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는 아프다 푸른도서관 13
이용포 지음 / 푸른책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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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포 작가는 <태진아 팬클럽 회장님>이라는 책으로 처음 만났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주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어린이책이라고 하여 관심을 가지고 읽었는데 생각만큼 큰 재미와 공감을 주진 못해서 조금 실망하기도 했던터라 그 책보다 더 먼저 나왔고 더 알려진 이 책 <느티는 아프다>를 바로 뒤이어 읽지 않고 이제서 읽게 된것 같다. 그냥 한번 어떤 내용인가나 보자고 책장을 몇장 들춰보았다가 '오늘 아침, 느티는 아프다. 마음이, 마음이 아프다.' 로 시작하는 첫 페이지부터 끌렸다고나 할까. 제목의 느티가, 우리말로 지은 주인공 아이의 이름이려니 했는데 단어 그대로 느티나무를 말하는 것이었다. 변두리 동네 어귀의 느티나무가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들, 동네 사람들의 일상을 보며 마음 아파하는 것으로 의인화하여 붙인 제목인 것이다. 새벽마다 일어나 신문 배달을 하며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부터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하는 중학교 2학년생 순호, 어릴 때 농약을 잘못 마셔 머리에 이상이 생긴 순호의 누나 순심이, 시장에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여 간신히 생계를 꾸려나가는 순호 엄마, 대박을 꿈꾸며 노름판을 쫓아다니는, 마음만 착한 순호 아버지, 이들 순호네 가족이 세들어 사는 주인집 아저씨 공팔봉 씨, 노망이 든 그의 모친 욕쟁이 할머니, 공팔봉씨의 두번째 부인인 젋고 예쁜 단비 엄마, 공팔봉씨와 결혼할때 데리고 온 유치원생 단비, 그리고 또 중요한 등장 인물이 하나 있다. 느티 나무 아래서 노숙하는 정체 불명의 가로등지기 아저씨. 스스로 말문을 여는 법 없이, 가지고 있는 인형을 가지고 인형의 입을 통해 대신 말을 하는, 알 수 없는 아저씨이다. 가난에 울고, 엄마의 모진 매질에 울고, 집 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울고, 외로와 울고. 자기 그늘 아래 벤치에 와 늘어놓는 하소연을 느티나무는 듣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서 사람들의 아파하는 모습을 애처로이 내려다 보고 있다. 그래서 느티는 아프다.
등장하는 그 어느 누구도 외면할 수 없다. 가난해서 당장 거리에 나않게 된 순호네 가족, 덜떨어진 딸에게 한풀이를 하며 매질을 해대는 엄마가 화가 나서 한 말, 차라리 나가 죽으라는 그 말이 서러워 정말로 동아줄을 들고 느티나무에 목을 매려 한 순심이, 그런 순심이를 혼자서 좋아하는 가로등지기 아저씨는 그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아 그 마을을 떠난다. 가출을 해서 짜장면 배달이라도 달게 하리라 마음 먹었던 순호는 아무데서도 받아주지 않고 가져간 돈 마저 잃어버리고 집으로 돌아오고, 하루에 겨우 두개 인형에 눈을 다는 일과 아버지와 동생 순호 밥상 차리는 일을 제일 중요한 과업으로 생각하는 순심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사람사는 모습들이 이렇다고? 다 이렇게 산다고? 젊은 부인과 사는 돈 많은 공팔봉씨가 세들어 살고 있는 순호네를 내쫓으려다가 나중에 다시 못가게 붙잡는 것은 왜일까? 노래 가사 처럼 사람은 사랑 없인 살 수 없다는 것을, 노모가 돌아가시고 젊은 부인마저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자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일까?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서로 보듬어주는 누군가 있으면 세상은 그래도 견딜만 하다. 가난때문에 사람이 세상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나를 눈여겨 봐주는 한사람이 없어서 한없이 외롭고 삶의 의지를 상실한다.
아직도 어딘가에서 느티는 아플 것이다. 많이 많이 아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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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1-01-21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네 어귀에 서서 마을을 지켜보며 마음 아파하는 느티나무라....어릴 적에 든든하게 여겨졌던 동화 제비와 왕자님이 떠올라요~사람 사는 걸 들여다보고 가난하거나 아픈 집에 자기 몸에 치장된 보석 하나씩 갖다주라고 하던 그 왕자님 말예요^^;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런 왕자님이나 느티나무가 곁에 있어주면 참 좋겠다 싶어요. 왕자님처럼 루비보석을 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가 힘들거나 외로울 때 내 모습을 지켜봐주기만 해도 힘이 되죠...

hnine 2011-01-21 22:14   좋아요 0 | URL
아, 저도 그 동화 생각나네요.
사람이 아닌 느티나무를 굳이 관찰자로 해서 글을 엮어나간 작가의 의도가 전해져 온다고 할까요? 청소년 소설이라지만 아마 요즘 청소년보다 우리 세대가 읽으면 더 공감하지 않을까 싶은 소설이었어요. 1996년에 처음 발표한 것을 고쳐서 2006년에 다시 낸것이라고 하네요.

2011-01-22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2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okJourney 2011-01-2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엊그제 황선미 작가의 청소년 소설을 읽으면서 '요즘 아이들이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어요. 실은 지금도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많은데 말이지요.
느티나무는 그 존재만으로도 보는 사람을 감싸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60살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었는데요, 요즘도 힘들때면 가끔 그 느티나무가 떠오르더라구요. 지금은 100살이 다되었을 느티나무가요...

hnine 2011-01-22 14:15   좋아요 0 | URL
'바람이 사는 꺽다리집' 읽으신 것 맞나요? 황선미 작가가 자신의 어렸을 때를 생각하며 썼다고 하던데요. 사람이 사람을 서로 감싸며 살수 있으면 좋겠지만 늘 그렇질 못하기 때문에 오래 된 나무 같은 것에서 위안을 얻나봐요. 오랜 세월 살아온 것으로부터 무언으로나마 배울 것도 있고요. 그래서 마을의 나무로 정해놓기도 하고, 학교처럼 오래 있을 건물에 심어놓기도 하고 그러나 봅니다. 동화나 청소년 소설등을 쓰는 사람은 그 세대롤 훌쩍 넘긴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읽다보면 지금의 청소년보다 그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에게 더 공감이 가는 작품들이 꽤 많지요. 100살이 다 되었을 그 느티나무가 지금도 거 자리에서 건재하기를 저도 바래봅니다.

2011-01-23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3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4 0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5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1-24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느티는 아프다. 마음이, 마음이 아프다.

언니, 이 문구 말이죠.. 너무 공감되요. 이런 아픔 때문에
현실을 바로 볼 수 없는 저와 같아서요. 그런데 느티는 훨씬 용감하군요, 저보다.
어깨를 펴고 당당히.... 저도 아픔을 제대로 느껴보겠어요.

hnine 2011-01-24 16:16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 느티는 용감하다기 보다 잘 참고 견디지요.
견디는 것이 나서는 것보다 더 오래가는 것인지...그런데 살다보면 나설 땐 또 나서주어야 하는 것 같고. 자기가 보고 있는 모든 군중들은 그저 애처로운 눈길로 봐주고 있어서 어떤 평론가는 여기서 느티를 종교와도 비교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