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서울을 떠났을 때서야 비로소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혼자서 떠나는 취재여행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정말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의혹 때문이었다. 사실 지난 몇 개월 동안 나는 늘 불안해 보인다는 염려를 받았다. 발작적인 신경질과 괴상스런 침묵, 그리고 무모한 발랄함. 글을 쓰기 위해 그 모든 것을 각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을이 다 가도록 나는 글 한 줄 쓸 수 없었고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계약금을 끌어다 쓴 출판사 담당자의 협박어린 충고도 나를 움직이지는 못했다.
대전에서 십오분간 쉬었다가 기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 구내에서 뜨거운 우동을 먹던 사람들이 기차에 올라타서 자기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니 자리를 찾아야지.”
농촌여성을 취재하는 르뽀를 써달라는 부탁을 하러 전화를 한 선배가 용건 끝에 따지는 듯한 음성으로 덧붙였던 것이 지난달이었다.
“찾아야지."
“말은 잘한다.”
“미안해, 언니. 나 아주 잘 있어. 단지, 글을 쓸 수가 없어. 써봤자 모두 인간에 대한 절망만으로 가득 차게 될 것 같아.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
“………”
“………”
“그래, 절망하는 김에 밑바닥까지 가봐라. 그것도 괜찮지…… 밑바닥까지 갔을 때 그때 전화해.”
선배는 툭 뱉듯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뭇사람들이 그러했듯 어줍잖은 말로 나를 위로할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놓은 많은 반박들이 마음속에서 갑자기 꼬리를 감추어버렸다. 이상으런 오기까지 생기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었다면 다시 전화를 걸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서 보고 느끼면 너한테도 도움이 될 거야. 모두들 얼마나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개찰구에서 가방을 넘겨주며 선배는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나는 선배가 건네준 쪽지를 펴보았다.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창덕리 순안마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내가 농촌을 읽어낼 수 있을까. 그것도 단 며칠 만에. 하지만 기차는 어쨌든 달리고 있었고 나는 이제 돌아갈 수 없음을 알았다.
“이젠 다시 돌아갈 수 없어요.
돌아간다 해도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될 거야.”
나를 울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둘뿐이었다. 나의 어머니와 그리고 나의 딸.
나는 핏줄로 이어진 두 사람의 여성 중 한 사람 앞에서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래, 니가 알아서 해라. 이젠 나도 지쳤다…… 그래, 엄마 세대와는 다르지. 나도 너보고 이 에미가 그랬듯 꾹 참고 살라고는 말 안해.”
어머니는 울지 않았다. 내가 천진스런 딸아이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도 윗입술을 지그시 누르고 계셨다.
“이혼할 용기가 있는 년이 울긴 왜 울어! 다시 시작해. 기죽지 말고.”
추수가 끝난 논에는 젓빛 갈대와 마른바람 그리고 황량함이 가득 차있었다. 이젠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었다.
기차에서 내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순안까지 가는 버스를 타러 순창터미널로 갔을 때는 이미 어두운 저녁이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어느새 나는 주눅이 들어 있었다. 서둘러 와버린 어둠 때문이었고 낯선 거리의 낯선 말투들 때문이었다.
터미널로 갔지만 순안마을까지 가는 버스를 타려면 두 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차가 다니는 간격이 두 시간 반, 더구나 다음 버스가 막차였다.
나는 가방을 메고 거리를 걸었다. 배도 몹시 고팠고 추웠다.
정육점에 들어가 고기를 사고 시간을 때우기 위해 제과점으로 들어가 아이들에게 줄 과자도 조금 사고 나서 우유로 빈속을 때웠다. 제과점 한구석에 있는 어항 속에서 물고기들이 이리저리 헤엄치고 있었다.
“난 당신한테 사육당하는 게 아냐!
당신이 당신 일을 소중히 하는 만큼 나한테도 일이 소중해.”
“여민이가 있잖아. 난 저 아이가 당신이 밤늦게 들어오도록 파출부 아주머니 눈치만 보고 있는 걸 참을 수 없어.”
“제말 이러지 마. 아이는 다 제게 주어진 방식에 적응하면서 사는거야. 내가 놀러다니는 거야, 춤바람 나서 카바레 다니는 거냐구! 날 용서할 수 없는 건 여민이가 아니라 바로 당신의 그 알량한 봉건의식 아냐?”
“내가 당신이 늦으면 얼마나 애를 태우는지 알아?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당신을 못 믿어서 그러는 게 아니잖아.”
“당신이 날 믿는다면 설사 내가 밤에 떼강도에게 윤간을 당한다 해도 문제가 안돼! 왜 솔직하지 못하지? 여편네가 일한답시고 다른 남자들이랑 어울리는 게 싫은 거 아냐! 집에 오면 남들처럼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도 없고 썰렁한 방에 들어오기 싫다는 게 이유 아니야? 당신 우리 배고픈 시절에는 내가 일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아.”
“여민이 때문이잖아, 여민이!”
“아니야, 여민이가 태어나기 전에도 떼강도는 있었고 그때도 난 밤늦게까지 취재를 다니곤 했어. 내가 싫은 건 당신이 좀더 당신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다는 거야!”
싸우던 것은 오히려 애정이 있을 때였다. 점차로 집안에서는 말소리가 줄어갔고 아이를 매개로 한 대화 이외엔 우리는 그저 서걱거리는 얼굴로 마주쳤을 뿐, 서로의 문을 굳게 걸어잠갔다.
버스 시간이 대략 이십분 남은 걸 보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어 살 된 아이가 엄마에게 안겨 제과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의 손에 커다란 팥빵을 쥐어주면서 흐뭇한 얼굴을 했다.
나는 돈을 치르고 제과점 문을 열었다. 내가 무심히 지나쳐온 낯선 많은 간이역들처럼 나도 여민이를 잊게 될까. 나는 대합실로 들어섰다.
이상하게도 대합실이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귀퉁이 의자에 앉았다.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았지만 시간은 몹시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군인 하나와 젊은 남자 둘이 들어섰다. 군인이 내 오른쪽에, 갈색 잠바의 청년이 내 왼쪽에, 그리고 나머지 이마에 흉터가 있는 젊은이가 내 앞자리에 와서 나를 돌아보았다. 영락없이 포위당한 꼴이었다.
“이곳 분은 아니신 거 같은디…… 여자 혼자서 뭔 일이시오? 학생이오?”
그들의 입에서는 독한 술내가 풍겨왔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자리를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었지만 비로소 실감이 왔다. 그렇다. 이곳은 대한민국. 여자 혼자 다니기에는 지나치게 위험한 나의 조국.
“좀 비켜주세요.”
나는 그들을 빠져나와 무작정 승강장 쪽으로 도망치듯 나왔다. 그들은 더 따라오지 않았다.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승강장에서 우글거리고 있었다. 몇 달째 사람들을 기피하고 지내던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는 순안이라는 팻말이 씌어진 줄 뒤에 섰다. 하교하는 고등학생들과 장을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기집애 대학 보내서 뭘 혀. 고등학교까지만도 감지덕지제.”
앞니가 뻐드러지고 키가 훌쩍 큰 여자가 여고생들과 말을 나누고 있었다.
“그래도 순임인 공부를 잘하잖아요.”
그 여자의 입에서 긴 한숨이 나왔다.
“에미가 미꾸라지 팔아서 겨우 밥먹는디 대학은 무슨 대학.”
버스가 왔고 나는 그들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앞니가 뻐드러진 순임이 엄마가 내 옆에 앉았다. 버스는 읍내를 빠져나가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둠속을 덜컹이고 기우뚱거리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저어, 순안마을에 가려면 어디서 내려야 하나요?”
“아이고, 내가 그 마을에 사는디, 누구 집에 가는가?”
“저, 현이네 집에……”
“현이네는 왜?”
“취재왔어요.”
여자는 반색을 했다.
“농촌 취재 나왔다니께 우리 집에도 다녀가요. 전에도 뭣이냐, 글을 쓴다는 사램이 우리 집에서 이틀이나 자믄서 나랑 이야기허고 갔어. 헌데 소설은 안 나오등만.”
여자는 왠지 신이 나 있는 것 같았다 순안마을에서 내려 마중 나온 현이 어머니의 안내를 받아 가는 내 등뒤에 대고 그 여자는 또 소리쳤다.
“꼭 와야 혀. 모레는 일 안 나가니께.”
하늘엔 별빛 하나 보이지 않았고 기온이 몹시 찼다. 어둠에 낯선 눈으로 나는 더듬듯이 현이네 집으로 들어섰다. 으레 그랬듯이 이방인을 향해 개들이 미친 듯이 짖었다.
나는 방안으로 들어가 가족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서울 잡지사에서 연락을 받고 모두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두 평 반이나 될까, 텔레비전 한대와 경대가 놓인 간소한 방이었다. 중학교 이학년인 현이는 방바닥에 도화지를 펴놓고 미술숙제를 하고 있었고, 그 동생들은 이 낯선 서울여자 앞에서 부끄럼을 타는지 윗언니가 숙제하는 데만 눈길을 주고 있었다.
나는 현이 아버지인 김만석씨에게 인사를 드리면서 직감적으로 이댁 식구들이 나를 반기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며칠이나 머물 거냐는 물음에 계획과는 달리 사흘 정도라고 우물우물 대답해버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우린 사실 아홉시 전에 자요.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지요. 그럴 수 있겠소?”
김만석씨가 물었다. 나는 사실 밤에 글을 쓰고 아침엔 잠이 좀 많은 편이었다.
“그래야지요.”
“그럼 내일 뵙시다.”
김만석씨가 사무적으로 말했다. 아주 뚝뚝한 말씨였다. 나는 큰딸 현이와 함꼐 작은방으로 들어섰다. 한 평 반쯤 되는 정갈한 방이었다. 이미 불을 때두었는지 방바닥이 따뜻했다. 의외로 잠이 쏟아졌다. 아침에 집을 나선 것이 아홉시 반이었으므로 천리도 못 되는 길을 근 열 두 시간이나 헤매어 찾아온 꼴이었다.

비가 퍼붓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열두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해 봄과 여름 사이 지긋지긋하게 비가 내리고 또 내렸다. 나는 우산을 펴들고 발을 동동 구르며 차도 가장자리에서 열심히 손을 흔들어댔지만 택시들은 흙탕물만 튀기고는 나를 지나쳐버렸다. 그래서 겨우 택시가 잡혔을 때 나는 무조건 올라타고 애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서울 근교의 한 읍에 살고 있었는데 그곳까지 택시를 타고 가는 데는 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해야 했다. 운전사는 머리가 희끗희끗 오십이 넘어 보였는데 눈살을 좀 찌푸리더니 차를 출발시켰다. 비는 폭우에 가까울 정도로 퍼붓고 있었고 불광동을 지났을 때는 거의 다릴는 차가 보이지 않았다. 운전사는 차를 몰다가 자주 나를 돌아보았다.
“허어, 이거 이런 날에는 여자를 태우지 말랬는데. 흰옷 입은 여자는……”
운전사가 안절부절하는 모습으로 여러 번 말을 되풀이할 때까지 나는 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구파발을 지나 차가 논길에 들어섰을 때 그는 또 말을 꺼냈다.
“요즘 세상이 아무리 개명했다고 하지만 이런 날은 왠지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어요. ……내 친구 중에 하나는 글쎄 비오는 날 머리가 길고 하얀 옷을 입을 여자를 태웠는데……”
운전사는 말을 계속했다. 여자가 가자는 대로 험한 산골 앞에 차를 세우고 돈을 가져올 때까지 기다렸지만 여자는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들어가보니 그곳에 그런 여자는 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운전사가 분명히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자 문을 열어준 여인이 한숨 쉬며 말하기를 오늘이 바로 내 딸의 제삿날이유, 했다는 흔한 이야기였다.
“아가씨, 좀 잘 앉아보슈. 백미러로 잘 안 보이는 것 같은데……”
나는 그제서야 내 몰골을 돌아보았다. 흰 남방셔츠에 흰 모시재킷, 그리고 긴 생머리. 물론 밑에야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었지만 나는 그가 정말로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이 그런 걸 믿고 있다는데 웃을 수도 없었고 저는 귀신이 아니에요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더 이상했다. 나는 백미러에 내 얼굴이 잘 비치도록 앉아 그에게 자꾸 말을 걸었다. 하지만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 이건 삶이 아니야. 어쩌면 여기 앉아 있는 건 내가 아니라 정말 유령인지도 몰라. 아침 여섯시부터 밤 열두시까지 지치도록 일을 하고 나면 남는 것은 남편과의 부딪침.
차는 느릿느릿 달렸고 나는 귀신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파란 만원짜리 지폐를 그에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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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따라 쓰다 (2/2)
    from 내 인생은 진행중 2011-08-08 15:21 
    비가 퍼붓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열두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해 봄과 여름 사이 지긋지긋하게 비가 내리고 또 내렸다. 나는 우산을 펴들고 발을 동동 구르며 차도 가장자리에서 열심히 손을 흔들어댔지만 택시들은 흙탕물만 튀기고는 나를 지나쳐버렸다. 그래서 겨우 택시가 잡혔을 때 나는 무조건 올라타고 애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서울 근교의 한 읍에 살고 있었는데 그곳까지 택시를 타고 가는 데는 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해야 했다. 운전사는 머리가 희끗희
 
 
2011-08-03 0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1-08-03 08:24   좋아요 0 | URL
우울하고 절망하는 것도 여유가 있는 사람의 사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었어요. 그런 내용의 글이 처음은 아니었을텐데 이 글을 읽으면서 왜 그리 강렬하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다시 한번 읽어보리라 해놓고 이제서 다시 읽네요. 십 오년 만에...

2011-08-03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1-08-03 14:48   좋아요 0 | URL
어제 늦게 주무셨군요 ^^ 오늘도 무더운 날씨입니다.

저 책을 가지고 계신가봐요. 오래 전에 학교 다닐 때 도서관에서 빌려읽고 이번에 겨우 중고책 구입을 했답니다.이건 계속 소장하고 있을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11-08-06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혹시 손으로 베껴 쓰셨을까요? 얼마 전에 비가 많이 올 때 창문 너머 비가 많이 와 방에 두었던 편지들이 잔뜩 젖어 말린 기억이 납니다. 참 많이도 쓰고, 많이도 받고 했었더라고요. 그렇게 손으로 쓴 글, 그리고 그것을 컴퓨터로 옮겨 적은 글. 사뭇 다른 느낌인 것 같습니다.

그냥 hnine님 서재에 들르니 막 그런 생각이 드네요 ^^

hnine 2011-08-07 05:36   좋아요 0 | URL
이번엔 손이 아니라 컴퓨터로 바로 옮겨 써 보았어요. 기계적으로 따라쓸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니 꼭 그렇지 않더라고요. 자판에 이미 많이 익숙해져있나봐요. 손으로 베껴쓰는 것보다 속도감이 붙어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더군요.
편지를 많이 쓰고 많이 받으셨군요. 저도 그랬는데 ^^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받은 편지들. 한때는 그것들이 나의 재산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오래 끌어안고 있는 것이 스스로 맘에 안들때도 있어요. 저는 변덕쟁이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