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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벅 ㅣ 창비청소년문학 12
배유안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스프링벅 (springbuck)
: 아프리카에 사는 양의 이름으로, 이 양들은 풀을 먹기 위해 무리를 지어 초원을 달리다가 어느 순간 풀을 먹으려던 원래의 목적은 잊고 무작정 뛰기만 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도 스프링벅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가? 청소년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라지만 굳이 청소년이 아니어도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이다. 앞의 사람이 달리니 나도 달리고, 그러다가 앞사람이 넘어지면 나도 따라서 넘어지고. 왜 달렸는지 모르고 왜 넘어졌는지도 모른다.
'초정리 편지'로 알려진 작가 배유안의 청소년소설 스프링벅. 2008년에 나왔을 때부터 제목이 눈에 익었지만 미처 읽어보진 못하고 있었는데 청소년소설에 관심이 많고 글쓰기 좋아하는 한사람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읽어보게 되었다.
엄마에게 내가 두번째라는 것, 그게 내가 숨쉴 수 있는 실낱같은 빈틈이다. (17쪽)
이 책의 주인공 동준의 말이다. 그렇다. 첫째만큼 관심을 못받았다는 것이 둘째로 태어난 이들의 불평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첫째들이 부러워하는 점이기도 하다. 고등학생 동준의 형 성준은 부모의 기대에 한치 어긋남이 없는 (어긋나서는 안되는),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아들이다. 반면 동생인 동준은 중간 정도의 성적에, 부모님에게 감추면서라도 하고 싶은 연극을 하고 보는 성격. 일류 대학에 들어가 서울에서 학교에 잘 다니고 있는 줄 알았던 형이 어느 날 고층에서 떨어져 자살을 한다. 왜?
형의 죽음으로 집안은 순식간에 검은 구름으로 뒤덮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울분을 터뜨리는 아빠,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 지내는 엄마를 보며 동준은 탈출구로서 학교에서의 연극발표회 준비에 몰두한다.
형을 자신들의 자존심에 걸맞게 사육해왔던 엄마 아빠......마지막엔 극약 처방까지 한......(152쪽)
나중에 형의 자살 이유가 드러남에 따라 생각이 극단적으로 빠지는 동준. 그를 구제한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연극에 몰두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를 이해해주는 학교 친구들이었다.
저자가 중고등학교 교사로서의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학교 생활이 잘 드러나 있다. 남녀 공학이기 때문에 남녀 학생들 사이가 건전하게 친구로 발전할 수 있고 학생들의 마음을 그나마 잘 이해해주는 선생님이 계시다. 다섯살때 엄마가 아빠와 헤어져 집을 나간 후 새엄마 밑에서 자라지만 새엄마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친엄마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차츰 누그러뜨리게 되는 예슬이, 두분 모두 바쁘셔서 아침도 자기가 알아서 먹고 나온다는 민구는 제발 부모로부터 관심 좀 받아보는게 소원이라고 하고, 연극을 못하게 할 뿐 아니라 매사에 엄마의 계획대로 조정하려는데에 반발이 극도에 다다른 창제는 가출을 한다. 다행이 가출한 장소에서 미래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는 행운을 잡았지만 모든 가출 학생들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학생들의 이런저런 고민들을 들을 때마다 선생님이 해주는 말은 어른들도 완전하지 않다는 것. 그러면 학생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자기들이 이렇게 애들 속을 썩인다는 걸 어른들은 알까요?" (195쪽)
그래, 어른들도 완전하지 않다. 죽을 때까지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 인간이니까.
아이든 어른이든, 이 세상 살기 힘든 것은 더하고 덜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거친 일이 특히 누구에게만 더 일어난다기 보다 누구나 살다 보면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고 본다. 공부를 좀 더 많이 하면 편하고 행복하게 살수 있을까? 돈을 더 많이 쥐고 있으면 편하고 행복하게 살며 힘든 고비를 피해갈 수 있을까? 늘 현실보다는 이상에 치우쳐 생각하는 나인줄 알지만 최소한 이 물음에 대해서만은 그동안 보고 느낀대로 대답할 수 있다. 그렇지 않더라고. 그걸 알고 나니 더 공부한 사람, 더 가진 사람을 그닥 부러워 하지 않게 되었노라고.
종종 되돌아볼 일이다. 나는 지금 앞에 뛰는 양을 따라 뛰어가느라고 내 옆의 풀을 뜯는 즐거움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이런 생각들을 제공해주는 계기를 던져준 책이긴 했으나, 너무 쉽게 결론으로 치닫는 감이 후반부에 느껴졌고, 모범 답안 같은 결말이 아쉬웠다. 실제로 작가는 이 책을 쓰면서 많이 울었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