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평점 :
완득이가 나온 이후 완득이 비슷한 캐릭터가 청소년 소설에서 너무 자주 눈에 뜨인다는 생각을 안그래도 하고 있던 차에 '이 책 역시' 라는 생각이 들자, 읽는 동안 그저 재미 이상의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배다른 언니, 배다른 오빠,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여든 넘은 할머니, 세번 째 부인 마저 집을 나가게 하고 만 아빠, 아내와 두 아이를 모두 미국으로 떠나보내고 뇌경색 환자가 되어 버린, 한때 잘 나가던 주식맨 삼촌. 이런 가족 구성이다. 그래서 불량가족.
자서전 써보기라는 도덕 숙제를 앞에 놓고 열 일곱 살 여울이는 헛웃음만 나온다. 무슨 얘기를 쓸 것인가.
이러한 문제적 가정 속에서, 즉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그 상황 속에서도 하고 싶은게 있고, 선생님과 할머니에게, 사람들 앞에서 마구 때리는 아빠에게 대들 수 있고, 그러면서도 상황을 봐서 깨끗히 굴복하고 용서를 빌 수도 있고,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있어서 마음 졸이기도 하는 여울이의 모습이 우울하지 않고 유쾌하게 책 전체를 끌고 간다.
여울이가 우연히 알게 된 아줌마로부터 소개 받은 책,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코웃음치며 자기만의 대답을 해보기도 한다.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라는 첫번째 질문에는 미래를 볼 수 있는 지혜 라는 책 속의 답 대신 영원한 생명 이라고, 사람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라는 두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사랑 이 아니라 욕심이라고, 세번 째 질문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 대해서는 사랑 때문에 산다는 책 속의 답 대신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산다고. 그럴듯 하지 않은가? 책 속의 답이 이상이라면 여울이의 답은 현실에 가깝다.
출판을 목적으로 하는 출판사 공모전 수상작으로 손색이 없다. 일단 지루하지 않고 빨리 읽히니까. 요즘 청소년들의 생각, 말투, 관심사 (저자의 세대에선 분명히 없었을)등이, 부자연스런 곳 하나 없이 얼마나 능숙하게 표현되고 있는지. 제목 역시 독자층을 불러 모으기에 손색이 없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요즘 나오고 있는 비슷한 다른 책들과 구분되는, 오래 동안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게 하는 이 책만의 색깔은, 목소리는 대체 어디에 있나?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은 점수를 주지 못하겠다는 마음으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왔는데, 왜 마지막 페이지에 와서 나는 갑자기 울컥해야했을까.
이 위태스럽기만한 불량 가족의 일원으로, 늘 가출을 꿈꾸며 살던 주인공이지만, 결국 풍비박산난 집안 꼴을 앞에 두고서 앞으로 살아갈 방법에 대해 '가족'에서 답을 찾는 것을 보고서이다. 가족은 아직도 나에게 울컥하게 하는 그 무엇인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정말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다는 그런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아 아쉽다. 예를 들어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손톱이 자라날 때'같은 작품은 이 책에 비해 술술 읽히는 속도감과 재미 면에선 좀 떨어지지만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마음을 읽을 수 있었는데.
위태하던 집안이 결국 파산나서 모든 가족 구성원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을 때 오히려 힘을 내는 것은 가족 중 제일 어린 여울이였다.
더 오래 살았다는 것이 꼭 살아갈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것을 본다.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서 인간은 진화한다는 말을 그대로 다 받아들이진 않지만 최소한 인간 중 어떤 인간은 그럴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