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이 소녀를 엄마라고 불렀죠 

  

 

소녀의 꿈은 동화 속에 나오는 
예쁜 다락방을 갖는 것이었죠 
다행히 소녀의 집엔 다락방이 있었죠
소녀는 다락방에 올라갔죠
그곳은 동화 속에 나오는 다락방과는 달랐죠
후끈 달아올랐다가 금방 쌀쌀해지고
온갖 먼지가 덩어리가 되어 굴러다녔죠
소녀는 그 다락방이 싫었죠
이건 내 다락방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혼자 있고 싶을 때나 도망치고 싶을 때
그나마 갈 곳이 그 다락방뿐이었죠
소녀는 다락방을 깨끗이 닦고 치웠죠
하지만 다락방은 어찌 된 일인지
금방 더러워지고 다시 온갖 잡동사니가 쌓였죠
소녀는 구제불능인 다락방에 화가 났죠
소녀는 또 다락방을 치웠고
다락방은 또 더러워졌죠
다른 소녀들 같으면 그런 골치 아픈 다락방일랑
잊어버리고 새로운 다락방을 찾아 떠났을 텐데......
소녀는 어쩐지 그럴 수 없었죠
소녀는 그 다락방에 잘 어울리는 그런 소녀였던 거죠
그렇게 치우고 어지르고 치우고 어지르고
다락방 때문에 애태우고 다락방을
훈계하고
소녀는 다락방이 철이 들기를 기다렸죠 

어느 날 다락방이 소녀에게 엄마라고 불렀죠 

 

--   성 미 정 시집 '사랑은 야채같은 것' 중에서  --  

 

 

(나는 아직 엄마 되려면 멀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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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1-07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엄마'라는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찔끔할 사람이 많겠어요. 저도 그러네요...

hnine 2009-11-08 07:24   좋아요 0 | URL
'엄마'의 할일이란 저렇게 끊임없이 닦고 치우고 닦고 치우고, 훈계하고, 애 태우는, 저런 일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아이를 낳은 순간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는 저렇게 만들어져 가는 것 같아요.

2009-11-08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08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같은하늘 2009-11-09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밑에 <언니라는 존재>도 마음이 짠하더 이 시도...

다락방 때문에 애태우고 다락방을 훈계하고
소녀는 다락방이 철이 들기를 기다렸죠.

엄마는 이렇게 많은 것을 겪으면서 진정한 엄마의 모습이 되어가는 군요.
저도 엄마 되려면 멀은것 같습니다. -.-;;

hnine 2009-11-09 04:38   좋아요 0 | URL
예, 요즘 제가 이 시인의 시집을 열심히 읽고 있답니다.
저는 위 시의 저 소녀가 거의 '깨달음'의 경지에라도 오르지 않았을까 했는데 그때 불리는 호칭이 '엄마'더군요. 마음에 콕 박히는 시여서 옮겨봤어요.
(같은 하늘님, 그런데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어요? 아니면 아직도 안 주무신거예요??)

같은하늘 2009-11-09 08:37   좋아요 0 | URL
컴퓨터로 할일을 하다 마우스 한번 잘못 눌러서 몽땅 날렸다지요.
그래서 잠을 못자고 붉으락푸르락하면서 다시 하느라 늦게 잤어요.^^
그러시는 hnine님은 이렇게 일찍 일어나신건가요?
완전한 아침형인간? ㅎㅎ

hnine 2009-11-09 16:24   좋아요 0 | URL
저, 아침형 인간 맞는데, 어제는 자다 깨다를 반복했어요. 어제 위의 댓글 쓰고는 잠깐 또 잤네요 ^^

치유 2009-11-12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런것인데...참질 못하고 또..
에고;;진정한 엄마가 되려면 당당 멀었노라고 제가 제게 말하며 그래도 양심은 있어 찔끔 거리고 웃습니다.
이 아침 좋은 글 읽고 감사하네요.

hnine 2009-11-12 19:46   좋아요 0 | URL
비유가 참 잘된 시이죠?
진정한 엄마가 되는 법은 시간만이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