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쌈이나 한 상 

 

눈물 마른 날에는 상추쌈이나 한 상
먹어야겠다 시들부들 말라가다가도
물에 담그기만 하면 징그럽게
다시 살아나는 상추에 밥을 싸서
한입 가득 먹으며 지금
눈에서 나오는 물은 상추 때문이라
말하며 목이 메게 상추쌈이나
먹어야겠다 세월이 약이란 새빨간
거짓말에도 아물지 않는 상처에
된장을 척 발라
꾸역꾸역 삼켜봐야겠다
주먹으로 가슴패기를 팍팍 쳐가며
섬겨봐야겠다 상추를 자를 때 나오는
하얗고 끈끈한 진액이 불면증엔
특효약이라니 상추쌈이나 한 상
가득 먹고 뿌리까지 시들게 하는
오래된 상처일랑은 그만 이겨버리고
뉘엿뉘엿 날이 저물 때까지
낮잠이나 자는 척해야겠다 

 

 

 

 

 

 

 

 

성 미정 시인이 즐기는 언어 놀이 

- 동음이의어, 또는 비슷한 철자이지만 완전 다른 뜻의 단어를 그 자리에 대입해보기 

무상한 나라의 앨리스
(딸의) 온 수저 : 은수저
기억빵 : 기억 방(房) 
인상 창의 : 인상 착의
늙가을 : 늦가을
동전심 (銅錢心) : 동정심
말구멍 : 맘구멍
時時때때 : 詩詩때때
뱉을 : 배틀 (battle)
 

주어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다음과 같은 시도 있다.
 

더럽게 왔다
혼자만 있을 때 왔다
살짝 기울어진 하얀 히아신스처럼 왔다
필통 위에 반짝이는 노란 별처럼 왔다
고인 물에 입맞춤하는 금붕어처럼 왔다 

찌무룩한 루카씨가 혼자서
창과 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 왔다 

('봄비가 왔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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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9-05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덕에 저도 다시 시가 그리워지네요 성미정 시인 참 정감가는 시를 쓰네요

hnine 2011-09-05 13:44   좋아요 0 | URL
무지 솔직하고 소탈하고 꾸미지 않은, 요즘 시 같지 않은 시를 쓰지요. 하지만 소재가 그럴 뿐 자꾸 읽어보면 뼈있는 내용들이고 시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가 분명하더라고요. '분명하다'라는 것이 왠지 시라는 쟝르와는 거리가 먼 것 같은데 말이지요.

2011-09-05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5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9-06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시인이네요. (두 번째 보면서 반갑다고 하는 ㅎㅎ)
루카씨는 어떤 사람일까요. 막 상상해보면... 히아신스처럼 맑고 별처럼 반짝이고 금붕어처럼 부드러운 사람일 것 같아요. 혹시 루카씨가 사람을 지칭하는 게 아닐지도? -ㅅ-..

ps. 저도 요즘 시 읽어요! 잠 자기 전에 아주 잠깐이지만~

hnine 2011-09-06 19:21   좋아요 0 | URL
반가운 수다쟁이님, 제가 알려드릴께요. '루카'씨의 정체는 그 앞의 '찌무룩한'이라는 단어의 발음 속에 들어있답니다. [찌무루칸]...아셨을까?? 그러니까 특별한 인물을 칭했다기 보다 성미정 시인이 또 새로운 언어 조합을 한 것이지요 ^^

비로그인 2011-09-06 19:26   좋아요 0 | URL
아.... 아하!! 재밌네요 ㅎㅎ
요 시집도 읽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