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와 흰 코끼리 - 작가 남지심, 20년 사색의 풍경
남지심 지음 / 모루와정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무슨 종교면 어떻니. 너도 종교 생활을 해보면 좋겠다. 나이 들어가면서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종교이더구나."

자기 스스로 노력할 생각은 안하고 기도하고 빌면 다 이루어질거라 생각하는 것 부터가 잘못된 것이라고, 종교에 대해 다소 부정적으로 말씀하시던 나의 어머니 아니셨던가. 그런 분이 요즘 종종 내게 하시는 말씀이다. 외할머니처럼 열심히는 아니어도 예전부터 가끔 무슨 때가 되면 절에 가시곤 하던 어머니지만, 사람들이 너무 종교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신 말씀이시라 생각된다. 내가 어릴 때는 친구를 잘 못사귀는 나의 성격을 염려하여 집 앞의 주일학교에 직접 데려가주시기도 하였고, 가족 중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종교를 가질 것을 강요하신 적도 없다. 그래서 지금도 나의 여동생은 아주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하다.

마음이 어지러울때마다 가끔 교회에 혼자 찾아간 적도 있고, 일부러 기차나 버스 타고 먼 곳에 있는 절에 가본 적도 있다. 하지만 그 정도에서 그칠 뿐, 어느 한 종교에 귀의를 하는 기회는 아직 오지 않고 있다. 새로 이사온 이 집 가까이에 대학 교회가 있는데 아침 9시와 저녁 6시에는 요즘 듣기 힘든 은은한 종소리가 들린다. 확성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뎅~뎅~ 울리는 그 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나쁘지 않아 한번 찾아가보고 싶은 생각도 한다.

나는 읽지 않았지만 '우담바라'라는 소설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소설가 남지심. 나에게는 예전에 즐겨보던 TV 청소년 드라마 '고교생일기'의 작가로 더 친숙해진 작가. 그래서 '솔바람 물결소리', '연꽃을 피운 돌'이란 소설을 대학생때 도서관에서 찾아 읽은 기억이 있는 작가. 지금은 거의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지고 있던 차에 새로이 수필집을 냈다는 것을 어느 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젊은 시절 오랜 방황과 고민의 시기를 보낸 끝에 나름대로 불교에서 길을 찾았다고 고백하는 그녀의 수상록이라고 할까. 수상록이라고 하기엔 가볍고 짧은 글들이긴 하지만, 평범한 어휘, 평범한 어조로 누구나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를 얘기들을 천천히 읊조리듯 책 한권 속에 풀어놓고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다는 것이 누구나 다 그것을 '경험'해보았다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 그래서 자기의 경험이 녹아들어가면 그것은 생명력과 설득력을 갖게 된다.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어서가 아니라 알지만 잊고 지내던 것을 깨우쳐 주는, 나보다 먼저 산 사람의 귀한 얘기를 듣고 있는 느낌으로 읽었다.

제목의 '톨스토이'는 그녀가 지금까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책 중 하나라는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에서 인용한 문구를 제시하면서 그에 관련된 저자의 생각을 썼기 때문이다. 제목의 흰코끼리는 불교의 가르침을 의미할 것이다.

책 표지 위 '기쁨도 연습이 필요하다'라는 말부터 나를 부끄럽게 했다. 기쁨을 느끼는 것은 그 사람에게 특히 더 기쁜 일이 일어나서가 아니고, 그 사람의 성격때문만도 아니고, '연습', 즉 '수양'이 필요하다는 말 아닌가. 사는 것 자체가 쓸쓸하고 외롭고 힘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나인데.

내면의 정신세계가 높아질수록 생활은 단순소박해진다는 82쪽의 이 말도, 여기서 처음 읽는 것이 아님에도 또 밑줄을 긋게 한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많을 것 같고, 흥미진진해보이고, 늘 신나는 일들이 따라다니는 것 같은 삶, 내일은 오늘과 확연히 달라보이고 하루하루, 한해가 갈수록 눈에 띄게 뭐가 달라보이는 삶을 부러워할게 아니구나. 무슨 큰 일을 벌이지 않으면서도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어김없이 해내는 삶을 오히려 눈여겨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나의 물음에 대한 답을 어디서, 무엇을 통해 찾을 수 있을까 고심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을 쏟자는 말 또한 처음 듣는가? 처음 듣는 말이 아님에도 들을 때마다 다시 새기게 되는 말이다.

 

2011년의 마지막 날 새벽, 조용히 앉아 이 책 읽기를 마치고 되돌아 볼 수 있어 감사하다. 그럴 수 있게 해준 작가에게도.

자주는 못되더라도 앞으로도 종종 이런 글을 읽을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란다. 아울러 그녀의 건강도. 

내일 부모님댁에 갈때 어머니 읽으시게 가져다 드려야겠다. 책 마지막 부분의 '나의 어머니께'라는 글을 읽으실 땐 외할머니 생각을 하시며 또 눈물 지으실지도 모르겠다.

 

 

 

-사진 출처 : '톨스토이와 흰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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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12-31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담바라의 작가군요. '기쁨도 연습이 필요하다' 맞는 말입니다. 저도 무의식중에 자기 암시를 하는거 같아요.
좋은 아침! 멋진 한해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이사하신거 축하드려요^*^ 부러워라!

hnine 2011-12-31 11:51   좋아요 0 | URL
세실님, 공부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지요? 꿀맛같은 방학을 즐기세요.
요즘은 반성모드라서 그런지 읽는 책마다 마음에 쏙쏙 들어오네요.
기쁨도 연습이라는 말은 '기쁨'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겠지요.
이사해서 좋긴 한데 예전 살던 동네가 그리워질 때도 있어요 (집이 아니라 동네 ^^) 충남대 옆에 살다가 지금은 목원대 옆입니다.
세실님도 좋은 한해 계획하시길!!

잘잘라 2011-12-31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세번째 손 사진 뭉클해요. 울엄마도 장농 속에 꽁꽁 싸서 모셔두었던 반지랑 목걸이랑, 요즘 새삼 꺼내서 끼고 다니시거든요.

hnine님 어머니 멋지세요. 나이들면서 필요한 건 첫째는 돈이고 둘째는 돈이고 셋째는? 역시 돈이라고 말씀하시는 울엄마는..? ㅋㅋ 그래도 hnine님이 어머니 생각하시듯 저도 울엄마 생각하면 짠하고 사랑하고 그래요.^^;

부모님댁에 잘 다녀오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hnine 2011-12-31 11:57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의 어머니 사랑은 님의 글 여기 저기서 잘 드러난답니다. 읽는 사람 마음도 찡하게 하는걸요. 저 책에 보면 부모의 마음을 제일 허망하게 하는 것도 '자식'이라는 말이 나와요. 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쏟아부은 대상이 언젠가 나에게서 저만큼 멀어져 자기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볼때, 내 옆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을 볼때의 허망함이란 말로 형언할 수 없다고 하는군요.
나이들면서 필요한 것 '돈', 저 동의해요!! 그것만 필요한게 아닐 뿐이지요 ^^ 어머님 말씀 옳습니다!!

숲노래 2012-01-02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러한 책이 있었군요.
새해 좋은 책으로
좋은 사랑 곱게 이루셔요~

hnine 2012-01-02 07:46   좋아요 0 | URL
저는 좋았는데 내용이 어찌보면 밋밋하기도 해서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어머니께 읽으시라고 드리고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