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요란 푸른아파트 문지아이들 96
김려령 지음, 신민재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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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우리 가족이 살았던 아파트 생각이 났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아파트의 3층, 열 평을 겨우 넘는 방 두 개 짜리 아파트. 지은지 오래 되어 재개발 때문에 지금은 값이 엄청 뛰었다지만 우린 그때 월세로 살았으니 값이 뛴 것과 별 상관은 없다. 나중에 그 집에서 이사 나오고도 출근할때면 그 곳을 지나쳐야 했는데, 가끔 그 옆의 차도에서 신호가 걸려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살던 아파트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노라면, 겉으로 표시는 안했어도 낡고 좁은 아파트라고 사는 동안 내심 창피하게 여겼던 것이 참 미안하고 부끄러워지곤 했었다. 더 아끼고 소중하게 지내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고, 마음 속으로 혼잣말도 해보던 일이 생각났다.
김려령의 이 이야기에서는 지은지 40년이 된 아파트들이 말을 한다. 자기 동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뽐내기도 하며 서로 장난도 치면서, 건물들이 마치 사람처럼 말을 하고 생각을 한다. 초등학교 3학년인 기동이를 어느 날 엄마 아빠는 이 아파트, 푸른 아파트 2동에 폐휴지를 모아 파시며 혼자 사시는 할머니에게 맡겨 놓고 간다. 형편이 나아지면 데리러 오겠다면서.  
새로 들어간 학교, 새로운 친구들에 그럭 저럭 적응하며 지내지만 할머니는 하루 종일 집에 안계시고 학원에도 안다니는 기동이는 취미인 만화그리는 시간 외에는 심심하기만 하다. 그러던 중 같은 아파트의 단아라는 여자 친구, 그리고 만화가 아저씨를 알게 되면서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는데.
어느 잠 안오던 밤, "잠이 안와?" 하고 아파트가 말을 걸어오는 것에 저자는 울컥 눈물이 났고, 그 때 이 동화를 썼다고 한다. 아파트가 말을 하는 설정에 대해서는 역시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는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저자가 가마솥 뚜껑을 쾅 닫으면 "살살해라, 걔, 아푸겄다.", 밥 한공기를 다 먹도록 손도 안댄 반찬에 대해서는 "지도 반찬이라고 상에 올랐는데 그렇게 손 안대믄 운다. 한번 먹어주라." 고 하셨다는 할머니. 생명이 있는 것도 점차 물질적으로 보아가는 요즘. 생명이 없는 것에도 이렇게 배려를 해주던 마음은 다 어디로 갔을까.
푸른 아파트가 결국 재개발에 들어가게 되어 모두 이사를 떠나는 날, 서운해하는 마음으로 자꾸 뒤돌아보는 기동이의 마음을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대신하고 있다.
'5층 녹슨 베란다 선반이 끼극끼극거렸다. 그리고 바닥으로 뚝...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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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12-30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저린 얘기군요..

날이 일찍 지는, 요즘의 시간에는 더더욱 이런 느낌의 기억들이 많이 떠오르네요.
내년 봄 지금 있는 곳에서 떠날 생각인데 그때가 되면 오늘 이시간, 읽고 있는 이 모습이 생각날듯 합니다~

hnine 2009-12-30 18:21   좋아요 0 | URL
이사를 앞두고 있으시군요.
저도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이사를 참 많이 다녔네요.
어디에 살든 떠난 후가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곳에 좀 더 애착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같은하늘 2009-12-30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과 표지만보면 신나는 이야기가 있을것 같이 보이는데...

hnine 2009-12-31 08:06   좋아요 0 | URL
그렇게 어두운 이야기는 아니어요. 오히려 유머스런 감각이 살아있어 상황을 비관스럽지 않게 끌어나가고 있고 해피 엔딩이니까요. 김려령 작품을 찾아 읽다가 우연히 알게 된 동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