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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고 만들고 가꾸는 조각보 같은 우리 집
김근희.이담 지음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는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다. 아내 김근희와 남편 이담. 두 사람 모두 그림을 업으로 하고 있는데 아내 김근희는 어려서부터 바느질하고 옷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대학 다닐 때는 실제로 직접 옷도 만들어 입고 다녔다고 하고 남편 이담은 그림 외에도 손으로 나무를 뚝딱거려 입체적인 것을 만드는데 흥미와 재주를 가진 사람이다. 같은 대학 같은 과 동기인 두 사람이 결혼을 하고, 늦은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서 거기에 자리 잡고 산지 19년. 이사도 몇 차례 다녔고 아이도 다 키워서 두 아이 모두 대학을 졸업했다니까 이제는 지긋한 나이이지만 책 속에 담긴 두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어느 젊은이들 보다 재미있어서 그 소개부터 늘어놓아본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 두 사람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미려면 우선 함께 살 집이 마련되어 있는지를 본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집에서 그치지 않는다. 소위 혼수 가구라고 하는 것들을 다 장만해 가는 것도 당연하다고 보는 것이다. 다 마련된 집에 - 많은 경우 양가 부모님에 의해 -, 가구 일체를 다 갖춰 놓고, 그것도 지금 아니면 언제 장만하랴 하는 비장한 자세로 이왕이면 최신의 고가품을 마련해가려고 애쓴다. 그런 가운데 이 책의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은 얼마나 신선한가. 나이 지긋한 이 부부의 모습이 어느 젊은이들 만큼이나 푸릇푸릇해보인다. 이들에게 있어 집이란 제목에 나타나는 그대로 고치고, 만들고 가꾸어 나가는, 조각보 같은 것. 완성품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 나의 손길과 아이디어와 수고와 땀이 깃들어 있는 곳. 몇 평형, 무슨 가구의, 어디 가나 볼 수 있는 규격품 같은 집이 아니라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의 집.
물론 이들에게는 그런 아이디어와, 기술이라는 바탕이 있었지만 그것 역시 처음부터 마련되어 있었다기 보다 고치고 만들고 가꾸느라 늘어간 기술이고 아이디어이다.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한가지씩 더 갖추어 가며 사는 삶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살림살이를 갖지 않고 살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한 평의 공간을 더 갖고 싶으면, 한 평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 물건들을 치우라고, 이번에 이사하고 정리하면서 나도 남편과 아이에게 꽤나 잔소리를 했었다. 가장 좋은 것은 소유하지 않는 것.
냉장고가 꽉 차 있을 때 나는 오히려 불안하다. 새로 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있는 재료로 뭔가를 만들어내어 냉장고 속 먹거리를 잘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적으로 며칠 밥상을 잘 차려내고 나면 기분이 좋다.
안 쓰는 문짝으로 테이블 상판을 만들고, 창문을 만들어 한지를 붙이고, 어디로든 이동 가능하게 만든, 나무 상자로 만든 책꽂이는 책이 집에서 한 짐 차지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솔깃하게 들리는지. 지인들이 와서 보고는 이 집은 올때마다 바뀐다는 말을 한다고 한다. 좋은 집의 정의는 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집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최소한의 물건이 제자리에서 자기 소임을 충분히 다하는 집.
집을 보면 거기 살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집 얘기 속에서 저자의 가치관과 사고 방식을 읽는다. 이사 갈때 제일 먼저 도서관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를 본다는 것, 아이들에게 어떻게 미술을 가르치면 좋겠냐는 물음에 대새 어디에 보내서 그림을 배우게 하기 보다는 좋은 재료 집에다 사다 놓고 언제 어디서든지 그리고 싶을 때 마음껏 그리게 하라고 일러준단다. 그리고 아이가 그린 그림에 대해 잘못된 곳을 찾아내어 바로잡아 주려고 하지 말고 칭찬을 많이 해주라고. 좋은 그림은 실수로부터 나오기도 하는 법이니까. 미국에 살면서 의료 보험 없이 살고 있는 비결은 '맨손으로 맹물로'라는데 비싼 의료 보험비 감당하기 힘들기도 하지만, 평소에 좋은 재료의 음식을 적게 먹고, 특별한 운동이라기 보다 많이 걷고 움직이고 맨손 체조하고, 아침마다 깨끗한 맹물에 얼굴을 담그고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눈 운동을 하고, 음식을 할 때에도 최소한의 재료로 최소한 간단한 과정을 거쳐 조리하는 등, 나름대로의 방침을 지키며 살고 있었다.
책 여기 저기에 그들이 만든 가구, 소품, 가방, 집의 한 구석의 모습, 그리고 이들의 그림이 실려 있다. 많은 어린이책의 그림을 그리기도 한 이들의 그림 역시 이들을 닮았다. 화려한 색깔이 아니라 많지 않은 색을 써서 세밀하고 정감있게,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게 그린 그림들이 대부분이다.
집은 곧 그 집 주인의 철학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내 집을 둘러본다. 많지 않은 세간이지만 더 들일 것도 없다 싶다.
남편 이담 화가가 만든다는 '통밀빵'은 나도 조만간 꼭 만들어보리라. 네가지 재료만으로 만드는 빵. 그 빵 맛을 꼭 느껴보고 싶다. 그 맛 처럼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