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게! 찾는데 힘들진 않던가? 내가 이 식물원 주인이냐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이 식물원에 대해 좀 알고 있나? 아마 여기 있는 식물들은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을 걸세. 식물도감에는 나와 있냐고? 하하, 식물도감에도 나와 있지 않을걸. 여기에만 있는, 아주 특별한 식물들이거든.
그럼 대체 이 식물들을 모두 어디서 가지고 왔냐고? 그래, 그 얘기부터 해야겠군.
그러니까 그게 벌써 20년도 더 전의 일인데,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지. 아주 더운 여름날이었어. 그날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네. 왜냐고? 내가 가진 것을 몽땅 잃어버렸거든. 처음엔 길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고 그 다음엔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앉아 있었지. 그러다보면 또 눈물이 나와 울고, 한동안 그러고 있자니 내 풀에 지쳐버렸어. 겨우 일어나 어딘지도 모르게 그냥 터덕터덕 걷기 시작했지. 아마 어떤 다리를 건너고 있을 때이었을 거야. 내 앞에 어떤 아이가 꼭 그때 나처럼 그렇게 다리를 질질 끌면서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는 거야.
‘저 애는 왜 저렇게 기운이 없을까?’
궁금해 하며 걷고 있는데, 바로 그때 이상한 것을 보게 된 거야.
‘어! 저게 뭐지?’
내가 뭘 잘못 보고 있나 눈을 비비고 다시 잘 보았지. 잘못 본 것이 아니었어. 마치 흐물거리는 식물의 이파리 같은 것이 분명히 그 아이 몸에서 삐죽거리며 스며나오고 있었다니까! 그 아이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지 계속 걷고 있고 마침내 그 이파리 같은 것은 길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지더라고.
“저기……, 얘야! 얘야!”
내가 부르는 것도 못 듣고 그 아이는 점점 멀어져 가고 나는 그 자리에서 몸을 구부려 떨어진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어. 그게 말이야, 생긴 것은 꼭 우리가 먹는 미역처럼 생겼는데 색깔은 아주 희끄무레한 것이, 시들어빠진 이파리가 축축하게 젖어있는 듯한 모습이라고나 할까? 나도 모르게 손으로 조심스레 그것을 주워들었지. 왠지 거기 길바닥에 그냥 버려두고 가고 싶지가 않았어.
손바닥 위에 올려진 그 시든 식물을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집까지 왔지. 마당에 흙을 파고 그 식물을 심어주었어. 그리고는 매일 들여다보면서 그 식물이 조금씩 달라지기를 기다렸어. 하루, 이틀, 사흘을 기다려도 아무 변화가 없었지만 그래도 매일 그 앞에 앉아 한참을 쳐다봐주고, 물도 주면서 더 기다렸지. 그랬더니 마침내 어느 날 식물이 조금씩 기운을 차리는 것 같았어. 잎 색깔이 초록색을 띄면서 잘 살펴보니 새로운 작은 잎눈이 자라나오는 것도 보이고 말이야. 그렇게 비실비실, 금방 쓰러질 것 같던 식물이.
‘와!’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지. 그런데 그 순간 참 이상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다네. 기운을 차린 것은 그 식물인데 나도 함께 기운이 솟아나는 것 같더란 말이지.
한번 그런 식물을 보고나자 난 어딜 가도 사람들을 더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고, 슬프고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에게서는 모양은 약간씩 다르지만 전에 본 것 같은 그런 식물이 가슴께로부터 삐질삐질 빠져나오다가 바닥으로 툭 떨어지고 있는 장면을 종종 보게 되었어. 하나같이 사람들은 자기에게서 무엇이 빠져나가고 있는지 모르고 그냥 가더군. 내가 불러도 못 듣고 말이야. 그렇게 하나씩 둘씩 길바닥에 떨어진 식물들을 데려다 보살피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식물원이 생기게 된 유래라네.
‘큭큭……, 하하하하…….’
응? 왜 웃느냐고? 하하, 내가 웃은 거 아니라네. 여기 자네와 나 말고 그럼 누가 또 있냐고? 식물이 있지 않나. 그래, 방금 여기 있는 어떤 식물인가 낸 소리일 걸세. 믿기 어려운가 보군. 이보게. 여기 식물들이 왜 특별한 식물들이겠나? 여기 식물들은 자라면서 웃음소리를 내기도 하고 또 가끔 재채기도 하고, 훌쩍거리기도 한다네. 보통 식물들과는 다르지. 식물원에 처음 데리고 올 때는 식물의 모양도 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실거리고 약해져 있지만 점차 기운을 차리면서 저렇게 소리를 내기도 하더라고. 그러다가 꽃이 피면 이제 거의 회복 단계가 된 것이지. 그럼 나는 그 식물들을 주인에게 되돌려줄 준비를 하지. 어떻게 되돌려 주냐고? 그건 내가 걱정 안 해도 된다네. 식물들이 여기 들어올 때는 내 손 위에 조심스럽게 얹혀져 왔지만, 원래 건강한 식물과 그 주인 사이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서로 끌어당기는 무엇인가로 연결되어 있는 모양이야.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지만 느낄 수는 있다네. 건강을 되찾아 꽃을 피운 식물의 화분을 안고 그 식물이 까닥 까닥 흔들리는 방향으로 걸어갈 뿐이야. 다시 주인을 만난 식물은 봄날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며 주인의 마음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지. 그리고 나면 나는 손을 흔들고 돌아온다네. 내 할일은 거기까지 인거야. 이제 알겠지? 나는 이 식물들의 주인이 아니라 관리인일 뿐이라는 걸.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때가 되어 식물의 주인을 찾아가 돌려주기 전에, 자기의 식물을 찾아 이렇게 직접 식물원으로 찾아온 것은 자네가 처음이라네.
이리 따라와 보겠나?
여기, 내가 가리키는 이 식물을 보게. 자세히 잘 봐야 하네. 아주 특이한 모양의 꽃봉오리가 보이나? 물방울처럼 투명한 꽃봉오리야. 이 식물과 자네 사이의 끈은 특별히 더 강했던 모양이군. 아니면 자네는 꿈을 잃지 않는 사람이던가....... 꽃이 피기도 전에 자네가 이곳으로 찾아온 것을 보면 말이야. 꽃이 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어. 이대로 자네가 데리고 가서 꽃이 필 때를 기다려도 될 것 같은데, 그렇게 하겠나?
그런데 저, 내가 한 가지만 더 얘길 해도 되겠나? 사실 부탁이나 마찬가지인데 말이야.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한살 두살 나이를 먹어가고 자꾸 약해지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들 마음속에서 힘없이 떨어져 나오고 있는 식물들을 못보고 지나치게 되는 때가 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말이야. 그때가 오면 말일세, 혹시 자네가 나대신 이 일을 맡아 줄 순 없겠나? 사실 이렇게 많은 식물들을, 그러니까 희망을 잃어버린 마음들을 돌보기에는 나는 너무 지쳐있어. 쉴 때가 온 것 같아. 내가 못하게 되더라도 이 세상 누군가는 이 일을 꼭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래준다면 정말 고마울 텐데…….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 아니겠나?
왜 자네를 생각하게 되었냐고? 여기까지 찾아와준 사람이고, 또......, 조금 아까 식물이 웃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 않나?
방문객은 그 때 식물원 주인의 가슴께에서 꼬물거리며 나오고 있는 작은 식물의 이파리 같은 것을 보았다. 흐물거리는게, 생긴 것은 꼭 미역 같고 색깔은 희끄무레한 것이, 마치 시든 이파리가 축축하게 젖어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