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이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補空)되고 말아라. 

 

이 강이 어느 강가, 압록이라 여짜오니
고국 산천이 새로이 설워라고
치마끈 드시려 하자 눈물 벌써 굴러라 

 


설워라 설워라 해도 아들도 딴 몸이라
무덤풀 욱은 오늘 이 '살'부터 있단 말가
빈말로 설운 양함을 뉘라 믿지 마옵소. 

 


(鄭寅普, 1892-?)
<자모사(慈母思)>

  

 

어릴 때 아버지께서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의 흑백 사진을 찍어서 작은 액자에 넣어 놓으셨다. 그 액자의 뒤에는 아버지의 친필로 위의 정 인보의 시를 적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나중에 알았다. 그 사진은 나중의 영정 사진 용으로 찍어놓으신 것이라는 걸. 

고등학교때였나, 국어 시간에 시조를 배우는데 바로 위의 저 시가 교과서에 나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뜻은 잘 몰라도 눈에 익숙하던 시조라서 무척 반가왔는데, 선생님으로부터 저 위의 '보공'이란 말의 뜻을 배우고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자신은 배고픈줄도 추운 줄도 모르고 자식들에게 다 내어주고는, 좋아하며 아끼던 솜치마는 결국 돌아가신 후 보공으로 쓰였다는.  

 

 

지난 주 부모님을 걱정시켜드리는 일이 있었다. 한 밤중에, 입으신 옷차림 그대로 나이 칠십이 넘으신 두 노인네가 두시간을 걸려 여기 대전까지 내려오셨다. 이 세상에 누가 나를 위해 그 밤중에 그렇게 달려와줄까.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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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7 20: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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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7 2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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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04-27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밤중에 조건 없이 달려와주는 손길은 먹먹하지요. 되새겨 읽는 시도 참 뭉클해요.
그런데 걱정스런 일이 있었던 건가요? 지금은 괜찮아졌고요? 염려스러워요...

순오기 2010-04-28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공, 검색해봤어요~ 관의 빈자리를 채우는데 쓰였군요.ㅠㅠ
아~ 무슨 일로 어른들이 그리 급하게 오셨는지...

하늘바람 2010-04-28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고 무슨 일이셨을까요?

그래요 힘내자고요.

2010-04-28 11: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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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8 1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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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04-28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로 걱정해주신 분들, 그리고 댓글은 안남기셨어도 제 서재에 들르셨다가 이 글 보시고 걱정하셨을 서재 친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게 큰 힘이 되었어요.
얼른 추스리고 씩씩하게 일어나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꿈꾸는섬 2010-04-29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무슨 일이었는지 걱정되네요. 어디 아프신건가 싶어서 걱정이 되어요. 나인님 힘내세요.^^

hnine 2010-04-30 13:57   좋아요 0 | URL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기 마련이겠지요.
저는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꿈꾸는 섬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0-04-30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30 2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