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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아이들 (양장) - 히로세 다카시 반핵평화소설, 개역개정판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육후연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내가 쓰기 시작한 것은 '지금 사람들이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지구는 끝장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73쪽, 저자의 말)
읽기 전에 이미 귀로 너무 많이 들어와서, 읽은 것 같은 책들이 있다. 이 책도 그 중 한권.
읽어야할 책, 읽기를 권하는 책 목록에 단골로 끼어있기도 하고, 이 책을 인상깊은 책으로 꼽는 사람도 여럿 보았다. 물론 이 책의 문학적 가치보다는 사실을 고발한다는 책의 또다른 기능을 잘 보여주기 때문 아닐까 한다. 개인적으로는 읽기 전에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가면 읽고자 하는 호기심이 떨어지기 때문에 읽어야 하는 의무감이 그것을 이기는 때가 오기 전에는 쉽게 손에 들게 되지 않는 아쉬운 책 중 한 권이었다. 그 의무감이 생겨나서 드디어 읽게 되었다.
지은이 히로세 다카시는 일본에서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작가, 그리고 반핵평화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저자는 자신의 그런 목적에 한 방법으로서, 특히 어린이들에게도 이런 사실들을 알려야한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썼을 것이다. 이른바 르포소설 형식이라고 하는 이 책은 그래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지기보다는 마치 뉴스 기사보다는 좀 긴 분량의, 하나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이 들게 한다.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30분. 논픽션 소설 답게 정확한 시각을 나타내는 문장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쾅'하는 엄청난 소리가 나면서 불기둥이 솟아오른다. 어두운 밤하늘이 순식간에 대낮처럼 환해지면서 지진이 난 것 처럼 아파트 전체가 무섭게 흔들린다. 자기집 창문으로 이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는 열다섯 살 소년 이반. 이반의 아버지는 바로 그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고 있다. 대번에 사고가 일어났음을 알지만 그게 무슨 사고인지, 그게 이반의 가족에게 어떤 생각지도 못하는 결과를 불러온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자신과 자기 가족에 닥친 위험보다 일터로 가서 사고를 수습해야했던 아버지가 제일 먼저 죽고, 제일 나이 어린 이반의 여동생이 병원에서 죽는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 격인 이반도 목숨을 잃는다. 결국 이반의 엄마 혼자 남았지만 누구도 모른다 그녀가 얼마나 오래, 제대로된 생을 누렸을지.
책의 내용에 의하면 사고가 난지 하루만에 제일 먼저 이상을 느끼는 신체부위는 눈이었다. 시야가 갑자기 깜깜해지는 증상이 나타나다가 결국 시력을 잃게 되고, 온 몸에 반점이 생기면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입에서 그리고 피부에서 출혈이 시작된다. 장기가 손상되어 일어나는 현상이다.
원자력발전은 과연 계속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기에 앞서 역시 진리는 세상에 댓가 없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원자력이 다른 에너지 자원이 가지지 못한 훌륭한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한번 사고가 나면, 국한된 인원의 사람에게, 국한된 기간 동안만 그 사고의 결과가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늘 그 장점에 익숙해져 있고 알게 모르게 그 장점의 혜택을 누리며 길들여져 살고 있다가 이제 더 이상 내치지 못할 단계에 이르러, 이런 치명적인 사고를 겪고 나서 그것의 다른 면을 보게 된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그러고도 그 길들여진 장점을 포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사고가 아직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가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인간의 힘으로 수습하기 어려운 이런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 책에서도 제1통제권 역할을 하는 군(軍)조직. 하지만 사실이 말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통제하기 위해 믿어져야 하는 대로 알린다. 이탈하는 자에게는 총살을. 과연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저 '원자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 현상인가, 아니면 그것을 제 멋대로, 제가 쓰기 편한대로, 대책없이 이용하고 자업자득을 겪고 마는 '인간들' 자신인가.
이런 책을 사실적으로, 제대로 쓰려면 고발 정신만으로도, 글쓰는 능력만으로도 안되는, 정말 필요한 한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이 방면에 대한 지식이다. 이 책의 저자는 대학에서 엔지니어링 분야를 공부했고 방사선 관련 서적 번역일을 꽤 했기 때문에 방사능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었다고 한다.
훌륭한 의도가 담긴 책이지만 별점을 세개만 준 이유는, 논픽션소설이라도 이왕 '소설'이라는 이름을 달 바에야 좀 더 읽는 사람을 긴장시키는 구성이었으면 더 좋았겠다 하는 기대때문이다. 결말이 정말로 예상대로 그대로 끝나는구나 하는 讀後感외에, 더 강렬한 느낌을 남길 수 있었다면 하는 기대.
이렇게 '체르노빌 원자력 사고' 정도의 사건으로만 알고 있는 방사능. 사실 우리가 지금 숨쉬고 있는 이 공간에도 여기 저기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들 있는지. 엑스레이, 마이크로웨이브, 휴대폰, 전자파, 이런 것들 역시 우리가 결코 안심할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그 길들임과 편리함 속에서 우리는 모르는체 외면하면서 불편한 진실의 하나 쯤으로 못본 척 하고 있지는 않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