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번데기 프로젝트 - 2010 제4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7
이제미 지음 / 비룡소 / 2010년 11월
평점 :
나는 성인보다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할 때 더 신선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다고 남몰래 상상해 왔다. (작가후기 중)
나 역시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작가의 이 말이 반갑다. 하지만 이어지는 다음 말엔 동의하지 않는다.
별일 아닌 일에 울고 웃고,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고, 자아 정체성에 골머리를 앓는 시기가 청소년기이기 때문이다.
아니 아니, 이들이 울고 웃는 일이 정말 '별일' 아니란 말인가? 또한,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고 자아 정체성에 골머리를 앓는 것은 이때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지 이 시기에만 발생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룡소에서 주최하는 2010년 제4회 블루픽션상 수상작이다. 이제미 작가는 책 속의 주인공처럼 고등학생 때부터 소설 쓰기를 좋아하여 각종 문학 공모전에서 수상, 문학 특기자로 대학에 들어갔다고 한다. 긴 머리, 큰 키, 정말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만들어낼 것 같은 유쾌한 인상의 그녀. 이 소설은 작가의 그러한 인상처럼 읽힌다. 코믹하고 발랄하고 꿋꿋하고 뜻대로 안되어도 금방 포기할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이 악물고 피눈물 뚝뚝 흘리며 두 주먹 불끈쥐는 독기를 품는 타입은 아니고,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하면 되지 뭐' 할 타입, 주인공의 캐릭터이다. 제목이 '번데기 프로젝트'인 것은 주인공이 참가한 백일장 주제가 '번데기'였던 것과도 관련이 있고, 나비 한살이에서 번데기 시기가 나타내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도 보여진다.
좋았던 점:
1. 위에 말했듯이 주인공 정 수선의 캐릭터는 이 시대 보통 고등학생의 모습에서 아주 벗어나 있지도 않으면서 (대학은 가고 봐야해, 이왕이면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이면 좋겠어) 그 어느 누구와도 구별되는 점 또한 가지고 있다 (소설이 내 인생의 제1 목표, 부모의 대우에 어느 정도 초연함,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낙천성). 이 소설을 살리는 점 중 하나는 주인공 외의 다른 인물들도 개성이 뚜렷하다는 점. 누구도 그저그런, 행인 1, 행인 2가 없다. 제자를 밀어주려는 허무식 선생, 이상한 병을 가지고 있으면서 모르고 살아온 추지행, 주인공의 롤모델이자 흠모해마지 않는 작가 이 보험. 이들은 모두 실제 인물들이며 약간의 변형만 했을 뿐이라고 작가후기에서 밝히고있다. 장편이면서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데에 이런 인물들이 한 몫 하고 있다.
2. 참신한 플롯이다. 많은 부분에 자신의 경험이 섞여 들어가 있을 것 같은, 공모전을 준비하는 여고생의 이야기이다. 수업 끝나고 식당 알바까지 해가면서 앞치마 주머니에 노트와 연필을 넣고서 시간 날때마다 벽에 대고도 쓰고 화장실에 들어가서도 쓰고,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도 쓰는 주인공의 모습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작가의 모습에서 톡 튀어나보인다.
3. 의미를 듬뿍 담아 심각한 소설을 쓰자는 대신, 재미있는 소설을 쓰자는 마음으로 썼지 않을까 싶게 유쾌하다. 주인공 정수선이 내 바로 옆에서 움직이고 말하고 있는 것 처럼 대사도 행동도 생생하다. 그래서 읽는 내내 이런 내공을 미처 느끼지 못하고 끝까지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자연스럽게 작품을 끌고 가는 것이 쉬웠을까?
아쉬웠던 점:
1. 군더더기 인물, 군더더기 묘사
이야기 첫장을 장식하는 진수 오빠 이야기는 그 이후의 다른 사건들과 특별한 연관도 없고 그 이후로 다시 거론되지 않아, 없어도 이상할 것 없는 대목이었으며, 43쪽의 '신종 플루에 감염된 사람처럼 헤벌쭉하고 있었다'라는 표현은 본문중에 작가가 '헤벌쭉'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 것은 둘째 치고 정확한 비유인지 의문스럽다.
2. 소설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가 사못 다르다. 전반부는 그야말로 명랑, 유쾌한 분투기 느낌이었다가 후반부에 가서 주인공의 작품이 저작권 문제에 걸리는 부분에서 결말까지는 예상못하던 긴장감 모드로 돌변한다. 반전은 좋지만 어딘지 반전이라는 느낌보다는 돌변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진정한 왕따가 되는 법과 진정한 작가가 되는 법은 어쩌면 이리도 비슷한지.
그래도, 아무리 세상이 내게 등을 돌리고 때론 내가 등을 돌려도, 난 계속 글을 쓰 거였다.
이런 문장으로 마무리 지음으로써 주인공의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온 것은 다행이었다.
하루에 100매 쓰기를 몇 달간 강행하고, 작가 지망생이기 보다는 연구와 실험을 거듭하는 열혈 과학도에 가까왔으며, 소설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감동적인 발명품이라고 생각한다는 작가 후기처럼, 앞으로도 재미있고 발랄한 작품을 많이 많이 써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