역해오면서 얼마나 수려한 문장들을 많이 봐왔겠느냐 말이다. 어쩌면 그녀의 느낌글 역시 식상하지 않고 나름대로 세련되었으며 자기만의 통찰이 담겨있었다는 것은 새삼스런 결과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본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들어가는 말에서부터 나는 줄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줄곧 이 일을 내 삶의 징검다리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강 저편으로 가기 위해 딛고 가는. 오랫동안 내 시선은 내가 딛고 있는 그 징검다리가 아니라 내가 당도해야 할 강 저편 기슭에 고정되어 있었다고 고백한다. (9쪽)

아, 난 이게 무슨 말인지 너무나 잘 알것 같은데. 왜냐하면 나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이 사람은 그 생각을 이렇게 비유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구나 감탄했다. 이제는 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징검다리가, 어디로 가기 위해 잠시 거쳐가는 과정이 아니라 이것이 곧 내가 시선을 두고 집중해야 할 길임을.

삶의 반환점을 돌아, 남기는 일의 무상함과 중요함을 함께 깨닫는 나이가 되어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하는 (11쪽) 저자의 나이는 50대 중반. 무상함과 중요함을 함께 깨닫는 나이. 그래야 하는 나이.

프랑수아즈 사강의 그 이름이 본명이 아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도 우리나라 어떤 유명 소설가가 처음 한 말이 아닌, 사강의 말에서 인용되었다는 것도.<슬픔이여 안녕>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으며 평판만큼 좋은 느낌을 받지 못했던 내 경험에 반해, 저자는 사강이라는 인물을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끼게 해설해놓았다. 사랑을 불안정하고 임시적이고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에 나는 동의하니까.

"내 나이가 되면 이건 더 이상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네." (95쪽)

에밀 아자르의 <솔로몬왕의 고뇌>라는 책에서, 화자인 장이 솔로몬에게 마드무아젤 코라를 사랑사느냐고 묻자 여든다섯 살의 그가 한 대답이라고 한다. 이것을 인용하면서 저자는,

여든다섯 살에도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고 아침은 여전히 아침일 테지만, 그 나이에는 그 이상이 있고 이제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알 것 같다.

고 말한다. 사랑 밖에 다른 것은 눈에 안 들어오는 때가 있는가 하면, 그것외에 다른 것도 눈에 들어오는 때가, 살다보면 온다.

 

보통 책을 한권 번역하는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엑토르 비앙시오티의 책을 소개한 글에서 그녀는 번역을 맡은지 2년 만에 끝낼 수 있었다고 밝힌다. 다른 책보다 오래 걸렸다는 의미인데, 자기에게 벅찬 책이었기 때문이었다는 말 대신 '내 위에 있는 텍스트'였다고 표현했다.

'싫어할 수는 있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이라고 한 화가 달리에 대한 표현도 마음에 든다.

 

문학을 오래 해왔다면, 책을 오랫동안 읽어왔다면, 우리의 이성과 겸손이 좀더 진화되어 있어야 한다는 그녀의 말은, 내가 이 책에서 뽑은 제일 괜찮은 말이다. 금방 동의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과연 그럴까?' 하고 생각해볼 여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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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미미앤 2013-07-11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글을 뽑아내시는 분이니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시는군요! 이 글.. 난 이 책 보다 좋아할 것 같아요.
안그래도 저 역시 이 책 저자이름만 보고 일본책 번역하시는 분이 서재는 프랑스식으로 꾸몄나보네? 했는데요 하하하
김남주였네요^^ 아멜리 노통 번역하신 분이구나.. 로맹 가리도.. 음..
"여든 다섯 살에도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고 아침은 여전히 아침일 테지만.." 왠지.. 모를 여운이 느껴져요.
그냥..... 사랑에, 아침에, 온전히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여든 다섯..은 어떨까 비교해서 생각해보며 말이죠.

hnine 2013-07-11 21:07   좋아요 0 | URL
그런 여든 다섯일 수도 있겠지요. 그 나이에 이르기 전까진 짐작만 할뿐 누구도 자기가 어떤 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지 모르지 않알까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경험도 많아졌다고 "안봐도 뻔해"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일의 무상함과 중요함을 동시에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나이드는 것에 대한 위로가 되네요.
외국문학 번역을 많이 하신 분이어서일까요? 문체가 뭐랄까, 좀 이국적이랄까...그랬어요. 그럼에도 공감가는 문장들이 많았답니다.

2013-07-12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12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12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3-07-13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년 동안의 번역
아~
징검다리
많은 생각이 오가네요

hnine 2013-07-13 12:55   좋아요 0 | URL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을 나만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걸 발견할때의 공감, 그리고 작은 위안. 저도 그런걸 느꼈습니다. ^^

세실 2013-07-13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받았는데 생각보다 쉽게 읽히지 않아요. 프랑스 문학에 대한 관심 부족인듯~~~~
오늘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그냥 부담없이 읽으라고 했지만 부담이 되네요. ㅎ

hnine 2013-07-13 12:57   좋아요 0 | URL
저도 중간에 모르는 작가들의 책이 계속 나올때 잠시 주춤...^^
그래도 저자의 예리한 감각, 감성과 절제가 균형을 이룬 문장들이 저 역시 프랑스 문학에 대해 잘 모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무사히 끌고 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