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런 저런 이유로 평소보다 TV를 자주 보고 있다.

어제 본 어느 시트콤.

이웃 여자가 땅을 좀 가지고 있는데 곧 개발에 들어가기 때문에 상추를 심어만 놓고 그냥 놀리고 있다는 말을 하자 여자는 내가 한번 키워보겠다며 그날부터 정성을 다해 상추를 돌본다. 상추를 '우리 애들'이라고 부르며 상추에게 인사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애지중지 키워 거둔 상추는 이웃 사람들에게 먹으라고 한가득씩 안겨다주며 행복해하는데, 결국 그 땅이 개발에 들어갈 날짜가 정해지자 여자는 서운한 마음에 어쩔 줄 모른다. 내일이면 다 갈아엎어질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직도 파릇파릇 자라고 있는 상추밭에 앉아 상추들을 만지작거리며 여자는 훌쩍거린다.

"니들도 다 살려고 태어난건데, 개발은 뭔놈의 개발이고 누구를 위한 개발이냐......"

여자는 마치 사람에게 하듯이 상추를 쓰다듬으며 이런 말까지 한다.

"부디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맘껏 한번 살아봐."

결국 엉엉 울며 밭에 남은 상추를 거둬들이고 있는 여자를 보며 하마터면 나도 같이 울 뻔 했다.

 

'니들도 다 살려고 태어난건데.'

한 해에 버려지는 유기견이 십만 마리라는데, 하물며 동물도 아니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식물을 보며 이런 마음을 갖는 것. 그런 마음이면 되는데.

살아있는 모든 것들, 움직이지 못하고 말 못해도 이 세상에 태어난 귀한 생명. 함부로 대하지 않기 위해, 나도 기억해두고 자주 되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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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3-05-18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추도 아끼고 이뻐해줘야 잘 자라는데요
저도 요즘 상추 키우는데 많이 공감가네요

hnine 2013-05-18 09:08   좋아요 0 | URL
저기서 상추키우는 여자는 상추가 시들하면 그 상추를 보고 막 안타까워해요. 꼭 아픈 자식 돌보는 엄마처럼요. 시들하다가 다시 건강해진걸 보면 대견하다고 막 칭찬해주고요. 혼자 밭에 가서 그러고 시간보내느라 허리가 아픈지도 모르고 있다가 집에 와서 끙끙 앓더군요.
저도 아침에 일어나면 몇개 안되는 화분들부터 쭉 둘러보긴 하는데, 지난 번에 심은 허브도 다 죽어버렸어요 ㅠㅠ

하늘바람 2013-05-20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브는 키우기 쉽지 않더라고요

hnine 2013-05-20 09:35   좋아요 0 | URL
전 허브가 제일 쉽게 키울수 있는 식물인줄 알았어요. 금방 싹이 나서 좋아했더니 2-3cm정도 자라고서는 더 안자라고 푹 쓰러지더군요.

하양물감 2013-05-20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지 잘 모르겠네요. ㅠ.ㅠ

식물키우는 거 어렵기만 해요. 식물은 식물대로 자연에서 제 스스로 크는게 제일 좋겠죠? 우리집에 오면 죽어나니까 요즘은 자꾸 집안에 식물을 안들이게 돼요...ㅋㅋㅋ

hnine 2013-05-20 09:39   좋아요 0 | URL
식물키우는게 어려운거 맞아요. 키우는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계속 봐주지 않으면 시들고 병 들고 있는 걸 모르고 지나치게 되더라고요.
동물도, 식물도, 자연에서 제 스스로 크는게 제일 좋지요. 집안에 들여놓고 키우려면 더 잘 키워야 하는데.
오늘도 일어나서 난 화분에 새로 나오는 촉이 얼마나 자랐나, 그것부터 살폈답니다.

2013-05-23 0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3 1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