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주 동안이나 책상에만 매달려있다 마침내 밖으로 걸어나간다 달은 지고, 터덜대는 발걸음에 별 하나 없다 빛이라곤 흔적조차 없다! 만일 이 허허 벌판에 말 한마리가 나를 향해 달려 온다면? 고독 속에서 보내지 않은 모든 날들은 낭비였다.
- 로버트 블라이 '오랫동안의 바쁜 일이 끝나고' -
먼저 미안하단 말 건네고 햇살 좋은 남쪽 가지를 얻어오너라 원추리꽃이 피기 전에 몸 추스를 수 있도록 마침 이별주를 마친 밑가지라면 좋으련만 잔물 위에 흙 한줌 문지르고 이끼옷도 입혀주고 도려낸 나무그늘, 네 그림자로 둥글게 기워보아라 남은 나무 밑동이 몽둥이가 되지 않도록 끌고온 나뭇가지가 채찍이 되지 않도록
- 이 정록 '나뭇가지를 얻어 쓰려거든' -
오 후
하늘은 하늘색 저리 푸르고
가는 여름 뒤통수 보면서도 매미 저리 열심히 울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 서는 아파트 장터 팔던 배추 무우 옆에 배추 무우로 앉아 그새 손님 오나 한 술 뜨고 뒤돌아보고 또 한 술 뜨고 뒤돌아보는 노인네의 점심 짬 우울 하나 우울 둘 우울 셋 할 일 없이 맘 적시고 있던 내가 부끄럽고 염치없어
얼른 그늘 거두어야 했던 오후가 있었다
당신을 향해 달려오는 말은 끝내 없었을 것입니다 블라이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