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위로
앤터니 스토 지음, 이순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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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독 (Solitude)' 이라는 단어

 

사람의 기억력이란 참 이해가 안 될때가 있다. 한 달 전 일도 잊어버리기 일쑤이면서, 지금으로부터 거의 25년 전, 영어 강사의 그 한마디가 이렇게 불쑥 생각나다니.

지금처럼 찌는 듯한 여름. 대학3학년 여름방학때 학교에서 하는 저렴한 수강료의 영어 특강을 듣고 있었다. 졸립고 따분하기 딱 좋은 강의인데 그때 그 강사는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게 잘 가르쳤었다. 지금도 어떤 단어를 보면 그 수업 시간이 가끔 떠오를 때가 있을 정도로.

Solitude 라는 단어도 그 중 하나이다.

"Solitude가 무슨 뜻입니까? '고독' 이라고 말할려고 그랬지요? 거기 책에도 그렇게 나와있으니까."

그럼, 아니란 말인가? 갸우뚱하는데 그 강사 하는 말, Solitude와 Loneliness는 다르다는 것이다.

둘다 홀로 있는 상태를 말하지만 Solitude는 어느 정도 자의성이 들어가 있어서 그 상태를 싫어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 반면, Loneliness는 자기는 그럴 의사가 없는데 혼자 있게 된 상태, 그래서 전혀 행복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고. 이 둘을 우리는 모두 '고독'이라고 알고 있지만 아주 다른 의미라고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그 생각부터 났고, 혹시 이 책도 그런 것과 관련된 내용이 아닐까 짐작했다.

원제 Solitude 옆에 작은 글씨로 A Return to the Self 라고 써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제목에 이 책 한권의 요점이 다 들어있다는 것을 알겠다.

 

2. 고독할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혼자 있는 능력'은 학습과 사고와 혁신을 가능하게 하며 변화를 받아들이게 하고 상상이라는 내면 세계와 늘 접촉하게 하는 귀중한 자질이다. 친밀한 관계를 맺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해도 창의적인 상상력이 개발로 치유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인간관계보다는 자신의 삶에서 의미와 질서를 만드는 것에 주로 관심을 기울이는 창의적인 사람들도 많다. (48쪽)

 

인간관계와 관련하여 사람들이 불만스럽게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크게 두가지 경우이다. 옆에 누군가가 없어서 외롭다는 경우와 제발 좀 혼자 있고 싶다는 경우. 그러니까 우리들은 누가 옆에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이라는 말이다. 나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고 추진하는 것에 취약하다. 대학생들 중에도 무엇을 하나 시작해볼까 할때 일단 같이 할 사람부터 찾는 경우를 많이 본다. 왜 그럴까? 혼자서 하는 걸 보면 남들이 어떻게 보일까 하는 염려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원천적으로 들어가보면 혼자 그 일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기가 두려워서가 아닐까? 나중에 그 결과를 혼자 감당해내기가 두려워서, 함께 나눠 가질 사람을 미리부터 구하려는 것 아닐까.

 

이 책에서는 사람들과 잘 못 어울리고, 스스로 혼자있기를 더 좋아했던 사람들의 예를 들면서, 그들 중에는 분명히 정신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던 사람들도 있지만, 그 중의 소수는 그런 성향을 오히려 창의적인 곳으로 몰아, 남들이 낼 수 없는 아이디어를 창출하여 만족스런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있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철학자나 작가, 예술가 등,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 중에 특히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칸트, 비트겐슈타인, 뉴턴 등이 여기 해당하는, 우리가 알만한 사람들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혼자 있는 능력은 귀중한 자원이라고 말한다. 혼자 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진정한 내면과 만나고 그것의 소리를 듣고 답할 기회를 갖는다. 상상력이 생겨날 수 있는 순간이며 그때의 충족감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다. 진정한 자기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3. 창작, 고독, 우울증 사이의 관계

 

친밀한 인간관계만이 건강과 행복의 요소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날 사랑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로 미화되는 분위기는 위험하다. 정신 건강의 구성요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프로이트는 사랑하고 일하는 능력이라고 답했다. 우리는 그 능력 가운데 사랑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일에는 관심을 거의 두지 않았다. 여러 정신분석에서 오직 인간관계에만 집중하다 보니, 개인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다른 방법들에 주목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를 맺지 않을 때 개인의 정신 구조 안에 서 나타나는 역학변화에 대한 연구도 소홀하게 되었다. (333쪽)

 

고독이 어떤 만족감으로 이어지는데는 '창작'이라는 과정이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은 경우 결과는 '우울증'으로 짓눌리게 되기 쉽다. 즉, 창작 과정은 개인이 우울증에 짓눌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천재들은 상실을 겪을 때 내면의 재능을 이끌어내며, 상실이 영감이 된 음악, 시 그림 등의 작품들을 만들어내는데, 이건 천재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며, 뛰어난 재능이 없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남들에게 천재만큼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창의력이 자극을 받는다는 말이다.

 

4. 고독할 시간이 없음을 차라리 불평할 것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모두

좋은 본성과 너무도 오랫동안 떨어져 시들어가고,

일에 지치고, 쾌락에 진력이 났을 때,

고독은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가. -윌리엄 워즈워스-

 

혼자 있기를 즐긴 사람들 중에는 분명히 말하지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해나가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그나마 위에 예로 든 위인들은 뛰어난 창의력을 발휘하여 그것으로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은 사람들이었지만 우울증에 짓눌려 산 사람들도 많다는 얘기이다. 그것은 혼자 있는 시간을 내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용하는가에 달려있다.

 

핑계대고 구실 찾기 좋아하는 우리 인간. 우리가 상처받고 우울하고 울어야 하고 남보다 행복할 수 없는 이유를 수십 가지 찾아내어 자기 합리화 시키는데서 그치지 말자. 고독은 그렇지 않더라도 인생에서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다.

누군가 이렇게 멋진 책을 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서 발견한 것이, 아니, 이제라도 발견해서 읽게된 것이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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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8-11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독감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중의 하나가 아닐까싶어요. 그게 창작의 영감에 불씨가 되는 경우는 허다하구요. 이런 좋은 책이 있군요. 찜해갑니다. ^^

hnine 2012-08-12 05:51   좋아요 0 | URL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고, 좀 극단적인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요. 우울하고 고독할 때 창작의 계기가 되는 경우를 다른 사람에서도, 그리고 솔직히 저 자신에게서도 많이 보기 때문에요.
어떤 상황이나 시기를 겪어내는 방법은 참 여러 가지인 것 같지요.
고독. Solitude. 멋진 말이어요 ^^

Jeanne_Hebuterne 2012-08-13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퍼에 대한 책에는 'his painting is not a story about lonliness, but about solitude'라고 씌어 있었어요.

hnine 2012-08-13 15:57   좋아요 0 | URL
아, 평소에 저는 호퍼의 그림에서 solitude보다 loneliness 쪽으로 느꼈는데요. 언어는 사람의 마음만큼이나 모호하고 변동적인 것 같아요.
Loneliness에 비해 Solitude는 사유와 깨달음의 과정을 거친, 뭔가 더 고차원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해요.

마녀고양이 2012-08-14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해 고민했는데, 특히 마립간님께서 언급하셔서 더욱 그랬는데
언니의 리뷰를 보니 구매해서 읽어봐야겠어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혼자있는 것을 워낙 좋아하다는데다, 그런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니, 공감대 형성이 잘 될거 같아요. 누군가 곁에 있고 힘이 되어주는 때에 물론 빨리 우울이나 무력에서 벗어나긴 하지만, 그래도 나 자체를 좋아하고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며 빈 구멍을 채워나갈 때가 너무 좋더라구요....

hnine 2012-08-15 06:08   좋아요 0 | URL
이 책 읽으면서 안그래도 달사막여우님 생각을 간간이 했었어요. 예전엔 아주 많이, 요즘에 그래도 여전히, 저도 심리학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저처럼 어설픈 관심이 아니라 워낙 진지하게 배운 내용들을 페이퍼로 올려주시는 걸 제가 달사막여우님 서재에서 읽어왔기 때문이겠지요.
더 전에 읽은 황상민 교수의 <독립의 연습>에서도 프로이트 심리학이 현대 심리학에, 또 일반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얘기가 잠깐 나와요. 이 책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요.
이 책, 제가 달사막여우님께 감히 추천드립니다. 여러 가지 내용을 담다 보니 좀 산만한 느낌도 있지만 그건 옥의 티라 여기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