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쌈이나 한 상
눈물 마른 날에는 상추쌈이나 한 상
먹어야겠다 시들부들 말라가다가도
물에 담그기만 하면 징그럽게
다시 살아나는 상추에 밥을 싸서
한입 가득 먹으며 지금
눈에서 나오는 물은 상추 때문이라
말하며 목이 메게 상추쌈이나
먹어야겠다 세월이 약이란 새빨간
거짓말에도 아물지 않는 상처에
된장을 척 발라 꾸역꾸역 삼켜봐야겠다
주먹으로 가슴패기를 팍팍 쳐가며
섬겨봐야겠다 상추를 자를 때 나오는
하얗고 끈끈한 진액이 불면증엔
특효약이라니 상추쌈이나 한 상
가득 먹고 뿌리까지 시들게 하는
오래된 상처일랑은 그만 이겨버리고
뉘엿뉘엿 날이 저물 때까지
낮잠이나 자는 척해야겠다
성 미정 시인이 즐기는 언어 놀이
- 동음이의어, 또는 비슷한 철자이지만 완전 다른 뜻의 단어를 그 자리에 대입해보기
무상한 나라의 앨리스
(딸의) 온 수저 : 은수저
기억빵 : 기억 방(房)
인상 창의 : 인상 착의
늙가을 : 늦가을
동전심 (銅錢心) : 동정심
말구멍 : 맘구멍
時時때때 : 詩詩때때
뱉을 : 배틀 (battle)
주어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다음과 같은 시도 있다.
더럽게 왔다
혼자만 있을 때 왔다
살짝 기울어진 하얀 히아신스처럼 왔다
필통 위에 반짝이는 노란 별처럼 왔다
고인 물에 입맞춤하는 금붕어처럼 왔다
찌무룩한 루카씨가 혼자서
창과 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 왔다
('봄비가 왔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