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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초콜릿이다 - 정박미경의 B급 연애 탈출기
정박미경 지음, 문홍진 그림 / 레드박스 / 2010년 1월
평점 :
'B급 연애 탈출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30대 미혼 여성을 주대상으로 역시 30대 중반 미혼인 저자가 그간의 경험과 다른 사람의 인터뷰 자료를 토대로 엮은 연애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미 30대 중반을 훨씬 넘어선 기혼자이지만 30대를 훌쩍 넘어서 결혼을 한터라 그때까지의 기억이 많이 남아 있어서 그나마 이 책을 읽기 시작할때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었다.
책의 내용, 공감이 가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는 것은, 어느 책에서나 마찬가지 이겠지만 이 책의 경우엔 '글쎄~'하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내용이 비교적 많았음을 얘기할 수 밖에 없다. 결혼 적령기라는 것이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고 많은 여성들의 결혼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많은 여성들이 결혼과 동시에 자기가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주부로서의 생활로 전환할 것을 계획하던 시대가 아니고, 남편의 지위와 조건에 묻어가려는 의존적 태도로 결혼을 보던 시대는 아니라고 본다. 그럼에도 이런 종류의 책들이 대부분 미혼 '여성'을 대상으로 쓰여지고 있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결혼은 여전히 여성에게 불리한 제도로 작용하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연애 하면서 계속 계산한다. 이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앞으로의 나의 인생에 보탬이 될지, 장애가 될지, 얼마나 도움이 될지를 따져 본다. 이런 이성적인 계산과 감정적인 절실함을 저울의 양쪽에 올려 놓고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서 타협하고 판단을 내린다. 이렇게 책 한권의 경험을 안고 결혼을 하고 나면, 그때 부터의 이야기는 어디 책 한권 정도이랴. 열 권도 모자랄, 치고 받고, 밀고 당기는 이야기들이 생겨 나서 '지는게 이기는 것이다'라는, 언뜻 들으면 말도 안되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올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경로를 거쳤든 일단 결혼을 하기로 결정을 내린다면 그 동안 연애하면서 가졌을 기대를 버리고 오히려 마음을 비우는 것으로 시작해야할 것이 결혼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시 시작, 리셋 (reset)이랄까? 연애하면서 보여진 그 남자의 모습을 바탕으로 하여 혼자서 어떤 남편상을 그려놓고 그것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일곱 가지의 각기 다른 사례들을 읽으면서 몇가지 동의하기 어려웠던 것들 중의 하나는, '지금 나의 감정과 기분에 충실하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이 '나만 좋으면 된다'는 것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여진 것 같다는 것인데, 이건 저자가 말하는'쿨'한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사회적인 통념이나 관습을 벗어나려는 것은 좋으나 거기에서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되거나, 크게는 파괴를 초래할 수 있는 '내 감정에 충실하기'가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여러 남자와 연인 사이를 동시에 유지하고 있는 한 미혼 여성의 사례에서, '한 남자로 모든 게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 욕구의 일정 부분을 다른 남자들로부터 나눠서 얻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35쪽)'라는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를 할지도 궁금해진다.
이 책의 한 꼭지 제목이기도 한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못된 여자는 아무데나 간다'라는 말은,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남자들은 다 넘어오게 할 수 있다는, 네 남자와 동시에 사귀고 있는 여성의 사례 내용이다. 이 제목은 예전에 읽은 다른 책에서 이미 눈에 익은 문장이었다.
독일의 여성운동가 우테 에어하르트의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라는 이 책에서이다. '착한 여자는 하늘나라로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로든 간다.' 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여기서 나쁜 여자란 '착한 여자 신드롬'에서 깨어나 독립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자신의 인생을 당당하게 헤쳐 나가는 여자를 의미하는, 여성들로 하여금 그렇게 살 것을 주장하는, 내가 꽤 인상깊게 읽었던 책이다.
이 책에서의 관점이 남자에 의존하지 않는, 평등하고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여성으로서의 삶이었다면, <남자는 초콜릿이다>에서는 부제에서처럼 B급 연애에서 탈출하기 위한, 좀 더 실속있고 현명한 연애를 하기 위한 것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대조가 된다.
나는 왜 우테 에어하르트의 책은 그토록 공감하여 '결혼을 앞두고 있는 후배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라는 제목으로 만든 리스트까지 만들어 그 중 한 권으로 뽑았을 정도였으면서, '남자는 초콜릿이다'라는 이 책에는 아주 최소한의 공감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인지 알 것 같다.
현명한 연애를 하기 위해 고민하지 말고, 현명한 인생을 살기 위해 고민하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어찌 보면 둘 다 고민 거리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고민하기보다는 직접 몸으로 부딛혀 배우는 것이 많다는 점에 있어서는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