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글공주 -임 정자 동화집 -

동화를 읽기만 읽었지 동화란 어떻게 써야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배워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혼자서 ‘아, 동화란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1. 제목

당글공주. 당차고 발랄한 모습과 성격이 연상되는 이름이다.
발음이 경쾌해서 아이들도 쉽게 입에 오르내릴 수 있을 이름이다.
아마도 작가는 이런 저런 여러 가지를 고심해서 지었으리라.


2. 운율

시에만 운율이 있는 것은 아니구나. 이 책을 읽다보면 소리 내어 읽지 않아도 글에 리듬이 살아있는 것이 느껴진다.

예1. 무지무지 힘이 세고,
      대단히 똑똑하고,
      아주아주 용감한

예2. 겨우겨우 잠들었다 일어나 보니
      투둑투둑 투둑투둑. ‘이게 무슨 소리지? 비가 오잖아.
      난 몰라. 소풍 가긴 다 틀렸네.
      날마다 해 쨍쨍 나더니 갑자기 웬 비가 와.’ 
      마지못해 가방 메고 학교 가니까
      투둑투둑 떨어지던 빗방울, 언제 왔냐는 듯 그쳐 버렸네.


3. 적절한 비유와 상징

홍역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병을 홍역 괴물로 형상화하는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고, 그것과 맞서 싸우는 과정이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어떤 아이가 홍역에 걸려서 며칠을 끙끙 앓고 아이의 엄마는 옆에서 아이에게 잘 참아야 한다고 달래는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사실 그대로 진행된다고 가정해보라. 아무리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한다고 해도 이야기가 재미있겠는가?

4. 재미를 넘어서지 않는 교훈

동화가 갖춰야 할 조건 중의 하나라면 읽는 주요 대상이 어린이라고 간주하고 써진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읽어서 배울 점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홍역에 걸리게 되는 과정, 그것을 잘 참고 이겨내는 과정, 이겨낸 후 따라오는 보상, 보람, 성장.
동화의 조건을 균형 있게 잘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지나치게 드러나게 강조되어 재미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것, 바로 그것!



수지 모건스턴의 '조커'를 통해 생각해 보는 아이들 교육 방식 


수지 모건스턴의 그 여러 작품들을 읽어보아도 어느 하나 비슷한 내용이 없다. 어쩌면 그렇게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늙고 뚱뚱하고 목소리마저 이상한 노엘 선생님. 아이들은 학교가 시작하는 날 담임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지만 노엘선생님이 한가지씩 내어놓는 아이디어는 곧 아이들로 하여금 학교를 가기 싫어하는 곳이 아니라 그 반대로 만들어놓는다. 노엘 선생님의 그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다른 선생님들보다 아이들을 더 사랑했기 때문일까?
나는 오히려 그가 아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노엘 선생님은 어른의 기준에 맞추어 모델 상을 만들어 놓고 모든 아이들을 그 규격에 맞추는데 온 시간과 노력을 소진하지 않았다. 좀 못하면 어때, 좀 모르면 어때, 학교 좀 빠지면 어때, 수업 시간에 한번 쯤 군것질 좀 하면 어때, 한번 쯤 떠들면 어때, 옆 친구 것 좀 베끼면 어때.

물론 아이들로 하여금 이런 규칙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기게 하면 안 된다. 오히려 이 결과 아이들은 그런 규칙들이 왜 필요하고 왜 어쩌다 한번만 사용해야 하는 것인지 피부로 느끼게 될지 모른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은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게 아니다.
조커를 만들어 사용한다는 발상 또한 작가가 던지는 의미 있는 메시지이다. 규칙을 어기지 않고 완벽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 때때로 이렇게 스스로 조커를 만들어 사용할 줄 아는 사람, 즉 융통성 있고 관대할 수 있는 사람이 요즘 세상을 무사히 버텨나가는데 더 적자(適者)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내 친구를 찾아서 -조 성자 지음-


아이들의 고운 심성이 드러나는 고운 이야기인데 왜 재미가 없을까?

수지 모건스턴의 책을 읽고 난 후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책을 읽고 나면 나는 마치 이 책을 내가 쓴 것인 양 아이디어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답답해진다. 과연 작가, 특히 어린이책 작가로서 갖춰야할 제일 중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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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9-10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당글공주... 어떤 아이인지 얼른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막 샘솟네요. 가끔 동화책도 읽어보고 싶은데 학교 도서관에는 동화책이 아예 없다는 게 늘 불만이에요. 어린이도서관에 한 번 들려야겠어요 ㅎㅎ

hnine 2011-09-11 05:03   좋아요 0 | URL
오, 수다쟁이님. 그림책, 동화책 읽기도 꼭 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삶이 팍팍하게 느껴질때 '비타민'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머리 속 복잡할때 문제의 근본에서 흐트러지지 않게 해줄때도 아주 좋아요. 제가 돈만 많으면 그림책을 하나하나 사서 모으고 싶답니다.
위의 당글공주 같은 친구, 애인, 배우자 (?)가 있으면 참 좋을텐데...^^

내가 내게 만들어주고 싶은 조커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고요. 저라면 'oo살 먹은 어른이라는 것 하루동안 잊고 지내보기' 이런 조커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

순오기 2011-09-11 0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점 깊이가 더해지는 나인님의 글쓰기 공부~ ^^
추석명절 잘 지내시고 알라딘에서 또 만나요!!

hnine 2011-09-11 08:08   좋아요 0 | URL
글쓰기 공부라기보다 언제부터인가 저렇게 막 따져가며 읽어보게 되더라고요 ^^
순오기님, 이번 추석엔 제가 농떙이 부리고 있어요. 송편도 제가 안 만들고 버티니까 어제밤에 나가서 남편이 파는 것 사다놓고요, 다른 것도 당일치기 할 심사로 손도 안대고 있고요 (어떤 상황인지 금방 눈치채셨으리라...^^).
그래도 오늘 밤은 아이랑 달 그림이라도 그리고 소원을 빌어보려고요. 순오기님의 도서관도 무사히 잘 개관하게 되길 빌어드릴께요. 물론 그렇게 되겠지만요.
이렇게 들러 기운 주고 가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처럼요 ^^

달사르 2011-09-1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운 이야기인데 왜 재미가 없는지..저도 그게 궁금하네요.
동화작가를 꿈꾸는 친구가 있거든요. 그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 hnine님처럼 저런 궁금점이 자꾸 생기더라구요.
동화책은 고운 이야기를 넘어서는 다른 그 무언가가 필요한가봐요.

hnine 2011-09-15 08:41   좋아요 0 | URL
동심천사주의라는 말이 있더군요. 아이들을 무조건 천사로만 그리려는 경향이 우리도 모르게 발동된대요. 외국의 어린이책들을 보면 착한 아이들보다는 장난꾸러기, 좀 별난 아이들이 많이 등장하거든요? 그 이야기에서만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이요. 고운 이야기를 넘어서는 다른 그 무엇은 아마도 작가의 창의력과 많이 연관되어 있는 것 같지요?
친구분이 계시다니 그런 얘기 많이 하셨겠지만 어른이 되어 동화를 쓴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닐 것 같아요.

진주 2011-09-15 00:51   좋아요 0 | URL
두 분 대화에 잠깐 끼어들어도 될까요?ㅎㅎ
저도 '곱기만'한 동화는 별로예요.
애들 말대로 오글거리잖아요ㅎㅎ

hnine 2011-09-15 09:14   좋아요 0 | URL
어서오세요, 진주님^^
그런데 그 동심천사주의라는 것이, 작가가 일부러 의도하지 않아도 은연중에 그렇게 가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의 편견이나 선입관이 참 강한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